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줄거리와 법률 쟁점
* 영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어서)
사. 객관적 진실
그러나 객관적 진실은 일을 꾸민 랜섬의 계획대로 되지 않았고 마르타가 인지하고 있는 사실과도 다르다.
객관적 진실을 살펴보면, 랜섬이 약병 속 약물을 바꿔치기한 것은 맞는데, 마르타는 성실하고 숙련된 간병인이라서 약병 속에 있는 약물의 색깔, 농도, 점액 등을 보면 무의식으로도 약물을 정확하게 구별할 줄 알았던 것이다. 그래서 마르타는 모르핀 라벨이 붙은 약병 속에 있는 비마약성 진통제를 제대로 투약하였으나, 이어서 모르핀을 3mg만 투약하려고 보니까 본인이 모르핀이라고 쓰인 약병에서 100mg(그러나 랜섬이 약병 속 약물을 주사기로 바꿔놔서 모르핀 약병 속에는 제대로 된 진통제 약물이 들어있었다)이나 투약한 것을 보고, 자신이 모르핀을 100mg이나 투약했다고 오인하고 혼비백산한 것이다. 결국 할란은 제대로 된 약물을 투약받았음에도 모르핀 치사량을 투약받았다고 오인하여 죽지 않아도 되는데 스스로 자상을 하여 안타깝게 죽은 것이다.
할란을 부검한 보고서를 먼저 취득한 랜섬은 마르타가 정확한 약물을 투약한 것을 알게 된다. 즉, 부검 보고서와 할란의 혈액은 랜섬의 계획대로라면 마르타의 책임을 입증할 유죄 증거였으나, 결과적으로 마르타의 실수가 없었음을 입증하는 무죄 증거가 돼버렸고, 랜섬은 마르타의 무죄를 입증하는 증거인 부검 보고서와 할란의 혈액을 연구소에 방화를 해서 없애버린다.
랜섬은 비밀을 숨기고 마르타한테 접근해서 제안을 하는데, 마르타는 현재 자신이 할란한테 모르핀 치사량을 과다 투약한 책임이 있다고 믿고 있으므로 자신이 할란의 사망에 책임이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랜섬은 마르타가 저지른 실수(모르핀 치사량을 과다 투약했다고 오인하고 있는 사실)를 덮어주고 그것을 입증할 증거인 할란의 부검 보고서(마르타는 할란의 부검 보고서에 모르핀 과다 투약 사실이 나와있을 것이라고 역시 오인하고 있음)를 없애줄 테니까 랜섬이 받아야 할 유산 몫을 달라는 것이 랜섬의 제안이다.
랜섬 입장에선, 마르타가 실수하지 않은 것을 알고 있으므로, 어차피 마르타가 전재산을 가지게 될 텐데 자신의 몫이라도 챙기는 것이 유리하다는 판단을 한 것이다.
아. 결말
랜섬은 할란의 장례식날 온 가족이 장례식에 참석해서 저택이 비어있는 틈을 타서 약물을 바꿔치기 한 사실을 숨기려고 저택에 있는 마르타의 약통 가방을 가지고 나오는데, 이 모습을 가정부 프랜이 목격하면서 프랜은 랜섬을 범인으로 의심한다. 프랜은 랜섬을 협박하고, 랜섬은 프랜을 만나서 기절시킨 뒤 모르핀을 과다 투약한다. 랜섬한테 보내는 프랜의 협박편지를 랜섬은 마르타한테 보내고, 마르타가 유죄 증거(라고 오인하고 있는 부검 보고서)를 없애기 위해서 협박범(프랜)을 만나러 가게 만든다. 랜섬한테 속고 있는 마르타는 모르핀을 과다 투약한 상태로 기절해 있는 프랜을 보고 협박범이 프랜이라는 사실을 알고 깜짝 놀란다. 마르타는 프랜이 살아나면 자신의 범죄(라고 오인하고 있는 할란에게 모르핀 과다 투약 행위)가 드러날 위험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프랜을 살리기 위해 911에 신고한다.
병원에 실려간 프랜은 끝내 사망하지만, 프랜이 살아있다고 오인한 랜섬은, 이 모든 사실을 밝혀내고 추궁하는 브누아 블랑 앞에서, 모든 혐의는 소설일 뿐 증거는 전혀 없다, 자신을 할란 살해 혐의로 체포할 순 없고, 프랜도 안 죽었으므로 살인미수죄로 체포할 것이냐, 부검 보고서와 혈액을 없애려고 연구소에 방화를 해버린 죄 정도는 집안의 힘(재력)으로 금방 나올 수 있다면서 비아냥거린다. 그러나 프랜이 사망했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랜섬의 자백을 경찰이 모두 녹음했기 때문에 랜섬은 결국 살인죄 등으로 체포된다.
2. 법률 쟁점
가. 마르타의 죄책?
영화는 마르타는 좋은 사람이라고 전제한다. 그래서 마르타가 포괄유증을 받는 것에 대해 공평하지 않다는 거부감을 없애기 위해 마르타가 약통의 약물이 바뀌었음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된 약물을 투약했다는 반전의 반전을 넣어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면 마르타는 할란의 사망에 대해 정말 아무런 책임이 없을까? 영화는 마르타는 착한 심성을 가진 선한 사람이므로 전혀 책임이 없다는 결론을 내리는데, 개인적으로 영화의 결론에 수긍하기 어렵고, 법적으로도 아무런 책임이 없다고 보는 것은 무리라고 생각한다.
마르타는 직업 간병인으로서 돈을 받고 일을 하므로, 직업 간병인으로서의 할란에 대한 보호의무와 주의의무 등이 있다. 약병 속에 있는 약물이 바뀌어져 있어도 직업 간병인은 약물의 색깔, 농도, 점액 등을 보고 모르핀과 비마약성 진통제인 케토톨락을 구별해야 할 능력을 갖추어야 하고 구별해야 할 주의의무도 부담한다. 실제로 마르타는 두 약물을 구별해서 제대로 된 약물을 투약했지만 그 후 자신이 모르핀을 투약했다고 오인하여 잘못된 정보를 할란한테 알려줌으로써, 할란으로 하여금 곧 죽을 것이라고 오인케 하여 할란이 자살하게 만들었다. 결국 멀쩡한 사람을 10분 후 죽을 것이라고 오인하게 만들어서 스스로 자살하게 만든 것인데, 자살하라고 시킨 것은 아니므로 자살교사죄는 아니고, 자살방조죄도 마르타도 오인하고 있었으므로 고의가 부정되어 성립하기 어렵다. 하지만 마르타가 직업 간병인이라는 사실을 고려하면, 최소한 업무상과실치사죄는 성립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마르타는 객관적 진실이 밝혀지기 전에 브누아 블랑의 부탁으로 브누아 블랑과 경찰의 수사를 따라다니면서 자신의 알리바이가 발각될 증거들을 인멸했는데, 예를 들어 마르타가 사건 당일 밤 할란이 시킨 대로 자정에 퇴근하면서 저택을 나갔다가 다시 되돌아오는 모습이 찍힌 주변의 cctv를 못쓰게 만들었고 그날 밤 저택에 다시 들어갈 때 흙바닥에 남은 자신의 발자국 위로 개들이 지나가게 만들어서 자신의 발자국도 없애버리는 등의 행위를 저지르는데, 증거인멸죄가 아닌지 문제 된다. 하지만 증거인멸죄란 ‘타인의 형사사건에 관한 증거를 인멸, 은닉, 위조 또는 변조’하는 것을 말하기 때문에 자신이 저지른 범죄에 대한 증거인멸은 증거인멸죄가 되지 않는다.
나. 랜섬의 죄책?
랜섬은 프랜에 대한 살인죄로 체포되고, 할란의 사망에 대해서도 랜섬의 자백(내가 약물 바꿔치기 한 사실이 맞다)으로 죄가 인정되는 것처럼 영화에 나온다. 먼저 프랜에 대해서는, 랜섬이 프랜한테 치사량의 모르핀을 투약한 것이 맞다면 살인죄가 성립할 수 있다. 그 후 프랜이 병원에서 치료를 받다가 사망했지만 의사의 치료 과실이 아니라 랜섬이 투약한 치사량의 모르핀 때문에 사망한 것이라면 결과적으로 프랜의 사망이라는 결과도 발생했으므로 살인죄 기수가 된다.
그런데 랜섬한테 할란의 사망에 대해서도 죄가 인정될 수 있을까는 의문이다. 랜섬은 할란의 직업 간병인의 의료가방 안에 있는 할란한테 투약할 것으로 보이는 약통의 약물을 뒤 바꿔치기만 했다. 약병 속 약물을 바꾸었어도 1) 마르타는 직업 간병인으로서 제대로 된 약물을 투약해야 할 의무가 있고 실제로도 제대로 된 약물을 투약했으며, 2) 할란은 실제로는 마르타의 잘못된 설명 때문에 사망하게 된 것이다. 즉, 랜섬이 약물을 바꾼 행위와 할란의 사망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있다고 볼 수 없다고 생각한다.
다. 마르타한테 상속인 결격 사유가 인정되는지 여부
할란은 자신이 사망하면 전재산을 마르타한테 준다고 유언을 했는데, 이것은 포괄유증에 해당한다. 포괄적 수증자는 상속인과 동일한 권리의무가 있고, 수증자한테는 상속인 결격사유가 적용되므로, 마르타도 상속인 결격사유가 인정되면 유증을 받을 수 없다. 그러나 상속인 결격사유는 고의로 피상속인을 살해하거나 살해하려 했거나, 고의로 피상속인에게 상해를 가하여 사망에 이르게 해야 한다. 즉, 고의로 피상속인에 대한 살인죄 또는 살인미수죄 또는 상해치사죄를 저질러야 한다. 그러나 마르타가 모르핀을 과다 투약했다고 오인해서 할란한테 잘못된 정보를 알려준 것이 할란의 사망에 직접적 원인이 되었지만 마르타한테 할란의 사망에 대한 고의가 없고 살인죄, 살인미수죄, 상해치사죄 어디에도 해당하지 않기 때문에 상속인 결격사유에는 해당하지 않는다.
따라서 상속인들의 유류분 문제를 차지하면, 마르타는 할란의 전재산을 포괄유증받을 수 있다.
개인적인 감상평은 마르타가 나쁜..이라고 생각한다. 할란의 죽음은 마르타 탓이다. 돈을 받고 간병을 하는데 직업상 과실이 없다고 할 수 없다. 물론 프랜의 죽음은 랜섬한테 책임을 물어야 한다.
감독의 의도에 동의하기 어렵다 보니 마르타가 곱게 안 보였달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