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취업과 자영업사이 넋두리 #03
며칠동안 감기에 허덕였다.
목부터 시작한 감기는 점점 기침으로 변해가며 정신을 못 차리게 했다.
덕분에 좋은 구실 삼아 마냥 누워있었다.
그러던 중 옛 직장 동료에게 연락이 왔다.
"차장님 저 잘렸어요."
헐... 이게 무슨 소리람?
회사 사정이 좋지 않아 구조조정을 한다는 명목이였다.
그래도 그렇지 제일 오래동안 있으며 안살림 도맡아 하던 사람을 이래 내치나?
씁쓸함에 어떻게 위로를 해야 할지 잘 몰라 그냥 같이 욕을 해줬다.
사실 그 회사에 유감이라면 유감이지만, 고마운것도 참 많다.
믿어준 것, 기회를 준것, 덕분에 다양한 프로젝트를 해볼 수 있었던 것.
득과 실을 따지며 결과를 말하긴 어렵지만, 득만 본다면야 고마운게 많은건 사실이다.
초창기 멤버라는 덕에 신임도 많이 얻고 남들과 다른 혜택도 많이 누렸다.
그렇게 생각해보니 어쩌면 그들에게 난 참 배은망덕한 놈 일 수도 있겠구나 싶다.
그러며 곰곰히 회사생활을 곱씹어 봤다.
그리고 자문해봤다.
Question
1. 최선을 다했는가?
2. 부끄럽지 않은가?
3. 왜 그 회사였지?
4. 왜 나오게 됐지?
5. 후회하나?
6. 기회가 온다면 다시 돌아갈 것인가?
Answer
1. 최선을 다했던 시기가 있지만, 마지막 몇달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2. 부끄러울 만한 행동을 한적은 없다. 누구보다 회사를 애정했고, 비전을 품었었다.
3. 처음엔 달리 갈 곳이 없어 생활고를 해결해야 했고, 재입사 때는 이사를 위해 정규직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4. 처음엔 커리어 패스를 위한 이직이였고, 두번째는 점차 방향성을 잃어가는 회사에 비전을 잃었기 때문이다.
5. 어차피 나올 회사였지만, 좀 더 준비를 하고 나올껄 하는 후회는 한다.
(비록 내 한계를 넘어 더 버틸 수 없는 지경이었긴 하지만...)
6. 절대 돌아가지 않는다.
시간을 돌릴 수 있다면 복직하기 전으로 가서 복직하지 않거나, 처음부터 발을 들이지 않을 것 같다.
하지만, 그래 그 당시에는 그게 최선이었으니까...
결국 내 선택이였고, 그에 따른 결과이니 감내해야 한다.
그러다 보니 나라는 사람에 대해 좀 더 객관화할 필요가 있는 것 같다.
난 굉장히 자유로운 영혼 같고 자유로움을 갈망하지만,
주어진 자유 안에서 스스로 컨트롤 할 수 있는 깜냥은 안된다.
(이부분은 정말 내가 아내를 존경하는 부분이다.)
나는 타이트하게 돌아가는 속에 적당한 규제와 제제가 있어야 좀 더 효율이 오른다.
군대도 그랬고, 회사도 그랬고 적응을 마치면 날개 단듯 잘하기 때문이다.
책임과 의무는 내가 추구하는 덕중 높은 것에 해당하고 그걸 지키기 위한 내 신념은 강한 편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조직에서 필요한 역할을 감당하기 위해 기능을 올리고 날 맞추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중창, 합창을 오래 해서 그런가? 내가 튀기 보다 함께 하모니를 맟추는 것에 좀 더 희열을 느낀다.
나름 협동심이 좋은 편이고, 희생정신도 있다.
그래서 다시 조직으로 들어가는 것을 생각하며 재취업을 시도해봤다.
하지만, 나이며 경력이며 참 애매하다.
그럼에도 여기저기 기웃거려 보고, 추천도 받아 지원도 해보지만, 좀처럼 벽을 넘지 못한다.
능력이 부족한걸까? 내가 나를 잘 팔지 못하는걸까?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어야 보배"
일을 할때 주구장창 컨설팅을 해대며 클라이언트에게 했던 말이다.
근데 지금 나는 제 머리 못 깎는 중이 되었다.
어찌할꼬 어찌할꼬 어찌할꼬
그래도 어쨌거나 내 가슴을 뛰게 하고 내가 가장 갖고 싶은 타이틀은
브랜드와 디자이너라는 것 밖에 없음을 다시 깨닫는다.
그래 맞아 시작도 이거였는데, 이걸로 끝을 봐야지...
유학도 그래서 갔고,
대학원도 그래서 갔고,
취업도 이직도, 그리고 퇴사도
늘 난 브랜드를 위한 일을 하고 싶고, 디자이너가 되고 싶었던 거니까.
이제.. 좀 클리어한게 하나 정도 생긴 것 같다.
그래 맞아 다시 좀 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