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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카이온 Jun 17. 2021

분석철학 맛보기 1 - 고유명사의 의미

너의 이름은? 우리의 이름은? 아니, 애초에 이름 그 자체는?

 여러 번 고민한 끝에 이번에는 분석철학에 대한 글을 써보는 게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동양철학, 대륙 철학에 대한 글을 짤막하게라도 소개했으니 분석철학에 대한 글도 하나 정도는 소개해도 좋지 않을까? 싶었기 때문입니다.

 사실 분석철학은 생각보다 엄청나게 많은 쟁점과 이론과 그것들을 뒷받침하는 다양한 논증 체계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특정한 몇 가지 쟁점만 가지고 분석철학을 모조리 소개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현재 분석철학 학계에서도 뜨거운 쟁점으로 주목받고 있으면서도 다양한 논의를 생산하고 있는 대표적인 주제를 하나 소개해드리는 것이 대중들을 위해서도 괜찮겠으며, 제가 그나마 얕게라도 공부한 주제인 "고유명사의 의미"를 둘러싼 쟁점을 소개해드리는 게 건전하리라 생각했습니다.

 이번 글은 분석철학의 큰 쟁점 중 하나인 "고유명사의 의미"를 둘러싼 버트런드 러셀의 기술주의, 후기 비트겐슈타인 철학의 가족 유사성, 크립키의  의미 지칭 이론의 논쟁을 소개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여러분은 고유명사의 의미를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도대체 고유명사의 의미는 어떻게 결정되는 것이며, 고유명사는 어떻게 대상을 지칭하는 기능을 수행하는 것일까요? 이것을 둘러싼 대표적인 세 가지 관점이 있습니다. 첫째는 버트런드 러셀의 기술주의입니다. 여기에서 말하는 기술은 Skill이 아니라 description, 즉 기술하다 할 때의 그 기술입니다.

 

분석철학의 원로 중 하나인 버트런드 러셀 경. 귀족 출신인 그는 그 유명한 <서양철학사>를 저술했으며, <권위와 개인>이라는 작품으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러셀은 고유명사의 의미를 내포적 의미로 정의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여기에서 말하는 내포적 의미란, 그 이름이 고유하게 가지고 있는 의미 그 자체를 말합니다. 가령 "x는 동물이다."라고 했을 때, x의 변항(variable) 자리에 대입될 수 있는 대상이 인간이라고 한다면, 인간의 내포적 의미 중 하나는 동물이 됩니다. 인간은 동물이라는 내포적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이죠.


(1) x는 동물이다.

(2) 인간


 하지만 (2)는 고유명사가 아니라 일반명사입니다. 다시 말해 인간을 지칭하는 대상은 너무나도 많습니다.


(3) x는 인간이다.


 (2)의 인간을 (3)처럼 변항을 하나 가지고 있는 술어로 바꿉시다(이것을 원자명제화라고 합니다. 논의에 충분할 때 까지 계속 술어와 문장단위로 쪼개나가는 작업입니다. 물론 그 "충분한"선이 어디까지인지는 러셀도 비트겐슈타인도 구체적으로 말하지는 않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x의 변항 자리에 수많은 대상이 들어갈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가령 비트겐슈타인도 (3)의 변항 x의 자리에 대입될 수 있고, 러셀도 x의 자리에 대입될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3)과 같은 술어로 표현했을 때, 그 술어의 변항 자리에 수많은 대상들이 대입될 수 있다면, 그 술어가 표현한 명사는 일반명사가 됩니다.


 그렇다면 고유명사는 무엇일까요? 사자왕 리처드의 사례를 들어보겠습니다.


(4) 사자왕 리처드

(5) x는 사자왕 리처드이다.


사자왕 리처드의 초상화. 사자왕 리처드가 십자군 전쟁에서 활약하며 만들어진 무용담들은 수많은 유럽의 민담과 낭만적인 중세시대 기사도 문학에 큰 영향을 미쳤다.


 (4)의 사자왕 리처드는 고유명사입니다. 왜냐하면 (4)를 (5)처럼 술어로 표현했을 때(러셀은 고유명사, 즉 단칭어를 술어로 대체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대체될 수 없는 순수하고 진정한 이름은 이것, 저것, 나 등 밖에 없다고 했습니다.), 그 변항인 x의 자리에 대입될 수 있는 대상은 지구 역사상에서 유일한 한 사람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만약 x의 자리에 러셀이 대입되면, (5)는 거짓 진리 값을 산출할 것입니다. 물론 x의 자리에 비트겐슈타인을 대입해도 (5)는 거짓 진리 값을 산출합니다. 오로지 사자왕 리처드가 x의 자리에 대입됐을 때, (5)는 참 진리 값을 산출합니다.


 하지만 아래와 같은 문장은 사소하게 참입니다.


(6) 사자왕 리처드는 사자왕 리처드이다.


문장 (6)은 사소하게 참입니다. 그 무엇이든 그 스스로와 같은 대상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4)에서 표현한 사자왕 리처드라는 고유명사의 내포적 의미를 어떻게 기술할 수 있을까요? 몇 가지 후보를 뽑아보겠습니다.


(7) x는 십자군 전쟁에서 살라딘과 맞서 싸운 잉글랜드의 국왕이다.

(8) x는 노르망디의 공작이자 아키텐 공작이며 가스코뉴 공작임과 동시에 푸아티에 백작이었으며, 아주 백작이자 멘 백작, 낭트 백작, 브르타뉴 상위 주군임과 동시에 아일랜드의 영주이고 키프로스의 영주였으며 무엇보다 잉글랜드의 국왕이자 부군 헨리 2세의 정당한 계승자이다.

(9) x는 아키텐의 엘레오노르와 부왕 헨리 2세 사이에서 태어난 잉글랜드의 국왕이다.


 이하 술어 (7), (8), (9)는 모두 변항 x를 한 자리 가지고 있는 술어들입니다. 또한 제 생각에, 각 술어들의 변항 x의 자리에는 오로지 (4), 즉 사자왕 리처드만이 대입될 수 있습니다. 


(7') 사자왕 리처드는 십자군 전쟁에서 살라딘과 맞서 싸운 잉글랜드의 국왕이다.

(8') 사자왕 리처드는 노르망디의 공작이자 아키텐 공작이며 가스코뉴 공작임과 동시에 푸아티에 백작이었으며, 아주 백작이자 멘 백작, 낭트 백작, 브르타뉴 상위 주군임과 동시에 아일랜드의 영주이고 키프로스의 영주였으며 무엇보다 잉글랜드의 국왕이자 부군 헨리 2세의 정당한 계승자이다.

(9') 사자왕 리처드는 아키텐의 엘레오노르와 부왕 헨리 2세 사이에서 태어난 잉글랜드의 국왕이다.


 이하 사자왕 리처드라는 고유명사는 몇 가지 술어로 기술될 수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것을 철학자들은 확정 기술구로 기술했다고 표현합니다.


 하지만 한 가지 의문이 듭니다. 고유명사의 내포적 의미를 과연 다양하게 기술할 수 있을까요? 다시 말해, 한 가지 고유명사가 다양한 내포적 의미를 가지고 있을까요? 사실 러셀은 고유명사를 "완벽하게" 기술할 수 있는 확정 기술구는 오직 하나일 뿐이라고 주장합니다. 비록 위에서는 사자왕 리처드를 세 가지 기술구로 기술했지만, 러셀은 사자왕 리처드의 의미를 완벽하게 분석한다면 최종적으로 유일한 기술구로 완전하게 기술될 수 있으리라 생각했습니다. 만약 특정 고유명사의 내포적 의미가 다양하다면, 우리는 그 고유명사를 사용함에 있어서 수많은 혼란을 겪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모든 사람이 각자 생각하는 특정 고유명사의 내포적 의미와 기술구가 다르다면, 인간은 아마 간단한 의사소통을 함에 있어서도 큰 어려움을 겪을 수 있어 보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생각에 반대되는 몇 가지 아이디어가 있습니다. 그중 하나는 러셀의 제자이자 분석철학을 완성(?)했다는 평가를 받는 불세출의 천재(?)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입니다. 물론 그의 철학은 전기 철학과 후기 철학으로 구분될 수 있다고 합니다만, 이번 글에서는 전기 철학과 후기 철학을 구분하는 시도를 넘어서, 지금까지 수많은 철학자들에게 영감을 주고 있는 개념인 "가족 유사성"만을 다뤄보고자 합니다.


불세출의 천재라 평가받는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노년의 모습). 그는 러셀 덕분에 주목받은 기인이라는 평가와, 정말로 철학의 모든 아이디어를 정리한 천재라는 평가를 동시에 받는다.

 비트겐슈타인은 그의 미완성된 저작이라고 할 수 있는 <반철학적 단장>에서 특정 언어의 본질적인 의미나 보편적인 속성을 규정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주장합니다(이 글에서는 논리철학 논고에 등장했던 그의 사상은 배제하고 서술하겠습니다.). 그렇다면 비트겐슈타인은 인간이 고유명사의 의미를 어떻게 파악할 수 있다고 생각했을까요? 그는 가족 구성원들의 닮은 점을 파악할 때, 딱히 그 가족 구성원들의 명백한 공통점이나 공통분모를 지적할 수는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충분한" 유사성을 바탕으로 그 가족 구성원들이 닮았다고 판단할 수는 있다는 점을 주장합니다. 다시 말해 인간은 특정 이름의 보편적인 속성이나 러셀이 주장한 것과 같은 완벽한 형태의 기술구는 "전혀" 몰라도, 그 특정 이름이 어지간히 유사하게 사용되는 배경이나 경험들을 축적한다면, 그러한 경험을 토대로 그 이름을 유사하게 사용하는 방식으로 언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할 수 있습니다. 조금 더 쉽게 표현해보자면, 고유명사의 내포적 의미는 충분히 많이 파악된 수많은 유사한 용례들을 토대로 다양하게 기술될 수 있습니다. 


 사자왕 리처드의 사례를 다시 가져와 보겠습니다.


(7') 사자왕 리처드는 십자군 전쟁에서 살라딘과 맞서 싸운 잉글랜드의 국왕이다.

(8') 사자왕 리처드는 노르망디의 공작이자 아키텐 공작이며 가스코뉴 공작임과 동시에 푸아티에 백작이었으며, 아주 백작이자 멘 백작, 낭트 백작, 브르타뉴 상위 주군임과 동시에 아일랜드의 영주이고 키프로스의 영주였으며 무엇보다 잉글랜드의 국왕이자 부군 헨리 2세의 정당한 계승자이다.

(9') 사자왕 리처드는 아키텐의 엘레오노르와 부왕 헨리 2세 사이에서 태어난 잉글랜드의 국왕이다.


 우리는 (7'), (8'), (9') 중에 사자왕 리처드의 진짜 내포적 의미를 담은 기술구를 고를 수 있을까요? 비트겐슈타인에 의하면 그럴 수 없습니다. 애초에 특정 고유명사의 내포적 의미를 완벽하게 나타낸 보편적이고 본질적인 정의나 기술구 같은 것은 없기 때문입니다. 다만, 인간이 사자왕 리처드의 의미를 사용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7'), (8'), (9'), 혹은 그보다 더욱 충분히 많은 사자왕 리처드의 사용 용례를 경험적이고 관습적으로 파악하는 것뿐입니다.


 그래서 그의 후기 철학의 이론을 "게임이론" 내지 "사용 이론"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그에 따르면 인간이 언어를 사용하게 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사회 구성원과 특정 언어 사용습관을 합의하고 공유하고, 게임하듯이 지속적으로 주고받으며 사용하면 충분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비트겐슈타인의 본질적인 내포적 의미를 모른다고 할지라도, 특정한 용례들을 통해서 비트겐슈타인의 의미를 "충분히 적절하게" 사용할 수 있습니다. 사실 그 이상이 필요한지도 의문입니다.

 이렇게 보면 비트겐슈타인은 러셀의 주장과 배치되는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비트겐슈타인은 여전히 러셀처럼 특정 고유명사의 내포적 의미를 기술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는 점에서 기술주의적 전통을 따르고 있습니다. 그저 러셀과는 달리 보편적이고 본질적인 기술구의 존재를 부정했을 뿐, 다양한 기술구로 표현될 수 있는 용례와 경험을 부정하지는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현재까지 살아있는 유명한 철학자 중 한 명인 솔 크립키는 의미 지칭 이론의 전통적 주류라고 할 수 있는 밀주의 적 전통을 이어받아 러셀 이후 강력한 세력으로 군림하던 기술주의에 정면으로 반발합니다.


버트런드 러셀(좌)과 솔 크립키(우). 크립키는 지금까지도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현역 철학자다.

 크립키의 주장은 이렇습니다. 고유명사의 내포적 의미 따위는 존재하지 않으며, 고유명사의 유일한 기능은 구체적 대상을 지칭하는 것뿐이다. 다시 말해 "사자왕 리처드"라는 이름은 내포적 의미 따위는 없으며, 실제 우주에 존재하는 "사자왕 리처드"를 지칭하는 기능을 수행할 뿐이다. 솔 크립키는 그의 유명한 <양상 논증>을 바탕으로 기술주의적 논변을 모조리 때려 부수려 합니다.


  <양상 논증>의 핵심은 소위 말하는 양상 연산자를 사용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간단히만 말해보자면, 양상이란 필연성과 가능성을 나타내는 개념입니다. 각각 형식적 기호로는 □(박스)와 ◇(다이아몬드)로 그려낼 수 있습니다. 그에 따르면 제 아무리 사자왕 리처드라는 고유명사의 내포적 의미를 기술구를 통해 기술하려 한들, 어떠한 기술구들이 자리하든 필연적 보편성을 담보할 수 없기 때문에 궁극적으로 모두 비판됩니다.


(양상 논증 1)

(10) 사자왕 리처드가 십자군 전쟁에서 살라딘과 맞서 싸운 잉글랜드의 국왕이라면, 필연적으로 사자왕 리처드는 잉글랜드의 국왕이다.

(11) 사자왕 리처드는 잉글랜드의 국왕이 아닐  있었다.

(12) 따라서 사자왕 리처드는 십자군 전쟁에서 살라딘과 맞서 싸운 잉글랜드의 국왕이 아니다.


 이하 양상 논증 1은 필연성과 가능성의 양상을 바탕으로 후건 부정 형식으로 사자왕 리처드를 기술하는 기술수를 비판할 수 있습니다. 우주의 가능세계가 대단히 다양하기에, 사자왕 리처드가 필연적으로 잉글랜드의 국왕이라는 법은 없습니다. 다른 우주에서는 사자왕 리처드가 프랑스의 국왕이라던가, 러시아의 국왕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10)의 후건인 "필연적으로 사자왕 리처드는 잉글랜드의 국왕이다"가 부정되고, 후건 부정에 의해 (10)의 전건인 "사자왕 리처드가 십자군 전쟁에서 살라딘과 맞서 싸운 잉글랜드의 국왕이다"라는 조건이 부정되고 (12)의 문장이 도출됩니다.


 하지만 기술주의자들은 이렇게 반박할 수 있습니다. (7) 술어 "x는 십자군 전쟁에서 살라딘과 맞서 싸운 잉글랜드의 국왕이다."가 사자왕 리처드의 본질적인 내용을 기술하지 못할 뿐이니, 이러한 한 가지 경우의 수로 모든 확정 기술구를 비판할 수는 없다.

 하지만 크립키는 위 양상 논증을 확장시켜서 양상 논증 n개까지 진행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양상 논증 2)

(13) 사자왕 리처드는 노르망디의 공작이자 아키텐 공작이며 가스코뉴 공작임과 동시에 푸아티에 백작이었으며, 아주 백작이자 멘 백작, 낭트 백작, 브르타뉴 상위 주군임과 동시에 아일랜드의 영주이고 키프로스의 영주였으며 무엇보다 잉글랜드의 국왕이자 부군 헨리 2세의 정당한 계승자라면, 필연적으로 사자왕 리처드는 부군 헨리 2세의 정당한 계승자이다.

(14) 사자왕 리처드는 부군 헨리 2세의 정당한 계승자가 아닐  있었다.

(15) 따라서 사자왕 리처드는 노르망디의 공작이자 아키텐 공작이며 가스코뉴 공작임과 동시에 푸아티에 백작이었으며, 아주 백작이자 멘 백작, 낭트 백작, 브르타뉴 상위 주군임과 동시에 아일랜드의 영주이고 키프로스의 영주였으며 무엇보다 잉글랜드의 국왕이자 부군 헨리 2세의 정당한 계승자가 아니다.


 양상 논증 2는 양상 논증 1에 등장한 사자왕 리처드의 고유명사에 또 다른 기술구를 대입해서 구성한 논증입니다. 하지만 크립키에 따르면 양상 논증 2에 등장한 확정 기술구도 고유명사의 필연적 속성을 기술하는데 실패합니다. 위에서 말했든 가능세계는 대단히 방대하기 때문입니다.

 크립키는 이런 식으로 양상 논증을 (양상 논증 3), (양상 논증 4),... (양상 논증 n) 개까지 확장시킵니다. 그렇다면 사자왕 리처드를 기술할 수 있는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기술구 n개를 모조리 대입한다 할지라도, 궁극적으로 n개의 기술구 모두 사자왕 리처드의 내포적 의미를 기술하는데 실패할 수 있습니다.


(양상 논증 n)

(16) 사자왕 리처드가 A라면, 사자왕 리처드는 필연적으로 B이다.

(17) 사자왕 리처드는 B가 아닐  있었다.

(18) 따라서 사자왕 리처드는 A가 아니다.

*A와 B는 술어라고 합시다. 원래는 술어 논리대로 번역을 해야 했지만,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간단하게 기호 명제로만 기술했습니다.


 이는 대단히 강력한 논변입니다. 만약 정말로 우주에 존재하는 n개의 모든 확정 기술구가 이름을 기술하기 위해 모조리 대입된다 할지라도, 그러한 확정 기술구가 고유명사와 필연적으로 연결됨을 보장하지 못한다면 고유명사의 내포적 의미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 됩니다. 쉽게 말하자면 고유명사의 내포적 의미를 기술하고자 하는 모든 시도는 사실 불가능하게 됩니다.


 하지만 러셀의 후예라고 할 수 있는 기술주의자들은 이러한 논변을 구성할 수 있습니다. 아래는 제가 시험 답안으로 제출했던 기술주의를 옹호하는 논변입니다. 데카르트의 유명한 코기토 논증을 응용했습니다.


(양상 논증 3)

(19) 만약 내가 지금 여기에서 생각하는 존재라면, 필연적으로 내가 존재하지 않는 것이 불가능하다.

(20) 내가 존재하지 않을 수 있다.

(21) 따라서 나는 지금 여기에서 생각하는 존재가 아니다.


 이는 크립키의 양상 논증 구조를 그대로 모방하고 있습니다. 또한 필연성과 가능성의 양상으로 후건 부정을 유도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제 아무리 (20)의 가능성을 이야기한다고 하더라도, (19)는 절대로 부정할 수 없어 보입니다. (19)를 부정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다시 말해, 저는 저 스스로를 "x는 지금 여기에서 생각하는 존재이다"라고 대단히 성공적으로 기술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차라리 (20) 번의 가능성 양상이 확실하게 부정된다고 말할 수 있어 보입니다. 그렇다면 크립키의 양상 논증은 양상 논증 3과 같은 반례를 허용하기 때문에 논증 체계에 균열이 발생하게 되고, 그의 논증은 궁극적으로 논파될 수 있습니다.


영화 <인터스텔라>에 묘사된 여러 가지 가능세계들. 물론 논리학에서 다루는 순수한 가능세계, 모형 세계와는 다르지만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인용했다.



 이렇게 분석철학에서 다루는 뜨거운 쟁점 중 하나인 "고유명사의 의미"를 둘러싼 논쟁을 소개해봤습니다. 사실 여기서 소개한 논증은 고유명사의 의미를 둘러싼 방대하고도 치밀한 논증 중 하나이며, 빙산의 일각에 불과합니다. 


우리들의 이름은 과연 무엇일까요


 하지만 철학자들의 치밀한 논증에도 불구하고 일반인들은 고유명사 내지 이름을 사용할 때 너무나도 무리 없이 잘 사용하는 듯 보입니다. 그 누구도 자신의 이름, 즉 자신의 고유명사를 사용하는데 큰 어려움을 느끼지 않으며, 인류는 수많은 고유명사를 사용하는데 아무런 문제점도 느끼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다시 한번 사려 깊게 생각해본다면 심지어 인류는 고유명사의 "진정한" 의미에 대해서 조차 정확한 합의에 이르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분석철학자들은 앞으로도 고유명사의 "진정한" 의미를 밝히는데 고군분투하며, 진리를 찾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리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 그렇다면 위에서 언급한 크립키는 이름의 의미가 무엇이라고 생각했을까요?? 다음 글은 솔 크립키의 인과역사이론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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