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 D-95

참 농후한 김오키의 색소폰

by 글쓰는도야지

몇달 전, 밤늦게까지 야근을 하다 알게 된 플레이리스트가 있다.

레게머리를 한 남자가 맨발로 앞차기를 하는 장면의 썸네일이었다.

행색은 꼭 이외수 작가처럼 초라했지만 귀인의 향기가 났다.

알고보니 그는 김오키라는 재즈 색소폰 연주자였다.

인디나 음지에서는 꽤나 알려진 아티스트였다.

나는 생전 처음 들어보는 색소폰 독주의 항연을 듣고 또 들었다.

생각보다 시끄러운데 또 생각보다 집중이 너무 잘됐다.

그의 색소폰 음색은 처량한데 우울하지 않았다.

멜로디나 바이브레이션은 세상 풍파를 본인이 혼자 다 맞은 듯 비틀거리지만,

끝음 처리와 함께 다른 악기들과 어울어지는 앙상블은 오히려 활기가 돋았다.

밤 11시까지 홀로 불을 밝힌 나의 야근 모습이 꼭 그렇다고 느꼈을까.

누가 보기엔 세상의 모든 고뇌와 미련을 떠안고 가는 사람의 모습이지만,

빠르게 휘몰아치는 키보드 자판 소리는 LED 조명과 함께 공간을 일깨웠다.

삶의 동력은 그렇게 서로 다른 에너지가 부딪히는 순간 빛을 발한다.

모두가 잠든 새벽, 각종 물품을 떼오는 시장 상인들의 경쾌한 목소리처럼.

워커홀릭을 그리워하면서도 퇴사 일자를 하나씩 접어가는 나의 모순처럼.

매일 혹은 이틀에 한번 쓰겠다고 다짐했건만, 결국 60일이 지나고야 말았다.

그러나 숫자라도 깔끔하니 크게 불만은 없다.

오늘은 그저, 세상 모든 만남에 시절이 정해져 있다는 김오키의 독백이

참 농후하게, 나의 피곤한 눈꺼풀 위에서 끈적이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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