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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 첫 문장 이어 쓰기 - 남편이 무릎을 꿇었다

by 유랏차차

요새 김이설 작가님의 단편소설 쓰기 수업을 재밌게 듣고 있습니다. 매주 과제가 있고, 그중 하나는 작가님이 제시해 주신 첫 문장에 이어서 첫 문단을 완성하는 것입니다. 글을 시작하는 두려움을 없애기 위한 가벼운 과제이지만 막상 쓰다 보면 꽤 재밌는 이야깃거리가 떠오릅니다. 과제글을 모아놓으면 나중에 좋은 글감이 될 수 있을 것 같아서 브런치에 올려봅니다. 일단 지난 주 과제글을 올려봅니다.



첫 문장 : 남편이 무릎을 꿇었다.


남편이 무릎을 꿇었다. 얼굴을 가린 팔꿈치를 차마 내리지 못하고 겁에 질린 채 남편을 내려봤다. 컥컥 세차게 숨을 들이쉬는 소리가 들려왔다. 팔꿈치를 내리고 고개를 들자 남편의 쇄골 사이로 피가 폭포처럼 터져 나오고 있었다. 이내 남편의 몸이 앞으로 쓰려졌다. 바닥에는 빠른 속도로 피가 고이기 시작했다. 찐득하고 따뜻한 피가 발 끝에 느껴졌다. 호흡이 가빠지며 현기증이 몰려왔다. 공기가 차갑게 얼어붙어 움직일 수가 없었다. 내 온몸에 남편의 피가 튀어 있었다.

모든 일은 순식간에 일어났다. 영문을 알 수 없었다. 남편이 나를 때리려고 할 때마다 몇 번 칼을 휘두르며 다가오지 못하게 한 적은 있어도, 정말 남편을 찌르려 하거나 죽여야겠다고 생각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남편은 술을 마시고 들어와 거실 물건을 부수며 행패를 부렸고, 언제나처럼 저 주사의 끝에는 나를 때릴 것이 분명해, 나는 주방으로 달려가 칼을 쥐고 나온 것이다. 가까이 오지 말라고, 오면 칼로 찔러버릴 거라고 고함을 질렀다. 남편이 천천히 나에게 다가왔다. 나는 뒷걸음치다 서재로 달려가 문을 잠갔다. 더 이상 갈 곳이 없었다. 남편이 서재 쪽으로 걸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남편은 잠긴 서재 문을 열려고 몇 번 시도하더니 조용해졌다. 숨을 돌리려는 찰나 딸깍하며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남편의 살기 어린 눈과 마주쳤다. 남편이 나를 향해 빠르게 달려들었다. 나는 눈을 질끈 감고 팔로 내 얼굴을 막았다.

눈을 떴을 땐 오른손의 칼이 남편의 목을 관통해 있었다. 찰나지만 칼 끝에 무언가 물컹하게 푹 들어오는 느낌이 들었던 것도 같았다. 일단 살리자. 허둥대며 휴대폰을 찾아다녔다. 주방 바닥에 떨어진 휴대폰을 들어 119를 누르려는데, 난리가 난 거실이 눈에 들어왔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남편이 내 칼에 찔린 거지, 내가 남편을 찌르려고 한 건 아니었다는 말을 믿어 줄까. 그러고 보니 지난주 부부싸움 소음에 경비원이 집에 온 적도 있었지. 지긋지긋한 결혼을 끝내려고 남편 몰래 변호사를 만나온 것도 드러나겠지. 나조차도 내가 순간 그를 죽이려고 했던 건 아닐까 혼란스러웠다. 휴대폰을 내려놓고 식탁에 앉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아무도 내 말을 믿어주지 않을 것 같았다.



쓰다 보니 이 주인공이 다음에는 어떤 선택들을 하게 될지 떠오르면서 언젠가는 완성하고 싶은 이야기 중에 하나가 되었습니다. 주인공은 어떤 행동을 해 나갈까요? 그리고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브런치 문우님들의 아이디어도 궁금해집니다. 일기나 에세이만 쓰다가 최근에 희곡을 하나 완성하고, 이제는 소설을 써보는 중인데요. 전 에세이보다 소설쓰기가 더 재밌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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