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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사 직분

by 혼란스러워

고양이 크림이와 강아지 백돌이 두 녀석 덕에 요즘 내가 부지런해졌다. 각오는 했지만 집에 생명체 하나가 더 늘어난 다는 게 보통일은 아니었다. 하루에 한 번 청소기로 청소하고 고양이 화장실 치우기, 강아지 똥 줍기, 배변패드 갈아주기, 환기시키기, 밥 챙겨 주기 등등 육아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누가 시켜서는 절대 못할 일이다.


강아지를 집 안에서 키우는 일은 자신 없었다. 막상 키우고 나니 사람들이 왜 그렇게 강아지를 많이 키우는지 알 것 같다. 퇴근하면 꼬리를 흔들며 달려와서 품을 파고들고, 출근할 땐 현관까지 따라 나와 배웅한다. 잘 땐 꼭 내 옆에서 잠든다. 강아지도 나도 서로의 체온에 편안해지는 것일까. 고양이도 한 발짝 떨어져서 근처에서 잔다.


자기 전에 그렇게 뛰어다니며 서로 싸우고 장난치며 놀던 녀석들이 내가 잘 땐 절대 귀찮게 하지 않는다. 녀석들도 밤엔 자야 한다는 것을 아는 모양이다. 아침엔 고양이와 강아지가 먼저 잠에서 깨어나 나를 깨운다. 강아지는 내 손이나 얼굴을 핥고 물고, 고양이는 골골 거리며 품을 파고든다. 둘 다 밥 챙겨달라는 뜻이다. 일어나서 녀석들 밥을 챙겨주고 고양이 화장실을 치워주고 밤새 강아지가 싸 놓은 똥은 없는지 살피고 있으면 치워준다.


백돌이는 배변훈련을 좀 더 해야 한다. 오줌은 패드에 곧잘 싸는데 똥은 자꾸 패드 옆 바닥에 싼다. 다행히 똥이 무르지 않고 딱딱하니 손가락만 한 길이로 이쁘게 나와서 휴지를 손에 들고 주워 버리기만 하면 된다. 똥이 있던 자리는 눈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지만 물티슈로 닦아 준다. 식구들이 나의 이런 모습에 짐짓 놀라는 모양새다. 그도 그럴 것이 집안에서 강아지를 키울 경우 그 똥을 누가 치우냐며 절대 못 키운다고 주장하던 내가 똥을 주우러 다니니 말이다.


크리미는 외국 품종 고양이로 털이 길고 몸집이 크다. 색깔은 흰색 바탕에 회색이 섞여 있고, 발목 부분은 잿빛과 검은색, 갈색이 섞여 있어서 네 발에 양말을 신은 것 같기도 하고 어디 진흙 구덩이에 빠졌다 나온 것 같기도 하다. 백돌이는 시골 친척집에서 데려온 녀석인데, 아비를 알 수 없는 그야말로 잡종이다. 어미가 워낙 덩치가 작아서 백돌이도 아주 작다. 데려온 지 얼마 안 되어 안고 밖에 나갔더니 마주치는 사람마다 귀엽다고 난리였다.


아무튼 세 식구 살던 집에 크림이 와 백돌이 두 식구가 갑자기 추가되는 바람에 집안이 아직까지 혼란스럽다. 서로 조금씩 익숙해져 가고 있지만 서로의 공간과 시간을 내어 주어야 하는 불편함은 여전하다. 하지만 그 불편함 보다 녀석들이 주는 즐거움과 기쁨이 더 크다. 녀석들과 계속 즐거운 동거를 하려면 내가 더 부지런하게 움직이면 된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고 몸을 더 움직이게 되니 결국엔 나에게 좋은 일이다.


이렇게 난 집사가 됐다. 올 초 교회에서 집사가 됐는데 집에선 강아지 고양이 집사다. 감사하게도 두 개의 집사 직분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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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