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학을 전공했지만 의사는 되지 않은 율리에는 변덕이 심한 스물아홉의 방황하는 청춘이다 심리학도 전공하고 사진도 전공하고 글도 쓰고 하고 싶은 대로 살아보지만 뭐 하나 이룬 거 없이 불안으로 잠식하는 영혼이다 우연히 파티에서 만화작가 A와 영화처럼 사랑에 빠져 동거 중인데 사실 결혼만 안 했지 서로의 부모님을 다 알고 지낼 정도로 꽤 오래 만나왔다 어쩌면 율리에의 인생에 가장 깊은 교감의 상대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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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는 마흔셋이라는 나이 때문인지 단란하고 안정적인 가정을 꾸리길 원하고 아이를 갖자며 종용하거나 가스 라이팅 하길 서슴지 않는다 일부러 아이 있는 부부와 함께하는 모임에 율리에를 데리고 나가지만 아이를 봐도 모성애를 느끼지 못하겠다며 아직은 그런 삶은 원치 않는다는 대답으로 선을 긋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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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자연스러운 대답일 것이다 율리에나 나 같은, 욕망이 많은 사람들은 뭐든 다 겪고 이뤄야 산다고 살아있다고 말할 수 있을 테니까 더구나 이십 대는 뭐든 경험하며 실패하는 시기가 아닌가 한 남자 곁에서 아이를 낳고 키우고 내조하는 삶을 꿈꾸지 않은 이상, 이상보다는 희생일 수 있으니 강요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 더구나 율리에는 혼란과 방황 속에서 이뤄낸 것도 깨달은 것도 없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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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동반 모임에서 저녁 식사할 때 맨스 플레인에 대해 맨스 플레인 하는 씬이 있는데 율리에가 받아치는 거 좋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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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뒤, 율리에는 A의 만화출판 기념 파티에 참석한다 파티에 온 사람들은 그에게 무슨 일을 하냐고 물어대고 율리에는 쿨하게 동네 서점에서 일한다고 대답한다 그렇게 말하고도 스스로 성공한 애인에 비해 초라한 자신을 느낀 그는 도망치듯 그곳에서 나온다 노을이 아름답게 지는 하늘을 보며 그녀는 눈물을 훔친다
나는 내 삶에서 조연 역할을 하는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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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 사이사이로 분홍빛 주홍빛 연보랏빛 노을이 너무 아름다워서 더 비참하게 느꼈을 것이다 저 하늘도 저렇게 아름다운데 나는 왜 이리도 못났을까 싶은 감정이 처참하게 느껴지던 씬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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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그녀는 집이 아닌, 모르는 사람의 결혼식 뒤풀이 파티에 몰래 들어가 술 마시고 춤추며 놀다가 B와 친해지게 된다 B는 율리에처럼 애인이 있는 남자다 서로 바람은 나쁜 거라며 절대 안 된다면서 어디까지면 바람이 아닌 거냐고 되물어 가며 아슬아슬 경계를 넘을 듯 말 듯 이것은 바람이 아니라고 항변하며 썸을 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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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실에서 서로 소변보는 걸 구경한다던지 불도 켜지 않은 침실에서 깊고 진한 얘기를 나누는 장면은 극도로 섹슈얼하게 느껴져서 그 어떤 애정씬보다 짜릿하고 심장이 떨렸다 그러므로 이것은 바람을 너머 사랑일 수도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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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아침 두 사람은 못내 아쉬움에 서로의 이름이나 연락처를 교환하지 않은 채 헤어진다 이전의 삶으로 돌아간 율리에는 애써 자신의 애인에게 집중해보지만 우연히 서점에서 일하다가 파티장에서 만난 그 남자를 다시 만난 이후로 율리에의 마음은 온통 그 남자로 뒤덮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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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독특한 씬이었는데 세상 모든 것이 멈춘 상태로 율리에만 달려가서 그와 만나고 데이트하는 씬인데 실제가 아닌 그의 마음을 망상한 부분이라 낭만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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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이런 망상까지 하는 자신 때문에 애인에게 이별을 고하게 되고 자신과 비슷한 B와 뜨겁게 연애하지만 은근 그를 A와 비교하며 무시한다_자신의 글을 보고 좋다는 B의 말에 작가도 아니면서 평가질 하냐며 짜증을 내고_심지어 B의 아이까지 가지게 되면서_서로 아이를 갖지 말자고 했었기에_율리에는 더욱 혼란스러워한다 그러던 어느 날 A가 라디오 방송에서 페미니스트들한테 공격당하는 걸 보고 내심 시원하면서도 궁금해지고 그는 A의 친구를 통해 그가 암에 걸려 죽어간다는 얘길 듣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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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를 찾아간 율리에는 B에게도 말 못 한 임신 사실을 전하고 그에게 축하까지 받는다 정작 A가 원했을 땐 질색했었지만. A가 죽기 전 마지막 인터뷰와 사진 촬영을 하게 되는 율리에 용기 내어 B에게 임신 사실을 알리지만 결국 아이는 유산되고 그와도 헤어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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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 율리에는 배우의 스틸 컷을 찍으며 누군가의 삶을 인터뷰하는 일을 하게 된다 죽은 A의 마지막을 카메라에 담으며 누군가의 삶을 담아내는 것이야말로 가장 자신의 인생에 주연다운 일이라고 생각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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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슷한 예로 내가 배우에서 감독으로 포지션을 바꾼 이유와도 비슷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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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리에는 일을 하다가 우연히 B를 보게 된다 아이를 원치 않던 그가 다른 여자와 아이를 데리고 가는 모습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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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언제나 선택으로 구성된 이율배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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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으로 꿈 때문에 내 인생에 주연이 되고 싶어서 끝없이 방황하던 날들이 떠올랐다 그리고 선택에 선택들 나는 나의 선택들로 이뤄진 지도를 갖고 있지만 그것은 미로에 가까웠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