놓치고 싶지 않은 나의 꿈
제목 : 여섯 줄 원고지
나에게 삶은 막연하던 것들이 선명해지는 과정이었다. 어떻게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해보지 못한 채 다른 사람들처럼 대학에 가고 군대에 가고, 졸업하고, 취업했다. 꿈을 꾸고 목표를 세우고 그것을 성취해 나가는 삶을 제대로 살아보지 못했다. 미래는 막연했고, 현실은 냉혹했으나 난 어설프기만 했다. 나를 감싸고 있는 모든 것들이 빠르게 구체화 되었다.
모든 게 선명해서 이젠 막연할 것 없을 것 같은 내 삶에서 놓치고 싶지 않은 꿈 두 개가 있다. 그 하나는 작가가 되는 것이다. 오래전부터 블로그에 글을 썼고, 책 읽기를 계속했다. 아직 그 꿈을 버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책 읽고 글 쓰는 일이 언젠가는 직업이 될 것이라는 막연한 꿈을 마음속 깊이 간직한 채 살았다.
그런데 얼마 전에 드디어 그 꿈을 이뤘다. 우연히 글쓰기 강좌 모임에 가입했고, 그 모임 구성원들이 원고를 모아 전자책을 냈다. 글쓰기 강의나 들어보자고 큰 욕심 없이 시작했는데 막상 온라인 서점에 책이 등록되고, 저자 소개에 내 이름이 있는 것을 보니 무척 감격스럽고 기뻤다. 내가 작가가 된 것이다. 이제 나의 두 번째, 세 번째 책이 나올 일만 남았다.
두 번째 꿈은 기타를 멋지게 연주하는 것이다. 중학교 졸업할 때 통기타를 선물로 받은 후 기타를 배워 취미 삼아 연주를 하곤 하는데 그 연주 수준이 아직 초보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글쓰기가 내 생각을 언어로 풀어내는 일이듯 기타 연주는 음으로 내 마음을 표현하는 것 같아서 글쓰기만큼이나 놓치고 싶지 않은 꿈이다. 기타도 글 쓰듯 연주하고 싶다.
처음 연습한 곡은 양희은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이었는데 기본 코드 4개만 반복되어 통기타로 연주하기엔 쉬운 곡이었다. 주법은 엄지손가락으로 베이스 음을 튕기고 중지 약지 새끼손가락으로 차례로 3,2,1번 줄을 튕겨 내려갔다가 올라오면 되는 슬로우락(slowrock)주법으로 비교적 간단한 주법이었다. 셋잇단음표 4개가 한마디 안에 들어 있는 비교적 단순한 박자다. 그 곡을 중학교 3학년 겨울방학 내내 연습했다.
며칠 동안은 손가락 끝에 기타줄 자국이 생기고 아파서 코드를 잡기가 어려웠다. 그래도 꾹 참고 같은 곡을 반복해서 연습했더니 손가락 끝에 굳은살이 생기기 시작했다. 굳은살이 생기니 기타 줄도 꾹 눌러지고 소리도 잘 났다. 슬로우락을 익히고 나서는 슬로우고고, 셔플, 컨트리, 디스코 등등 여러 주법을 익혔다. 그렇게 연습하다 보니 기본 코드로 된 곡은 악보를 보고 연주를 할 수 있게 되었다.
고등학생이 된 후에도 기타 연주는 여전히 기초적인 수준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문학 선생님이 교탁에 올라앉아 기타를 치며 Morris Albert의 ‘Feelings’와 Rockwell의 ‘Knife’를 불러주셨는데 기타 소리에 맞춰 팝송을 부르는 선생님의 모습이 어찌나 멋있던지 한동안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 선생님의 연주 모습에 신선한 충격을 받은 나는 그날부터 다시 연습에 몰입했다.
타브 악보로 그려진 책을 사서 연습했는데 가장 많이 연습한 곡은 kansas의 ‘Dust In The Wind’였다. 이 곡은 쓰리 핑거(Three finger) 주법으로 연주해야 하는 곡이다. 초보가 연주하기엔 좀 어렵다. 쓰리 핑거 주법은 일반 주법과 달리 엄지와 집게, 중지 세 손가락만으로 하는 아르페지오 주법으로 일반적인 주법보다 더 리듬감이 있고, 밝은 분위기를 연출한다.
그 이후로 연습을 하지 않다가 최근에 기타를 다시 꺼내어 연습하고 있다. 유튜브에 친절한 강좌가 많아서 쉬운 곡을 골라 한 곡씩 따라서 연습했다. 그렇게 한 곡씩 연습하는 방법으로 기타를 배우다가 고민이 생겼다. 기타를 오랫동안 다뤘지만 더 이상 연주 실력이 늘지 않았다. 한 곡을 반복해서 연습해서 연주하는 방식 말고 즉흥적 애드리브를 넣고 자유롭게 연주하는 방법을 터득하고 싶었다.
지금까지 연습했던 방식으로는 단조로운 연주밖에 할 수 없었다. 아무리 많은 곡을 연습한다고 해도 외우지 않은 곡은 악보가 없으면 연주를 하지 못하는데 그 한계를 극복하려면 스케일(scale, 음계)을 외워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스케일을 연습해야 연주 중간중간에 애드리브를 넣을 수 있고, 악보가 없어도 어느 정도 연주를 할 수 있는 단계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은 것이다.
작가 김이나의 보통의 언어들이라는 책을 읽고 블로그에 서평을 쓴 적이 있다. 김이나 작가는 가수 에일리가 부른 ‘저녁 하늘’이라는 노래 가사를 지은 작사가다. 하루가 저물어 가는 저녁 하늘은 쓸쓸하다. 어느 늦여름 생각보다 빨리 찾아온 저녁 하늘을 보며 코끝이 찡하도록 쓸쓸함을 느껴본 적이 있다. 작가가 이 가사를 쓸 때 느낀 감정은 ‘사무침’이라고 한다. 이 노래를 통기타로 연주해 보았다. 도입부는 Dadd2 코드를 잡고 아르페지오로 연주한다. 레, 파#, 라로 이루어진 기본 코드에 ‘미’음을 더한 코드이다. 음은 더해졌지만, 느낌은 더 쓸쓸하다.
글쓰기와 기타 연주의 공통점은 내 마음을 표현할 수 있다는 점이다. 섬세할수록 더 좋은 글이 나오고, 좋은 연주가 된다. 글쓰기와 마찬가지로 기타 연주도 끝없이 섬세함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글쓰기는 글로 표현하고, 음악은 음으로 표현한다. 보통의 언어들이 모여 특별한 글이 되고, 보통의 음들이 모여 특별한 음악이 된다.
기타는 나에게 또 하나의 원고지다. 여섯 줄로 된 이 원고지에 나의 마음을 자유롭게 써 보고 싶다. 김이나 작가가 저녁 하늘을 쓸 때 느꼈던 사무침을 노래에 표현했듯이 나의 글쓰기와 기타 연주도 나의 감정을 표현할 수 있으면 좋겠다. 표현 방식은 다르지만, 나의 마음을 드러내는 수단이라는 점에선 같다. 글쓰기로 나의 마음을 섬세하게 표현해서 좋은 글을 쓰고 싶고, 기타 연주를 통해서도 내 마음을 담아내고 싶다.
리처드 바크(Richard Bach)의 소설 ‘갈매기의 꿈’에서 조나단은 다른 갈매기들의 외면과 멸시에도 더 높이, 멀리 날기 위한 날갯짓을 멈추지 않는다. 조나단에게 단순히 먹이를 찾기 위한 짧은 비행은 의미가 없었듯이, 나에게도 단조롭고 선명하기만 한 삶은 의미를 찾기가 어렵다. 가보지 않은 곳, 이루지 못한 단계, 막연함과 모호함이 내 날갯짓을 강하게 만든다. 글쓰기와 기타 연주가 나의 날갯짓이다. 선명함에서 벗어나고 싶은 욕망의 날갯짓. 그리하여 기타의 섬세한 음색으로 저녁 하늘의 사무침과 쓸쓸함을 나만의 여섯 줄 원고지에 써보고 싶다.
* 대문이미지 : Image by hngahae from Pixab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