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사랑하게 두세요
큰 아이가 이번에 중학생이 되었다.
내가 사는 작은 지방 소도시 안의 더 작은 동네에서는 선택할 수 있는 중학교가 3군데 있다. 남녀공학 2곳 여자중학교 1 곳.
큰 아이는 여자중학교에 입학했다.
주변에선 남녀공학을 선호하는 추세였지만 나는 여중을 제안했고, 큰 아이도 내 의견을 반영해 여중을 지원했다.
같이 딸을 키우는 학부모들 사이에선 여자중학교를 선택한 것에 우려를 드러내기도 했다.
"나도 여중을 나왔지만..."
"나는 여중을 나오진 않았지만..."
으로 시작하여 여자들끼리 모여 있으면 더 위험하다, 여자 아이들이 더 악랄하다,라는 조언을 해주었다.
마음이 쓰이지 않은 것이 아니었지만 나 역시 "엄마도 여중을 나왔는데 너무 좋았거든"으로 시작하여 아이와 대화하고 고민하여 선택했다.
물론 선배들의 꼰대질과 선생님들의 부도덕함이 없었다고 말할 순 없지만, 나는 중학교 3년 내내 연극반 활동을 하면서 꿈을 키웠고, 추억을 만들었다.
그렇게 아이와 함께 엄마의 중학교 시절을 이야기하며 큰 아이의 중학교 생활을 응원했다.
"엄마가 중학교 때, 정말 좋아하던 선배가 있었는데... 얼마나 좋아했냐면 매일 편지를 적은 일기장을 모아 선배에게 주고 용돈만 생기면 선물을 사서 선배에게 줬어.
그리고 엄마를 좋아하던 친구가 있었는데. 그 친구는 공개적으로 엄마에게 사랑을 고백해서 엄마가 많이 곤란했었지."
"와~.... 그런데 엄마, 여자 중학교 아니었어?"
"응! 엄마가 좋아했던 사람도 여자 선배였고. 엄마를 좋아하던 친구도 여자 친구였지."
지금은 어떤지 잘 모르겠지만, 우리 시절 여중에서는 동성 친구나 선배를 좋아하는 일들이 비일비재했다.
나중에 외국으로 도망가서 그 선배와 결혼을 할 거라고 공개적으로 말하던 친구도 있었다.
지금 와 돌이켜 보면 귀여웠다고 웃으면 이야기할 수 있지만, 그 시절 우리는 꽤 진지했다.
동성애라는 단어와 이슈를 그 시절엔 알지 못했다.
누가 시켜 그런 것도 아니고, 유행을 따라 하고 싶어 그런 것도 아니고.
보는 사람이 늘 동성이다 보니 그런 마음은 자연스럽게 생겨났고, 졸업과 동시에 자연스럽게 사라졌다.
그리고 지금 나는 동성애자를 차별하는 그 어떤 의견에도 동조하지 않는 어른으로 자랐다.
사람은 타인을 왜 사랑하게 되는 것일까?
나는 왜 그 사람을 사랑하게 되었을까?
그냥 그 사람의 모든 것이 좋았다. 그와 함께 하는 시간이 행복했고, 그를 안고 키스하고 만지고 싶었다.
여기서 그 사람이 반드시 남자여야 하는 조건은 없었다.
왜 그 사람이 동성이면 안되는지 나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은 그렇게 마음먹은 대로 되는 것이 아니지 않은가.
내 사랑이 누군가에게 나쁜 본보기가 된다는 말이 얼마나 코미디 같은 말인지.
내 사랑이 성행위와 동일시되고 그것이 치명적 전염병의 시발점이고 유일한 경로라고 몰아붙이는 것이 얼마나 편협한 사고인지.
인간의 성을 단순히 여성과 남성으로만 구분 짓는 것이 과학적으로도 얼마나 무리가 있는 것인지 말할 기회가 있었다. 그저 발현되는 것에 따라 성이 구별될 뿐 나의 내부에서 어떤 성향이 발현될지 알 수 없는 것이란 말을 하려다, 평소 늘 침착하고 조언보단 침묵을 선택하던 지인이 발끈하며 전혀 인정할 수 없다는 투로 정색하던 일이 있었다.
그녀는 절실한 기독교인이었다.
또 다른 기독교 지인은 나에게 교회에서 주최하는 강의에 초대했다.
동성애가 얼마나 큰 죄인지 유명 목사의 강의였다. 에이즈의 원흉.
나는 속으로 얼마나 경악했는지 모른다.
세상은 나와는 너무 다른 사고를 가진 사람들이 천지란 걸. 그런 사람들이 평소 비상식적이고 무례한 사람들이 아니었다는 것은 나에게 너무나 큰 충격이었다.
때문에 나는 입을 닫는 쪽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그들의 생각을 존중해야겠지만, 거짓 정보와 오류에는 결코 동조할 수가 없어 나는 당신과 생각이
좀 달라요, 정도로 말하고 돌아 설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들은 돌아서는 나를 돌려세워 물었다.
그럼 당신 자식이 동성애자라도 상관없어요?
나는, 진지하게 생각했고 거짓 없이 대답했다.
전혀. 우리 딸들이 사랑한다고 데리고 온 사람이 긴 머리에 매달 생리를 하는 여자라도 상관이 없어요.
자식을 걸고 함부로 질문한 당신과 자식의 미래를 함부로 단언한 나 중 누가 더 무모하고 어리석은지 사실 잘 모르겠다.
하지만, 적어도 이번만큼은 지고 싶지가 않다.
동성애를 지지한 것이 아니라 인정하는 것이고.
우리가 아무리 왈가왈부해 봤자 이미 그것은 진행 중이고 앞으로도 진행될 것이다.
제발 그냥 그들을 내버려 두면 좋겠다, 진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