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영화의 모든 것
인간은 빛의 모습을 추구해야 밝아지는 것이 아닌, 어두움을 의식화해야 밝아진다는 분석 심리학자 칼 융의 말은, 폴 토마스 앤더슨의 [펀치 드렁크 러브]라는 작품을 함축적으로 잘 대변한다. 여기서 ‘의식화’ 한다는 의미는 어떤 대상에 대하여 깨닫거나 생각하게 된다는 뜻이다. [펀치 드렁크 러브]는 빛과 어두움이라는 매개체를 축으로, 한 인물의 정체성을 사랑 이야기라는 보편적인 서사에 굉장히 독특하고 기발하게 담아냈다. 근대 영화사에서 가장 완성도 높은 걸작들을 만들고 있는 폴 토마스 앤더슨의 4번째 장편 영화 [펀치 드렁크 러브]는, 믿을 수 없을 만큼 사랑스럽고 달콤한 영화다.
전체적인 폴 토마스 앤더슨의 작품들을 관망한다면 그가 사용하는 구조적 특징이 눈에 띌 것이다. 전기와 후기를 나누어 차이점을 관찰했을 때는 작품의 온도나 이야기를 전개하는 그의 시선 정도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의 작품들이 매번 관객들에게 호소하는 부분에는,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한 불완전함과 이를 망각하고자 방황, 혹은 고군분투하는 인류라는 존재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이 존재한다. 이에 상응하여 앤더슨은 이 물음을 필두로, 그리고 두 인물을 축으로, 상호 의존적인 구조적 관계를 배치 함으로써 관객들에게 나아간다. 여기서 독특한 점은 그 두 인물은 사회적, 육체적, 그리고 정신적인 지위나 권력의 상관없이 상호의존적인 관계를 부여받는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폴 토마스 앤더슨의 영화에서의 두 중심인물은 이야기 연계상 매우 중대한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 이러한 양극의 구조적 설정이 유일하게 구별되는 영화가 [펀치 드렁크 러브] 일 것이다. [펀치 드렁크 러브]는 [팬텀 스레드]를 제외한 P.T.A (폴 토마스 앤더슨)의 영화 중 유일하게 이성 간의 사랑이 축이 되는 영화이며, 어쩌면 그의 영화 중 가장 따뜻한 작품이다.
[펀치 드렁크 러브]를 더욱 깊이 설명하기 앞서 간단한 영화적 이론을 그래프를 통해 설명하고자 한다.
관객으로서 프래임 내에 우리의 시선은 영화의 두 객체의 동선을 따라 움직인다. 하나는 ‘피사체’의 동선이다. 즉, 이야기를 전개하는 피사체의 동선에 따라 관객의 시선은 움직이게 된다는 것이다. 둘째로, 다른 하나는 ‘카메라’의 동선이다. 이것은 인물을 담고 있는, 영화를 찍고 있는 카메라를 의미한다. 카메라가 움직일 때 우리의 시선도 함께 이동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래프로 보았을 때 우리는 이런 움직임들을 세 가지 축으로 표현할 수 있다. Y축은 상, 하를 그리고 X축은 좌, 우를 나타낸다. 그리고 깊이감을 조장하는 축은 Z 축이다. [펀치 드렁크 러브]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축은 Z 축이다. 감독은 프레임의 ‘깊이’라는 개념 내에 정체성이라는 또 다른 은유를 부여하여 인물의 동선을 정체성으로부터 해방받고자 하는 내면 심리로 표현했다. 이러한 감독의 설정은 영화의 오프닝 시퀀스를 통해 관객들에게 전달된다.
영화의 첫 장면은 극의 주인공인 베리를 프레임 가장 깊은 곳에 배치함으로써 그가 은둔하는 성격을 가진 인물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그를 상징하는 색상은 파란색인 점을 조명하며 그가 항공사 프로모션 사은행사에 대하여 상담사와 전화를 하고 있다는 간단한 정보들을 관객들에게 나열한다. 그는 비행기 프로모션에 집착한다. 이런 특성은 그가 자신이 처해져있는 상황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욕구가 굉장히 강한 인물임을 드러낸다. 그리고 영화의 첫 장면부터 시작해 감독은 계속해서 전화기라는 매개체를 통해 이야기를 전개해 나아간다. 이런 연계를 바탕으로 전화기가 부여하는 인물의 특성은 그가 익명성 내에 존재하는 인물이며, 사람을 대면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 그는 세상으로부터 단절되어 있지만, 동시에 연결되어 있다는 오묘한 모순점도 발견할 수 있게 된다. 예술이란 개념이 모순을 내포함과 동시에 인간의 목적의 대상이 되는 것은, 언어로 형언할 수 없는 모순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아름다움을 지녔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개인적으로 P.T.A의 작품들은 심오한 주제들을 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안에 아름다움을 품고 있다고 생각한다.
전화를 끊고 베리는 어둠 속으로 걸어가는 듯 보이지만 사실 그는 그의 작업 문을 열고 외부로 나간다. 이런 디테일은 스토리의 연계를 함축적으로 잘 설명해준다. 그는 (정체성) 내부에서 (정체성) 외부로 나가기 전, 자신의 그림자를 (어두움을) 마주하게 될 거라는 것이다. 영화에서 그림자의 상징성은 단순히 나쁜 것들을 의미하는 것이 아닌, 베리라는 인물의 정체성으로부터 드러내어지지 않은 모든 물음들을 망라하고 있는 것이다. 창고식 작업실인 그의 작업실 문을 위로 열고 밖으로 나가보니, 그는 여전히 외부로부터 단절되어 있다. 그의 창고는 가장 깊은 곳에 위치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카메라는 창고로 들어가는 도로를 향해 나아가며 차의 전복 장면과 동시에 익명의 인물들이 차를 타고 도로 한복판에 버린 오르간을 보여준다. 여기서 독특한 점은 P.T.A가 부각한 사운드 이펙트에 있다. 차가 전복되기 전, 정적이 부각됨을 통해 사고의 순간 큰 음향효과는 관객들을 자극하게 된다. 이런 장면을 P.T.A는 어떤 연계적 명목 하에, 그것도 영화의 극초 반부에 배치하게 되었을까? 그의 대답은 신기하게도 보편적인 영화의 오프닝에서 히트곡을 들려주듯이 영화 내부로 끌어들이는 장치 정도라고 이야기했다. 영화의 리듬의 측면에서 이런 조절을 활용한 작법은 관객으로 하여금 무의식적으로 영화에 몰입하게 된다는 것이다. 허나 이렇게 영화 맥락의 리듬을 조절하는 독특한 그의 기법은 단순하지만은 않다. 이런 장면이 전혀 개연성 없는 오직 경적으로서의 역할로만 작용한다고는 말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것은 어쩌면 베리라는 인물의 상상, 혹은 과도한 과장일 수 있을 것이며, (누나들의 집착 또한 베리의 시점으로 보이는 것을 보아, 실제 누나들의 태도와 달리 더욱 짜증 나게 느껴짐을 볼 수 있듯이) 이것은 어쩌면 외부로 나가기 두려운 그의 심리상태 또한 조망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베리의 시점에서 외부로부터의 자극은 큰 소리로 표현된다. 차가 전복되는 것도, 이후에 오르간을 훔쳐서 안으로 들어올 때도 (대형트럭의 소리), 그리고 직장 하사가 문을 열고 들어올 때도 말이다.
오르간을 가져오고 싶어 하는 듯 보이지만 실행으로 옮기지 않는 베리는 곧이어 자신의 여동생의 직장동료이자 붉은색을 상징하는 레나를 만나게 된다. 관객들은 사실 이 장면을 기점으로 베리는 레나와 사랑에 빠지게 될 거라는 사실을 어느 정도 인지하고 영화에 임하게 된다.
그렇다면 P.T.A가 관객들에게 진심으로 표명하고자 하는 바는 무엇일까? 작품이 단순한 로맨스 영화가 아니라는 가정하에, P.T.A는 이런 질문을 의도적으로 관객들이 던지길 바랬을 것이라 추측해본다. 사랑에 빠지는 일은 A라는 화자 혹은 주체가 B라는 대상에게 나를 사랑해줄 수 있니? 혹은 너도 나를 사랑하니?라고 묻는 것임과 동시에, 자기 자신인 주체에게 끝없이 질문을 던지는 것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사랑이 이루어지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A라는 화자는 자신이 던진 질문에 답을 찾아내는 것이 가능할 것이다. 이것은 아주 흔한 예를 들어 자신을 사랑하지 못했던 인물이 자신을 사랑할 수 있게 되는 것처럼 주체로서의 성장이나 변화에 대해서도 영향을 미치게 되는 행위인 것이다. 반대로 B도 동일하다. 질문을 받게 되는 인물은, 나도 A라는 인물을 사랑하는지, 더 깊게는, 사랑할 준비가 되었는지, 더 나아가, 나'라는 존재에 대한 물음, 혹은 사랑이라는 개념 자체에 대한 물음 또한 물을 수 있게 된다. 그렇기에 사랑이라는 행위가 인간에게 던지는 질문은 그 어떤 개념보다도 복잡하고 특별하다. 여기서 P.T.A가 피력하는 바는, 사랑이라는 행위 내에서 베리라는 인물이 주체로서 던진 질문을 스스로, 허나 대상에게 답하게 되는 것이라는 것이다. 어쩌면 [펀치 드렁크 러브]는 사랑이라는 개념 범주 내에서 베리라는 인물이 처음에 알지 못했던 자신의 결함, 정체성, 혹은 물음을, 레나라는 인물을 만남으로 인해 대상이 아닌 주체로서 찾게 되는 해답의 관한 영화인 것인지도 모른다.
베리는 레나를 만나고 난 뒤 어느 순간 오르간을 훔치기로 마음먹는다.
그는 그 오르간을 훔치기 위해 어둠 속에 있다가 빛으로 나온다.
그는 사무실로 들어가 그것을 연주해보려 하지만 곧 이내 그의 직장 하사가 들어오며 그는 깜짝 놀라고 만다. 베리는 오르간을 보고 이것이 무엇이냐고 묻는 직장 하사에게 소형 피아노라고 대답해 보지만, 직장 하사가 아니라고 하며 그래서 왜 길가에 버려졌는지에 대해 묻자 베리는 얼버무리다 계속되는 그의 질문에 그는 영화의 시작을 알리는 결정적인 대사를 읽는다. 대사는 다음과 같다.
"모르겠어."
그렇다면 실질적으로 오르간이 상징하는 바는 무엇일까? 오르간은 남들로부터 숨기고자 하는 베리의 죄의식, 진실 그리고 물음을 상징한다. 그렇기에 이것이 무엇인지 모르던 베리가 마지막에 레나를 찾아갈 때 뜬금없이 오르간을 가지고 가는 행위는, 자신의 결함, 즉 죄의식에 대하여 고백할 것이며 나 자신조차 아직 불확실한 나의 물음들을 당신과 함께 찾을 준비가 돼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이를 방증하는 듯 베리는 자신이 저지른 실수를 고백하며 이제는 평생 당신과 함께하고 싶다고 얘기한다.
생일 파티에 오라는 누나들의 집착과 강요에 베리는 끝내 이기지 못하고 파티에 가게 된다. 누나가 7명이라는 영화의 설정은 소음에 대한 감독의 의도를 직조한다. 만일 누나들의 수가 더 적었다면, 각 인물들이 모인 자리에서 자극을 큰 소리(지속적인 질문)로부터 (앞서 조명했듯이 베리에게 외부로부터의 자극은 큰 소리로 표현된다) 느끼는 베리의 모습을 담아낼 수 없었을 것이다. 파티에 간 베리는 누나들의 끊임없는 질문에 답을 하지 못하며 다소 혼란스러워한다. 이러한 점은 베리가 답을 알지 못하는 인물임을 조명함과 동시에 그가 외부로부터의 자극에 극에 달하는 순간 표독스러워진다는 점도 조망한다. 그렇게 그는 누나의 집 유리창을 때려 부수고 만다.
그렇게 분노를 표출한 베리는 치과의사인 형부에게 자신의 정신적인 문제들을 털어놓는다. 어이없어 보이는 형부, 베리는 의사들이 비밀을 잘 간수할 거라는 생각에 그의 이야기를 형부에게 얘기한 것이다.
"문제가 있는지도 없는지도 모르겠어요."
베리는 여전히 자신의 문제가 무엇인지 알지 못하는 인물이다. 자주 운다고 얘기한 그가 울기 시작하며 프레임 밖으로 도망가는 모습은 자신이 짊어진 문제점들을 뒤로하고 도망가는 것처럼 보인다.
마트에 가서 비행기 회사의 판촉 행사가 마일리지를 원가격이 아닌 몇 배는 싸게 판매한다는 사실을 알아낸 베리는 마일리지를 모으기 위해 싼 푸딩들을 대량 구매한다. 이 점은 정체성에 관한 베리의 문제점을 실질적인 묘사를 통해 은유로 표현하는 것이다. 앞서 설명한 바 있듯이, 문제점이 무엇인지 모르던 베리는 비행기를 타고 도망치는 것을 자신의 문제에 해답이라고 여기는 인물이다. 그렇게 집으로 와 쿠폰을 자르던 베리는 신문지에 붙어있는 폰섹스 라인에 전화를 하게 된다. 자신의 비밀에 대해 예민하게 반응하던 그는 자신의 개인정보를 유출한다. 베리는 결국 이에 누군지 모를 그 여자에게 전화로 협박을 받기 시작한다. 이 장면이 흥미로운 점은. 베리가 가장 굳건히 믿던 익명성이라는 개념이 이제는 그를 협박하는 불신의 존재가 됐다는 것이다.
출근한 베리는 극도의 불안증세를 보이고, 곧이 내 동생은 레나를 그의 일터로 데려온다. 베리의 파란 색상을 용인한 레나는 그녀의 빨간색과 결합된 보라색의 드레스를 입고 온다. 여자로부터 계속 걸려오는 전화와, 동생의 반복되는 질문은 베리를 혼란의 극에 달하게 한다. 하지만 결국 레나는 베리에게 데이트를 신청하고 베리는 그녀의 신청을 받아들인다. 그렇게 약속을 잡은 뒤 폰섹스 여자에게 마지막으로 전화가 오고 그녀는 베리에게 감당 못할 전쟁을 시작한 것이라 알린 뒤 전화를 끊는다.
베리는 레나와 데이트를 하게 되지만, 레나가 동생이 자신의 유년시절 창피했던 일화를 예기해주었다고 하자, 화장실로 들어가 물건들을 부수고 만다. 그렇게 레스토랑에서 쫓겨나게 되는데 [펀치 드렁크 러브]는 다른 보편적인 로맨스, 혹은 일반화된 영화와는 달리 베리가 이런 비신사적인 행위를 범한 시점에서 달콤한 음악을, 그리고 클로즈업을 통해 그들이 더 가까워지는 과정을, 차 안에서 대화하는 장면을 통해 담아낸다.
오르간을 훔쳤냐는 레나의 질문에 솔직하게 맞다고 대답하는 베리, 베리는 처음으로 주체로서 가면을 쓰지 않은 자신을 드러냄과 동시에 누군가의 질문에 명확한 답을 준다. 하와이에 오라는 레나의 제안을 유보한 채 그녀의 아파트를 나온 베레에게 레나는 1층 로비로 전화를 건다. 헤어질 때 정말 키스를 하고 싶었다는 말에 베리는 그녀의 집을 찾으러 올라간다. 아까 얘기했듯이 이 영하의 중심축은 z 축이다. 이 장면은 이 사실을 부각한다.
미로를 헤매는 듯한 베리, 여러 번 EXIT 싸인을 달리는 그의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그가 와해된 그의 정체성으로부터 해방받고자 하는 내면 심리를 나타낸다. 그리고 결국 레나를 찾은 베리는 그녀의 입술에 달콤한 키스를 한다.
그렇게 행복한 감정을 안은 채 집으로 돌아온 베리는 폰섹스 업체에서 그의 돈을 갈취하고자 보낸 일행들에게 습격을 당해 돈을 잃고 만다. 폭행을 당한 베리는 그들로부터 도망치기 시작하고, 이 장면은 레나를 찾으러 헤매던 전 장면을 거울형 구조를 베치 함으로써 반영한다. 어둠 속에서 질주하는 그에게 일행은 그가 살고 있는 집을 안다고 하고서야 달리기를 멈춘다. 도망칠 수 없는 그들로부터 도망치기를 포기한 그는 하와이로 떠나기로 마음먹고 래나를 사랑하게 된 베리는 빨간 타이를 매고 공항으로 향한다. 그는 어두운 터널, 즉 자신의 그림자를 넘어 비행기 내부로 들어간다.
하와이에 도착한 그는 택시를 타고, 해변가 호텔로 데려가 달라고 말한 뒤 전화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사실상 이런 대사는 1차원적 정보를 전달하는 측면에서는 불필요하다고 봐도 무방하다. 하지만 전화기를 찾는 이 대사는 은유적으로 베리라는 인물이 아직은 대상을 곧바로 직면함을 회피함으로써 전화라는 매개체를 통해 인물들에게 나아가고자 하는 정신적인 심리를 조명하고자 넣은 대사라는 것을 유추해볼 수 있다. 이런 그의 내면 심리는 극의 클라이맥스에 도달할 때 극복하게 된다. 동생에게 전화를 해 레나의 번호를 물어보는 베리의 주변은 축제라는 설정을 통해 아주 큰 소음을 만들어낸다.
외부로부터의 자극에 중심에 선 베리는 포기하지 않고 레나에게 전화를 걸고 파란 공중전화기에 따뜻한 붉은 불이 켜질 때, 그는 레나의 목소리를 확인하고 기뻐한다. 여기서 흥미로운 점은 상황의 형세가 뒤집혀 이제는 베리가 레나에게 질문을 묻게 된다는 것인데, 이는 큰 소음, 즉 외부로부터의 자극에서 해방된 베리의 상황을 드러낸다는 점이다.
약속 장소에서 기다리는 베리, 그리고 처음에 흰 차를 몰고 왔던 레나는 다시 한번 흰 드레스를 입고 걸어온다. 둘을 제외하고는 그들이 존재하는 공간은 비어있으며, 빛이 들어오고 있다. 그렇게 중간 지점에서 만난 둘은 키스를 하며, 사랑을 확인하는데, 여기서 감독의 연출은 굉장히 인상적이다. 단순히 키스하는 둘을 프레임에 담아내는 것이 아닌, 풀 샷, 그리고 와이드 샷의 형태로 실루엣 샷을 연출한다. 그들의 그림자를 보여줌을 통해, 앞서 서두에 말했던 베리의 그림자를 표현한다.
그리고 아무도 없던 공간에 어린아이들과 휠체어에 탄 장애인을 필두로 여러 사람들이 지나가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어리고 평범하지 않은 베리의 정체성을 드러낸다.
그렇게 사랑을 나누고 아침이 되어 폰섹스 업체에 전화를 걸어 경찰에 신고한다고 얘기한 베리는, 레나와 함께 다시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공항으로 향한다. 베리와 레나 둘 다 파란 계열의 옷을 입고 있음을 통해 이제는 상보적인 사이가 되었다는 것을 조명한다.
그렇게 레나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온 베리는 다시 한번 같은 일행들로부터 습격당하게 되는데, 전 상황과는 달리 레나의 머리에서 흐르는 피를 본 베리는 일행들을 힘으로 손쉽게 제압하고 병원으로 향한다. 하지만 곧이 내 베리는 레나를 뒤로하고 사무실에 가서 폰섹스 업체에 전화를 하고 그 시간 레나는 보호자 없이 홀로 방치되고 만다. 돌아온 베리는 레나가 홀로 퇴원했다는 것을 알고, 폰섹스 업체의 본사가 위치한 유타로 향한다. 이 점은 전화기라는 익명성으로부터 해방되어 대상을 마주할 준비가 된 베리의 정체성을 나타낸다.
그곳에 도착한 베리는 업체의 사장과 담판을 짓는다. 그림자를 직면하게 된 베리의 대사는 간결하고 묵직하며, 사랑스럽다.
"나한테 당신이 모르는 힘이 있어, 내가 가진 사랑, 당신이 상상하는 어떤 것보다도 강한 힘이 있지. 그러니까 이제 이게 마지막이야 매트리스 맨."
경찰에 전화하지 않았으니 자신도 그냥 넘어가겠다는 사장을 뒤로하고 베리는 그의 사무실로 빠르게 향한다. 잽싸게 오르간을 집어 레나의 집으로 향한다.
앞서 미리 얘기했듯이 [펀치 드렁크 러브]에서 오르간이라는 매개체가 지닌 상징성은 남들로부터 숨기고자 하는 베리의 죄의식, 진실 그리고 물음이며, 레나에게 갈 때 오르간을 가져가는 이유는, 오르간, 즉 자신의 결함, 죄의식 그리고 물음을 그녀에게 고백할 것이며 나 자신조차 아직 불확실한 나의 물음들을 레나과 함께 찾을 준비가 되었음을 보여주기 위해서이다.
이 장면은 어딜 가든 레나와 함께할 것이라는 베리가 그녀에게 청혼을 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 의미에서 오르간은 깨지지 않을 약속이란 상징성을 얻게 된다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엔딩 장면은 이 영화의 오프닝처럼 전체적인 구조의 맥락을 하나의 시퀀스를 통해 아주 잘 묘사하고 있다. 베리의 사무실 내부로 레나가 걸어 들어오게 되는데, 이 장면은 역시 그림자를 부각하는 실루엣 샷으로 연출됐다. 이것은 베리의 정체성으로 들어오는 레나를 보여주는 훌륭한 방식이다. 그리고 오르간을 연주하고 있는 베리의 어깨에 레나가 기댈 때, 카메라는 그들에게 다가가고, 그림자에 감춰졌던 그들의 얼굴이 함께 프레임 에 비춰 드러난다. 그리고 레나의 결정적인 대사가 나오는데 대사는 이렇다.
"그럼 같이 가요."
이 영화의 시작을 알리는 대사는 "모르겠어"였다. 그리고 이 영화의 마지막 대사는 “그럼 같이 가요"이다.
주체로서 던진 질문을 수거하며 대상에게 고백한 베리, 그의 대상은 레나였고, 그들은 사랑에 빠져 함께 같은 길을 걷게 된다.
길게 늘어진 햇빛이 그의 어깨에 비스듬히 걸쳐 그를 구원해주었고, 우리는 결국 끝없이 질문하고 다시 제자리로 돌아올 수밖에 없는 존재인 것을 자각할 때 즈음, 이 영화는 말한다,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을 때 우리가 간직하게 될 기억이 나쁘지만은 않다면, 그 추억을 희망 삼아, 햇빛 앞에서 뒤로 늘어진 그림자를 향해 미소 지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한 줄 평: “인간은 빛의 모습을 추구해야 밝아지는 것이 아닌, 어두움을 의식화해야 밝아질 수 있는 존재이다.” - 칼 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