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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현 Feb 19. 2023

지금 나의 시간은 14시간 전

산 안젤로에서 살아남는 사람 

 한동안 브런치에 들르지 못했다. 글을 읽지 못했고, 또 쓰지 못했다. 꾸역꾸역 활자를 입안에 쑤셔 넣어도 전부 빠져나갔다. 뭔가 잡을 수 있을 것 같지가 않았던 시간들이었다. 지금의 나도, 아무것도 잡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용기를 내어 쓴다. 시작이라도 해 보려고.


 이곳은 산 안젤로. 텍사스의 아주 작은 도시. 달라스에서 비행기로 한 시간, 샌 안토니오에서 버스로 4시간, 휴스턴에서 버스로 8시간. 나는 이 처량한 도시에 처음으로 발을 들여놓았을 때 이런 생각을 했다. 경주랑 다를 게 없군. 경주가 훨씬 나을지도 모르겠네. 


 시골의 아이지만 도시에서 더 오래 살았던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내가 살던 경주의 시가지는 워낙에 중심지였고 걸어 1분에서 3분 안에 온갖 편의시설이 다 갖추어져 있었다. 오래된 대중목욕탕에서 쭉 걸어 나오다가 엄마를 졸라 비디오 점에서 하울의 움직이는 성을 몇 번이고 대여해서 보았던, 수영장 염소 냄새가 나는 유년기를 거쳐 스무 살이 되던 해 서울로 올라왔다. 유희거리가 가득해서 눈이 돌아가던 서울. 마치 달고, 짜고, 매운 음식들은 다 거기서 처음 먹어본 것만 같은 감각. 그럼에도 외로워서 허기를 뱃속에 달고 살던. 그 서울은 이제 없고 나는 이 청량하고 끝없이 펼쳐진 시골에서 하루를 보낸다. 


 다들 넌 잘할 거라고 했다. 미국은 큰 나라니까, 이 세상은 크고 넓으니까, 더 많은 것을 볼 수 있으리라고. 많은 사람들이 그런 꿈을 품고 오는 것 같기도 하다. 빵을 사서 거리를 걷다가 커피 한 잔의 여유를 즐기고, 또 처음 보는 사람에게 You look so great 같은 소리를 듣는 그런 꿈 말이다. 적어도 내 친구들에게 미국은 그런 도시였다. 그러나 나는 감히 말해주고 싶다. 미국은 살로 소돔, 절망의 나라라고. 좆같다고. 그러니까 이 이야기는, 미국 부적응자의 14시간 전 현상 보고서다. 


 6개월 간의 투쟁 끝에, 나는 귀국 3개월을 남겨두고 있다. 어떤 사람들은 나를 보고 배가 불렀다고 할 수도 있을 것이지만, 어떤 미국 부적응자들은 그런 이들에 의해 입이 완전히 틀어박혀 미국이 싫고 힘들다고 말도 못 할 것이다. 그리고 나는 필연적으로 그런 사람들의 편이기 때문에, 내가 어떻게 그 시간들을 버텨왔는지에 대한, 일상에서 작은 행복을 찾으려고 했던 발버둥을 기록해보려고 한다. 아무도 읽지 않아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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