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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영선 여행가 Apr 14. 2021

여행자의 신, 김찬삼 교수

완벽한 여행인

다시 김찬삼 교수님을 찾아뵈었다.


오늘 교수님은 기분이 좋으시다.

교수님은 웃으시며 숙제 검사를 하시겠다신다. 

“조회장. 지도 접어 봤어요? 잘 되나 한 번 접어 보시오.”


나는 지도를 책상 위에 놓고 재빨리 폈다가 다시 접었다.

다행히 한 번에 잘 됐다. 

선생님은 웃으시며 “전혀 연습을 안 한 것은 아니네.... 하신다.” 


선생님은 지도 한 장을 집어서 한 귀퉁이를 잡고 아래로 탁 내려치신다. 접혔던 지도가 확 펴진다.


펼쳐진 지도의 아랫단, 중간 부분을 가운데 손가락으로 아주 살며시 들어 올리니 지도는 접혔던 금을 따라 자연스럽게 접히면서 따라 올라온다.


마술에 홀렸나?! 나는 아예 까무러칠 번했다. 

“선생님 마술 하세요?”


선생님은 그냥 웃으신다 늘 웃는다. 


지도를 그렇게 접도록 하라는 말씀은 없으셨다.


나는 지도 숙제를 합격한 것으로 생각하고 선생님께 용기를 내어 말씀드렸다.


“교수님. 제가 이번에 서울 여행인 협회라는 여행인 동호회의 회장을 맡았어요. 저희 모임에서는 회장이 여행을 계획하고 안내하는 것이 관행으로 되어있습니다. 저도 의미 있고 멋진 여행지를 선정하고 회원들을 인솔하고 여행을 할 수 있도록 가르쳐 주세요. 한 번은 꼭 치러야 할 것 같아서요. 부탁드립니다.”

그러나 교수님은 묵묵부답이시다. 어이없다는 듯이 웃으신다.


그리고는 다시 하시던 일을 하신다. 


나에게는 의자를 끌어다가 앉으라고 하신다.


오늘은 슬라이드 박스를 만드신다.

(30년을 가까이서 뵈었지만 사셔도 되겠는데 반드시 당신 손으로 만드신다.)

김찬삼 교수-아구 답사단 해를 따라 서쪽으로 여행 중

크기는 슬라이드 20장을 넣어서 약간의 여유가 있어야 하며 슬라이드가 편하게 손에 잡힐 공간을 두고 만드신다.


몇십 년을 만드셨으니 장인이라고 도 할 수 있다.

두꺼운 골판지를 적당한 치수로 잘라서 풀로 붙이고 바람에 건조해 만드신다. 선생님이 만드시는 슬라이드 박스는 화학 성분이 아닌 천연 재질이다. 


그러기에 오랜 시간이 지나도 내용물이 변하지 않는다고 하신다. 그분의 것은 다시 손을 댈 필요가 전혀 없다. 그대로 운반을 해서 진열만 하면 되도록 완벽하게 보관되어 있다.

교수님 댁에는 대형 냉장고가 있는데 내용물은 슬라이드다.

위에서 아래 까지, 그리고 냉장고의 깊숙한 구석까지 슬라이드로 꽉 차있다.



나는 이런 생각이 든다. 

저분이 돌아가시면 여행자를 돕는 신이 되실 것이다. 그리고 당신의 박물관에서 당신의 애장품을 매만지며 정리 보관하실 것이다. 세상의 모든 여행자 들의 신이 될 것이 분명하다고 여겨졌다.



김찬삼 교수-아구 답사단 해를 따라 서쪽으로 여행 중


한참을 선생님의 작업을 지켜보던 나는 다시 오겠습니다라는 인사를 하고 물러났다.

선생님께서 마술쇼를 하셨던 지도를 집어 다시 몰래 핸드백에 담아왔다.

사모님이 ‘아주 초보네.’하시던 말씀도 귀에 걸려 있다.


일주일분의 숙제를 단 2시간 안에 끝낸 것을 선생님은 알고 계시는 듯하다. 집에 가서 다시 연습하리라 마음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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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 종이비행기를 접었었다. 비행기는 색종이 보다 신문지로 접는 것이 좋다.


비행기를 다 접고 접은 곳의 한 귀퉁이를 힘껏 내리 치면 종이 접은 사이에서 비행기의 날개가 나온다.


종이비행기 완성이다. 그것을 하늘을 향해 힘껏 날린다 ,

떨어진다. 뛰어가서 또 주어 날린다.

종이비행기를 접으며 멀리 날릴 생각에 손가락이 벌게질 때까지 신문지를 문대던 생각이 났다. 흥분과 기대로 접고 날리고 줍기를 반복했던 어린 시절.

김찬삼 교수-아구 답사단 해를 따라 서쪽으로 여행 중

여행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외지를 탐험하고 장엄한 자연과 신기한 동식물을 만나고 낯설고도 익숙한 풍습과 사람들을 만난다는 생각에 흥분과 기대를 품으며 지도 접기를 반복하는 것


이 글을 쓰는 지금도 생각난다. 지도 펴시던 선생님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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