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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색 한 스푼 May 27. 2021

너무 미운 그 사람

아들러 개인심리학 관점에서의 미움 관계

상처 주는 사람

세상에는 미운 사람이 참 많다. 내게 욕을 퍼부었던 그 사람도 밉고, 나를 제대로 대우해주지 않았던 그 사람도 밉다. 시간이 지나 자연스레 용서되는 사람도 있고, 내게 보였던 미운 행동이 이해될 때도 있다. 심지어 실제로는 한 번도 본 적 없던 연예인이나 방송인들도 미울 수 있다. 세상의 모든 미운 사람이 자신에게 상처를 주는 것은 아니지만, 미운 사람에게서 받은 상처가 하나 둘 자리 잡을 때마다 그런 사람들을 거를 수 있는 힘이 생겨나기 시작한다. 상처 받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개인 심리학자 Adler는 인간이 우월성이나 완전성과 같은 한 가지 궁극적인 목표를 가지고 있지만 이러한 목표를 향한 개인들의 구체적인 행동들은 다양하게 나타날 수 있다고 했다. 각자에게 의미 있는 삶의 목표를 추구하기 위해 원하는 바가 다르고 이에 따라 각기 독특한 생활양식을 발달시킨다고 한다. 즉, 인간은 각자의 목표가 다르기 때문에 생활양식이 다를 수밖에 없고 서로 다른 생활양식이 부딪히면 상대방이 미워질 수 있다는 것이다.


상처 받은 사람

너무 미운 그 사람이 그저 나와 생활양식이 다르기 때문에 밉다는 것이 쉽게 납득이 가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를 다르게 생각해보면 자신의 생활양식이 타인에게 되려 미움받을 수도 있다는 의미가 된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생활양식이 자신의 개인적인 열등감을 극복하기 위한 노력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Adler 바라보는 열등감은 누구에게나 존재하는 것이다. 인간이 현재보다 나은 상태인 완전성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는 존재라고 생각했고, 또 사회적 존재로서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여 자신을 평가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인간은 타인과 자신을 비교하며 현재보다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 각자의 열등감을 극복하는 노력을 끊임없이 하는 존재인 것이다. 인간의 삶은 그 노력의 과정이기 때문에 완전한 우월감 속에서 살 수 없다. 우월감과 열등감이 타인과 비교되는 상대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자신의 특정 열등감은 누군가가 그 부분에서 우월해 보이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자신의 우월한 어떤 점이 누군가에게는 열등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그러니 누구에게든 상처 받을 수밖에 없고, 또 반대로 상처 줄 수 있는 존재인 것이다. 열등감이 있기 때문에 상처 받고, 열등감을 주기 때문에 상처 주는 것이다. 이를 토대로 미운 그 사람을 보자면, 그 사람 역시 누군가로부터 상처 받은 사람일 것이다. 자신이 나서서 그 상처를 치유해 줄 필요는 없겠지만, 또 그 사람이 어떤 상처를 가졌는지 알 수 있는 방법도 없겠지만, 적어도 상처 지녔음을 이해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할 것이다.


우리 아버지

나는 어렸을 적부터 아버지를 미워했고, 아직도 미울 때가 있다. 애증(愛憎)인 것이다. 성인이 되기 전에는 애증에서 애(愛)가 없었다. 그저 밉고 미웠으며, 또 미웠다. 그렇게 증(憎)의 시간이 흘러 내가 성인이 되었을 때 아버지와 술을 마시며 아버지의 아버지, 즉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들으며 아버지는 아직까지도 당신의 아버지를 미워한다는 것을 알았다. 내가 그토록 미워했고 내게 상처를 주었던 나의 아버지 역시 그의 아버지에게 상처 받은 존재였던 것이다. 안 봐도 안다. 할아버지 역시 상처 받은 존재였다는 것을. 어쩌면 아주 오래전부터 시작된 증(憎)의 대물림이 끝나지 않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아버지를 시간을 들여서라도 용서하기로 마음먹었다. 아버지에게 향하는 미움을 스스로가 해결하지 못한다면 나 역시 훗날 내 자식에게 미움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완전히 미움받지 않을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증의 대물림을 멈춰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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