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영선 여행가 Apr 20. 2021

이스터 섬으로부터의 선물

선생님을 방문하고 난 며칠 후의 일이다.


서 진근 회장이 “조회장 김 찬삼 교수님을 잘 아세요?"라고 물으신다.

"네 중학교 때 지리를 가르 치셨어요."

“댁도 어디인지 아시나요?"

"네. 며칠 전에 다녀왔습니다."


"다른 게 아니라 내가 부탁이 있어서요? "

"무슨 일인데요."


"내가 이스터 섬에서 모아이의 조각상을 김찬삼 님 께 전해 달라는 부탁을 받은 게 있는데 ...

교수님 댁도 모르고 인사도 없는 분을 찾아가기가 그래서 ...

집에 보관하고 있어요. 늘 마음에 부담이 됐어요.

근데 조회장님이 김찬삼 교수님을 잘 아신다니까 그것을 보내 드려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아,! 그러시다면 같이 가서 인사도 들이고 여행 이야기도하고 차도같이 하고요."라고 하니


"아 그건 좀.. 제가 김 교수님을 존경하지만 ..... 어려운 분과 대면하는 것이 좀, 서툴러요,

기회가 있으면 만나 뵙게 되겠지요." 하신다.


다음 날 서 회장님을 잠실 롯데 백화점 커피점에서 만났다.

포장된 박스를 주시면서 “이것을 전해 주신다면 한결 마음이 가벼워질 것 같아요."하며 사연을 이야기하셨다.


김 교수님 댁으로 가고 있는 데 전화가 왔다.

"신재동입니다. 지금 어디 계십니까?"

"네. 저는 오늘 김찬삼 교수님 댁을 방문하려고요. 지금 그 댁으로 가는 길입니다."


신재동씨는 서울 여행인 협회에서 총무를 맡고 계시다.

"조회장님, 저도 같이 가서 인사를 하면 안 되겠습니까.

제가 많이. 존경하는 분입니다, 꼭 인사 좀 시켜주세요."한다.


"그러세요."

"그럼 방송 통신대학교 앞에서 만나요. 30분쯤 걸립니다."



총무 신재동님은 방랑자처럼 매인데 없는 여행을 하고 싶은 분이다.

김찬삼 교수님께서는 여행의 목표나 의의를 중히 여기시는 데 반해

신재동 님은 단순히 세상을 유유자적(悠悠自適) 하며 유람하신다.

동쪽 끝에서 서쪽 끝으로의 의미는 그에게는 대단하지 않다.

다만 일 년을 집을 떠나 낯선 곳을 다니며 새로운 것을 만나는 것이면 족하다.


시간에 얽매이지 않으며 경제적인 면에서도 걱정이 없는 사람이다.

신재동님은 누구보다도 김 교수 님에 대해서 많은 것을 알고 감격하는 사람이다.

김 교수님의 여행 전집도 읽었다고 한다.


나는 이러한 신재동님을 교수님께 인사 시켜 드리게 된 것이 기쁘다.

점심시간으로는 어중간한 시간이라 우선 교수님의 사정을 알아보려고 전화를 드렸다.


교수님이 아직 식사 전이라고 하신다.

마침 잘 되었다. 우리도 점심을 하고 들어갈 생각이었다.


"교수님 죄송합니다. 동성면옥으로 나오실 수 있으세요? 아니면 댁으로 모시러 갈까요?

교수님께서는 나오시겠다고 하신다. 댁에서는 10분이 채 안되는 거리다.

우리는 동성면옥으로 달려간다.


주차장에 차를 주차하는 데 저쪽에서 교수님이 걸어오신다.

만면에 웃음을 가득 담고 오신다.

웃음이라는 것이 아주 좋은 것이라는 것을 새삼 느꼈다.


우리 세 사람은 내실처럼 아늑한 방에 안내됐다.

내가 신재동 님을 소개했다.


"이 분은 우리 서울 여행가 협회의 총무님이며 여행을 아주 좋아합니다. 

특히 김 교수님을 존경하고 좋아하는 분입니다."


신재동님이 일어나서 기역 자로 허리를 굽혀 정중히 인사드린다.


"신재동이라고 합니다. 청년 시절부터 교수님의 여행기를 읽고 여행을 했습니다.

여행을 하며 할수록 교수님이 존경스럽고 ....

근데 오늘 조회장님께서 교수님을 뵈러 가신 다기에 막 사정을 했습니다.

인사 시켜 달라고 .... 떼를 썼습니다." 한다.


교수님은 흡족하신 웃음을 지으시며 나를 보신다.

잘 했다는 표정이시다.


교수님은 말씀이 없으셨고 신재동님의 여행 이야기를 귀담아 들으셨다.

불고기를 곁들인 냉면을 먹고 맥주는 한 병으로 했다.

신재동님과 내가 술을 못 하기 때문이다.


나는 서진근 회장님에게서 부탁받은 선물을 꺼냈다.

이스터섬의 모아이 상을 작게 만든 기념품이었다.

교수님께서 깜짝 놀라신다.

"어디서 난 것이냐?"

어떻게 해서 조회장에게서 이것을 받게 되는 것인지 물으신다.


나는 서 회장님께서 들은 것을 말씀드렸다.


서 회장님이 이스터 섬을 여행하실 때다.

일주일을 묵어갈 민박 집을 알려 달라고 여행사에 부탁했다. 연락이 와서 안내인을 따라갔다.


새로 단장한 예쁜 집인데 마당이 꽤나 넓은 주택이었다.

안내를 받아 들어가 짐을 내려 놓고 무심히 방안을 둘러보다가 책상 위에 놓인 사진을 보게 되었다.


가까이 가서 들여다보니 놀랍게도 김 찬삼 교수와 민박집 주인이 함께 찍은 사진이었다.

너무도 뜻밖이었다.

서 회장은 사진이 여기에 있게 된 사연을 알고 싶다고 했다.

민박집 여 주인은 이분을 아시는 분을 만나게 돼서 다행이라 하며....

그리고 들려준 이야기는 이렇다.



20년 전에 (모아이 석상을 받은 때로부터) 김찬삼 교수는 이곳의 여행을 오셨다.

이 민박집에 한 달간 묵으셨다.

그때 발을 거미에 물려 상처가 깊었다고 한다.


민박집 딸 케티는 11살이었는데 늘 김 교수와 같이 놀았다고 한다. 둘은 아빠와 딸처럼 다정했다고 한다.

말을 타고 섬을 돌아다니며 곤충 채집도 하고 열매도 따며 지냈다.

이미지 출처:https://www.caracolsilver.com/product_images/uploaded_images/09easter-600.jpg

이스터 섬의 사람들은 모두 김찬삼 교수를 좋아했다 한다.


"섬사람들은 김찬삼 교수님은 반드시 돌아올 거라고 믿고 있어요.

아직도 잊지 못하고 있습니다.

케티는 김찬삼교수님과 헤어질 때 꽃을 엮어서 목 걸이를 해 드렸어요.

그러면 반듯이 돌아오게 된다는 전설이 있거든요.


케티는 오래도록 교수님을 기다렸어요.

이제는 선생님 이야기는 안 한답니다.

지금은 결혼을 해서 이 집 옆에서 선물 가게를 하고 있어요.


오늘 오시는 여행인이 한국 사람이라고 해서 김 교수님의 소식이라도 들을 수 있을까해서 저희 집으로 오시도록 한 것입니다."


여인은 떠날 때에 모아이 상 두 개를 포장해서 서회장님께 드리며 한 개는 김 교수에게 전해 달라고 했어요.

이런 소설 같은 이야기였다.




김 찬삼 교수님은 옛날을 회상하며

"그 케티가 시집을 갔다고,...." 하시며 목 울대를 떨며 낮게 신음하신다.

나도 같이 울어드리고 싶었던 선물 증정이었다.


오늘의 식사는 신재동님이 지불하셨다.


교수님께서는 "다음에는 내가 살게...., 조랭이 떡국이란 것, 조회장 먹어 봤어요?" 하고 물으신다.

"그런 것 들어 보지도 못했는데요." 하니 교수님이 설명하신다.

떡국의 떡 모양이 좀 특이하게 생긴 것이라고 하신다.

그리고 엄청 맛있다고 하신다.

다음에 그것을 사시겠다고 하신다.


조랭이 떡국, 어떻게 생겼을까? 교수님은 약속을 지키지 않으셨다. 아직까지 ....


신재동님은 모처럼 대학가에 왔으니 음악을 들으시겠다면서 클래식 전문 음악다방인 모차르트로 올라가신다.


모아이 상 선물 때문에 남태평양이 한참을 맴도는 하루였다.







작가의 이전글 여행자의 신, 김찬삼 교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