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쉬움은 욕망의 또 다른 이름이다.
해가 바뀌었고, 난 한 살 더 먹었다. 세월이 이렇게 빨라도 되는 것인가. 어릴 땐 영원할 것 같았던 삶이 빠른 속도로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나이를 먹어 간다는 건 그걸 깨달아 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세월이 빠른 만큼 하루하루를 충실히 살아내지 못했다는 아쉬움도 많다.
내 삶을 구성하는 수많은 언어들 중에서 아쉬움이라는 단어가 큰 비중을 차지한다. 여행의 끝자락엔 더 쉬고 즐기지 못한, 글을 쓴 뒤엔 더 잘 쓰지 못한, 헤어짐 뒤엔 더 잘하지 못한, 프로젝트를 마친 후엔 더 잘 해내지 못한 아쉬움이 남는다.
아쉬움은 과거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 느낌을 뜻하는 말이기도 하고 현재 상황, 상태에 대한 약간의 부족함을 느끼는 마음 상태를 표현하는 말이기도 하다. 아쉬움은 가볍게 넘길 수 있는 것도 있고 너무나 큰 나머지 감당하기 힘든 상태에 있는 경우도 있다.
구약 성경 창세기에 의하면 태초에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에덴동산에 아담과 이브를 살게 하셨다. 모든 것이 허락되었으나 선악과만은 먹지 말라고 하셨다. 하지만 이브는 뱀의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선악과를 따먹고 만다. 에덴동산은 모든 것이 충족된 상태였다. 도무지 부족한 것이 없다. 그런데 하와는 왜 뱀의 유혹에 넘어갔을까? 모든 것이 충족된 상태인데 굳이 왜 하지 말라는 짓을 해서 인류 대대로 이렇게 고생을 시킨 것일까?
부모가 아이를 혼낼 때 자주 하는 말 중 “네가 뭐가 부족해서 그러냐?”라는 말이 있다. 하지 말라는 일을 했다는 건 그 하지 말라는 일을 하고 싶다는 욕망이 있다는 뜻이다. 또한 “아 그때 그렇게 했더라면.”, “아 그때 그렇게 하지 말았더라면.”하는 아쉬움은 그것이 낳은 결과의 반대 상황을 욕망하고 있다는 것이다. 인간은 누구나 아쉬움을 갖고 산다.
어떤 상태에서도 아쉬움은 남는다. 그것은 욕망이다. 아쉬움이 없으려는 상태에의 집착이다. 에덴동산의 이브도 선악과를 먹고 싶은 욕망을 가졌다. 99.9%를 갖고도 갖지 못한 0.1%를 갖고자 한 것이다. 완전하지 않음을 받아들이고 인정할 때 내가 갖지 않은 나머지를 단념할 수 있다.
아쉬움이 꼭 과거지향은 아니다. 현재 자신의 모습에 대한 아쉬움도 있다. 인간을 비롯한 생명체가 생명을 유지하고 번식해 나갈 수 있는 가장 큰 동기는 ‘아쉬움’인지 모른다. 아쉬움은 ‘후회’와 ‘단념’ 사이에 놓여 있으면서 과거를 거쳐 현재에 이르고 미래에 닿는 특별한 느낌을 주는 언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