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사색 한 스푼 May 29. 2021

세상을 보는 눈

모든 것을 판단하는 기준은 자기 자신이다

고유의 시선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각자 미세한 차이를 보이는 색의 홍채를 가지고 있다. 지문과도 같은 홍채는 개인 고유의 것이기 때문에 각자를 구분하고 인식할 수 있는 기술로도 발전했다. 인간이 홍채를 통해 직접적으로 사물을 보는 것은 아니지만, 홍채는 '보는 일'에 있어 빛 양의 조절이라는 큰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즉, 같은 사물을 보더라도 서로 다른 홍채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아주 미세한 차이로 다르게 볼 수가 있다는 것이다.


한 편, 같은 사물을 완전히 다르게 보는 경우도 존재한다. 홍채와 마찬가지로 사람마다 가진 고유의 '어떤 것' 때문이다. 미국에 사는 Albert 씨와 한국에 사는 박철수 군이 같은 사물을 보더라도 Albert 씨는 "Desk"로 보지만 박철수 군은 "책상"으로 보는 것과 같다. 의미는 같다 하더라도 두 사람이 가진 언어가 다른 것이다. 

또 다른 예로 프랑스에 사는 Louise 양과 한국에 사는 김영희 양은 서로 볼에 키스하는 남녀를 보고 각자 다른 생각을 가진다. Louise 양은 그것을 프랑스식 인사인 비쥬(Bisou)로 받아들이고, 김영희 양은 그 둘을 커플로 받아들인다. 의미가 다른 것은 두 사람이 가진 문화가 다르기 때문이다.

이 외에도 서로가 가진 생각이나 감정, 경험, 느낌에 따라 같은 것을 사람마다 다르게 보는 것이 가능하다. 다시 말해 세상의 모든 것은 보는 사람, 판단하는 사람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아는 만큼 보인다

감정이나 느낌은 생각으로부터 나오고(Link : 감정은 생각에서 나온다) 생각은 경험으로부터 나온다(Link : 모든 의사결정의 기준은 경험이다). 언어나 문화 역시 살아가면서 자연스레 얻은 경험의 일부라고 할 수 있다. 교육도 마찬가지고, 인간관계도 마찬가지다. 크고 작은 경험 모든 것들이 세상을 볼 때에 엄청난 역할을 하는 셈이다.  


미술 작품을 볼 때에나 역사적인 관광지 혹은 어떠한 작품을 볼 때, "아는 만큼 보인다"라는 말을 한다. 작가가 작품을 창조할 때의 상황이나 사회적, 역사적 배경 등을 알고 작품을 접하면 그렇지 않고 접했을 때와는 달리 더 섬세한 부분들을 볼 수 있다는 의미다. 이는 세상 그 어떤 것을 보더라도 적용되는 말이다. 평소 생수를 사 마시는 사람들 중에도 물이면 그냥 사 마시는 사람이 있는 반면, '먹는 샘물'이라는 표기가 있어야지만 사 마시는 사람이 있다. 그 표기가 깨끗한 물임을 의미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사람을 볼 때에도 그렇다. 어차피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해석하겠지만, 특정 한 사람을 경험한다면 보다 객관적으로 그 사람을 볼 수 있는 것이다. 이는 곧 관점을 달리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평소 같이 어울리던 사람을 해석하는 관점과 처음 보는 사람을 해석하는 관점이 다른 데에는 이런 이유가 있다. 바로 그 사람을 경험했느냐의 차이인 것이다.


주관의 객관화

결과적으로 세상을 보는 눈은 모두 주관적인 것이다. 자기만의 견해나 관점으로 세상을 보고 해석하는 것이다. 여기에 해당 사물이나 상황, 사람을 경험한다면 그 관점을 달리할 수 있다. 즉, 애초 모든 것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해석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심지어는 해당하는 것을 경험한다 하더라도 기저에는 자신의 주관이 자리할 수밖에 없다. 모든 것을 판단하는 기준이 자기 자신이라는 것이다.


세상을 보다 옳게 보고자 한다면 결국 경험을 키워야 한다. 더 많은 것을 접해야 하고, 더 많은 사람을 만나야 하며, 더 많은 상황에 부딪혀 봐야 한다. 그것들이 자신의 주관을 비교적 객관화할 수 있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인간이 가진 홍채는 생후 18개월 즈음이면 완성되어 평생 변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나 인간이 가진 주관은 깨달은 순간부터 평생 변화시킬 수 있다.

작가의 이전글 가르침과 아는 척 그 사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