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르트르는 대단히 유명한 실존주의 철학자입니다. 실제로 그는 실존주의의 교황이라는 별명도 가지고 있고, 그와 함께 교류했던 철학자들도 그 유명한 알베르 카뮈, 메를로 퐁티 등 당대를 풍미한 실존주의 철학자들이었습니다. 하지만 사르트르의 실존주의는 이러한 철학자들보다 더욱 형이상학적으로 체계적임과 동시에 사르트르 특유의 강렬하고 가슴에 박히는 필체로 대중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아왔습니다. 어쩌면 그가 지금까지 유명한 이유도 그의 사고체계 그 자체의 탄탄함, 또한 많은 사람의 뇌리 속에 꽂혔을 때 직관적으로 사르트르의 생각을 파악할 수 있을 정도로 강렬하고 쉽게 전달된 그 특유의 글솜씨였을 수도 있겠습니다.
사르트르를 비롯한 수많은 철학자들에게 강렬한 영감을 준 시대정신은 다름 아닌 2차 세계대전과 근대철학의 극복이었습니다. 이는 비단 분석철학만의 과업은 아니었습니다. 분석철학을 언급할 것은 아니고, 최소한 사르트르에게만 국한해서 말해보자면, 사르트르의 철학적 프로젝트는 쉽게 말해 인간 자유의 근거를 이성이 아닌 다른 곳에 정초 하기였습니다. 2차 세계대전은 근대철학의 이성으로 유토피아를 건설하자는 프로젝트가 파국으로 치닫는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줬습니다. 이성은 폭주기관차처럼 날뛰며 전쟁, 학살, 인종차별, 파시즘 등 온갖 부조리를 낳았습니다. 지식인들은 이성이 아닌 다른 대안이 필요했고, 그 와중에 실존주의에서 자유의 근거를 찾고자 하는 시도들이 이루어졌습니다.
사르트르의 실존주의는 거의 모든 실존주의자들 중에서도 가장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모습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카뮈의 반항 실존주의는 지극히 개인 중심적 실존주의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니체도 이러한 경향은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사르트르의 실존주의는 개인의 주체적 삶을 중심으로 개척적이고 능동적이고 사회참여적인 성격을 띠고 있어 흥미롭습니다. 이는 사르트르가 평생을 추구했던 개인의 자유를 중시하는 실존주의와 사회적 선을 추구하는 윤리학을 조화시키고자 했던 프로젝트와도 맞닿아 있습니다.
그런 사르트르도 오점이 없지는 않습니다. 그는 열렬한 공산주의자였기 때문에 한국전쟁에서 남한이 북한을 침공했다는 북침설을 적극적으로 주장했습니다. 그는 결국 죽기 전까지도 그 믿음을 버리지 않았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공산주의자라는 신념이 그를 장님으로 만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탓에 그의 실존주의가 우리나라에서 본격적으로 연구되기 시작한 것도 사실 2000년에 즈음 들어서라고 합니다. 그의 이념이 잘 드러난 사건은 그 스스로 노벨문학상 수상을 거부한 사건입니다. 그는 "자본주의자가 수여하는 상을 받을 수 없다"라고 말하면서 노벨문학상 수상을 거부했습니다. 물론 여기에는 그의 실존주의적 신념도 가미되어 있었는데, "그 누구도 죽기 전까지 평가받을 자격은 없다."라는 말도 남겼다고 합니다. 또한 그의 다른 오점(?)중 하나는 대단히 유명한 난봉꾼이었다는 점입니다. 그는 사시라는 신체적 콤플렉스를 충분히 커버칠 수 있을 정도의 매력이 있었다고 합니다. 유머감각이 뛰어났다고 하더군요. 그 탓에 이미 중학교 때 동정을 뗐다고 하며, 수많은 여배우들과 연애, 원조교제를 했다고 합니다. 심지어 그의 부인 보부아르와 살 때는 그의 여제자와 셋이서 한 집에서 살 정도였다고 합니다.
아무튼 그는 철학 저술 말고도 대단히 많은 글을 썼습니다. 극 작품 창작에서부터 그의 유명한 사설 <현대>지에 연재한 여러 가지 글들, 또한 이곳저곳을 방문하며 남긴 인터뷰 글들까지 포함하면 그는 연구할 내용이 풍부한 사람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1960년대 초반에 득세한 구조주의적 흐름에 밀려 실존주의가 퇴물 취급을 받게 되자 사르트르 본인의 인기도 점점 식어가는 듯했습니다. 그러다가 갑자기 68 혁명이 일어나 오히려 구조주의가 개박살이 나고, 구조주의의 대안으로 각각 실존주의와 후기 구조주의가 등장할 때 사르트르의 입지는 더더욱 견고해졌습니다. 대충 구도를 그려보자면,
합리주의 -> 실존주의 -> 구조주의 -> 실존주의 and 후기구조주의 두 양대 산맥의 공존
이 현재 프랑스 철학의 흐름입니다.
2. 상상력, 인간 자유의 새로운 근거
그렇다면 사르트르는 인간의 자유의 근거를 어디에서 정초 하려 했을까요? 이성은 합리적입니다. 모든 대상에 규율을 부여하고, 그것을 통제하고자 하며, 질서로 가두려 합니다. 하지만 상상력은 인간이 말 그대로 모든 것으로부터 벗어나게 돕습니다. 불교에서 말하는 무아지경을 떠올리시면 이해하기 쉽습니다. 우리가 예술작품을 감상할 때, 또는 창작할 때, 우리는 우리 스스로를 무화시킵니다. 가령 우리가 나폴레옹의 그림을 관찰하고 있자면, 우리는 나폴레옹 그림의 특별한 잉크, 패턴, 텍스쳐를 관찰하게 되지만, 우리의 정신은 그러한 색채의 패턴을 타고 무화하여 상상계로 입문하게 됩니다. 그렇게 상상계 속에서 색채의 패턴을 뛰어남은 나폴레옹의 그림을 보게 되는 것이죠. 다시 말하자면 상상력은 인간이 자신을 무화시키는 대단히 훌륭한 해방구가 됩니다.
이렇듯 사르트르는 인간 실존의 자유의 근거로 이성을 대체할 수 있는 상상력을 제안합니다. 상상력의 의의는 존재를 무화시킬 수 있다는 점입니다. 사르트르는 오로지 상상력만이 인간의 실존을 우주에서 해방시켜줄 수 있다고 주장했고, 그 글을 <상상력>과 <상상계>에서 펼치고, 그것을 형이상학적 체계로 완성한 글을 <존재와 무>, <변증법적 이성 비판>에서 드러냅니다. 하지만 글의 주제는 이어집니다. 바로 존재를 무화시킬 수 있어야지만 인간이 진정으로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할 수 있다는 것이죠!
여기에서 사르트르가 스스로 철학자가 아니라 문필가로 유명해지길 바랐던 이유를 알 수 있습니다. 인간을 자유롭게 해방시킬 수 있는 것은 이성이 아니라 상상력, 즉 창작과 예술감상이기 때문입니다. 그가 살아생전에 수많은 극작품과 수필을 저술하려 했던 것도 그의 이러한 인간 실존 해방 프로젝트와 긴밀히 연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3. 실존이 본질에 앞선다.
사르트르의 유명한 명언입니다. 어렵게 생각할 필요는 없습니다. 애초에 "나"라는 사람이 있어야 "학생인 나"도 있고, "국민인 나"도 있고, "남자인 나"도 있으며, "여자인 나"도 있다는 소리입니다. 다시 말해, 나의 실존이 성립한 뒤에야 나의 본질들이 따라서 생겨날 수 있습니다.
사르트르는 평생에 걸쳐서 인간의 자아가 "본질"적으로 주어져 있다는 생각을 강도 높게 비판했습니다. 제 아무리 "본질"적으로 자아가 주어져 있다고 할지라도, 인간은 그 스스로를 무화시킬 수 있는 능력을 타고난 존재입니다. 다시 말해 스스로 타고난 본질이 있다고 할지라도, 그것을 반드시 무화시킬 수 있는 존재가 인간이기 때문에 존재의 본질을 아는 것은 무의미합니다.
우리가 자아에 대해 확실히 알 수 있는 것이란, 오직 상상을 통해 그 스스로를 무화시킬 수 있는 "주체"가 필요조건으로 존재한 뒤에라야 그 "주체" 속에 여러 가지 지식이나 개념이나 경험들이 달라붙어 개인을 이룰 수 있으리라는 점뿐이죠. 다시 말해 경험, 지식, 본질은 실존이 확보된 뒤에 성립하는 부차적인 것일 뿐입니다.
4. 인간은 자유라는 저주를 받았다. 삶에 의미를 주는 것은 당신에게 달렸다.
위에서 말했듯 주체가 본질적으로 타고나는 성격, 자아는 없습니다. 주체가 타고난 것은 상상력을 토대로 확보한 실존적이고 무한한 자유로움 뿐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무한하고 한계 없는 자유는 인간을 외롭게 하며, 인간 내면의 자아가 텅 빈 것처럼 무기력증에 빠지게 만들 수도 있습니다. 바로 실존주의의 역설이 나타나기 시작하는 것이죠.
그러나 사르트르는 누군가가 자신의 자아를 채워주기만 기다리는 것은 무의미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비어있는 자아를 채울 수 있는 것은, 실존적 자유를 가지고 태어난 주체, 즉 "자신" 뿐이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자아를 규정하고 발전시킬 수 있는 가능성을 확보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주체 자신의 행동에만 달려있는 것이죠. 오로지 개인이 스스로 타고난 실존적 자유를 깨닫고, 그것을 주체적으로 개척하고 발견하고 발전시키고 채워 넣기 위해 자신의 실존적 자유에 충실하게 살아갈 때만이 인간은 자신의 "실존"을 개척해나갈 수 있고, 비로소 행복해질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한 가지 문제가 생깁니다. 나의 실존은 실존이고, 타인은 타인입니다. 그렇다면 나의 실존과 타인 간 관계는 일종의 충돌을 일으킬 수 있어 보입니다. 도대체 개인은 타인과 어떻게 관계를 맺으며 살아야 할까요? 타인은 나의 자아형성에 어떻게 영향을 미칠까요?
5. 지옥은 타인이다.
개인의 자아는 어떻게 결정될까요? 나는 그 속이 빈 채 태어납니다. 다시 말해 제 스스로 그 어떠한 본질도 가지고 태어나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나는 실존적 자유를 타고난 "주체"이기 때문에 제 스스로 나를 만들어 가야 하는 숙명을 타고났습니다. 이것이 위에서 말한 "자유의 저주"입니다.
그러나 모든 주체는 타인을 만날 때마다 주체로서의 내가 아니라 타자로서의 나로 전락하고 맙니다. 인간은 모두 서로와 관계를 맺고 있지만, 관계를 맺을 때마다 주체로서의 나는 소거되고 타자로서의 나의 모습이 드러나기 마련입니다. 가령 a는 a이지만, 학교에 가는 순간 학생인 a이 되어버리고, 동아리에 가는 순간 동아리 구성원인 a으로 전락합니다. 그렇습니다, 타인은 자의든 타의든 주체가 타고난 실존을 규정하고 억압하는 말 그대로 "지옥"이 되어버립니다.
그렇다고 내가 나 스스로의 실존과 자유만을 확보하고자 다른 사람을 함부로 해치고 다니거나 자기 혼자 외딴섬에 틀어박혀 아무도 만나지 않고 살 수는 없습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딜레마가 생깁니다. 도대체 개개인의 자아에 타고난 실존의 "자유", 그리고 타인과 함께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윤리학"은 어떻게 양립될 수 있을까요? 이는 사르트르가 실명하는 그 시점까지 끊이지 않고 고민한 필생의 대작업이었습니다.
6. 필생의 목표였던 <윤리학> 저술을 앞둔 실명
하지만 카뮈는 실존은 그 자체로 부조리하다고 했습니다. 아무리 사르트르라고 한들, 그가 손절 쳐버린 실존주의 동료 카뮈가 발견한 실존의 부조리를 벗어나지는 못했습니다. 그는 어릴 적에 독감 때문에 시력을 거의 대부분 잃습니다. 그래서 그는 거의 평생을 사시로 살게 되었습니다(그런데도 여성들에게 인기가 넘쳐났다는 그의 매력은 도대체...). 이렇게 사르트르는 어릴 적부터 시력이 안 좋았음에도 불구하고 하루 종일 책만 보고 글만 썼으니 눈에 부담이 가는 것은 어쩔 수 없습니다. 그래서 그는 말년에 실명을 하고 맙니다. 그는 그의 유명한 작품 <변증법적 이성 비판>을 저술한 이후에 시력을 잃습니다. 하지만 사르트르는 그의 다음 작품으로 <윤리학>을 염두하고 있었습니다. 나이를 70 가까이 먹고 나서, 평생을 쌓아온 모든 지식과 경험을 총동원하여 마지막으로 저술하고자 했던 책이 <윤리학>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마지막 작업을 앞두고 실명을 해버렸으니 죽는 그 순간까지 불행에 시달리다가 약 5년을 연명하고 죽고 맙니다. 니체는 쓸쓸하게 혼자서 정신병원에서 죽었지만, 사르트르는 그의 부인 보부아르와 수많은 제자들과 추종자들의 사랑을 받으며 죽었으니 그나마 행복하게 죽었다고 할 수 있을까요?
물론 사르트르가 <윤리학>을 완성하지는 못했지만, 그가 실존주의와 윤리학을 통합하고자 했던 시도들은 그가 <윤리학>을 저술하기 직전에 아이디어를 모아뒀다고 알려진 <도덕을 위한 노트>, 그리고 실존주의가 반윤리적이고 지나친 방종을 조장한다는 비판에 답하기 위해 자신이 <윤리학>을 저술하기 위해 수집한 아이디어들을 토대로 대중강연에서 "실존주의를 변호했던" 글을 모아둔 <실존주의는 휴머니즘이다.>, <문학이란 무엇인가>, 그리고 <윤리학> 직전에 쓰인 대작 <변증법적 이성 비판>에서 간접적으로 그의 <윤리학>을 유추할 수 있습니다.
실존주의와 윤리학은 얼핏 모순되는 것처럼 보입니다. 니체 사상처럼 모든 걸 해체하거나 방종한 자유를 추구함으로 이어질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사르트르는 이러한 비판에 시달리며 종교인, 근대 철학자들로부터 질시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사르트르는 실존주의와 윤리학을 양립시킬 수 있으며, 그렇게 되어야만 한다고 확신하고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그가 실존주의와 윤리학을 양립시키고자 했던 대략적인 아이디어는 무엇일까요?
우리나라 사르트르 권위자 중 한 분인 이솔 님은 사르트르의 시도를 롤스의 "무지의 장막"에 빗대어 설명하십니다. 사르트르가 말하는 실존주의와 윤리학의 타협 가능성은 "익명의 증여" 개념을 활용한 주체 간의 상호 주관성이기 때문입니다. 만약 제가 타인이 누군지 알게 되면, 저는 타인의 실존을 가두고 규정하게 됩니다. 또한 타인도 제가 누군지 알게 되면 타인은 제 실존을 가두고 규정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모든 인간이 각자의 주체성을 유지시켜주는 선에서 상호작용하고 사회를 일구어나갈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상대가 누구인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그들의 내면과 직접 대면하는 상황을 가정하는 것입니다.
인간은 익명의 상대방을 만났을 때, 그가 누군지 모르기 때문에 그에게 나의 실존을 투영시켜 타자화시킬 수 없습니다. 그것은 상대방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렇다면 인간이 서로의 인적사항이나 성격이나 이름을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익명의 사람을 대하는 것처럼 만날 때에야 우리는 그 사람을 주체로서 마주할 수 있고, 그 사람도 나를 주체로서 마주할 수 있게 됩니다. 그렇게 인간은 "익명적 증여"의 형태로 자신의 주체적 자유와 또 다른 주체로서 등장한 타인의 주체적 자유를 모두 확보할 수 있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모든 인류는 각자가 타고난 숙명적인 실존적 자유와 주체성을 서로서로 포기하지 않고도 모든 인류를 주체로서 포용하고 배려하면서 선을 추구할 수 있는 "윤리학"의 토대를 마련할 수 있게 됩니다.
이렇게 되면 사르트르의 윤리학은 칸트처럼 의무주의적 윤리학이 됩니다. 상대방이 누군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단순히 그가 "주체" 그 자체라는 점 만을 인지하여 다른 모든 목적이나 배경지식을 떠나 타인을 "주체" 그 자체로 존중하고 배려할 때에만 선한 행위를 할 수 있게 되고, 또한 그렇게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질서를 마련할 수 있게 되기 때문입니다. 즉 사르트르의 실존주의-윤리학 프로젝트는, 실존이라는 주체의 자유, 아니 어쩌면 모든 인류 개개인의 주체성이 다른 개인들의 주체성을 존중함과 동시에 모든 인류의 실존적 자유와 주체성을 양립시키고 상호작용시킬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나가는 작업이었다고 요약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사르트르는 타인과의 관계성을 전제로 하는 윤리학의 기반을 마련할 수 있는 단서를 발견했지만, 결국 이러한 아이디어로 <윤리학>을 완성하지 못했습니다. 안타깝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개인적으로 사르트르의 실존주의가 카뮈, 메를로 퐁티, 니체, 다자이 오사무의 실존주의와는 아예 질적으로도 다른 수준에 도달했었다고 생각합니다. 후자의 사람들은 물론 개개인의 타고난 실존적 자유, 실존적 가치를 재조명하는 데는 너무나도 훌륭하게 성공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개인의 실존적 자유와 윤리학을 양립시킬 수 있는 대안을 발굴하지 못해 실존주의는 방종한 자유를 추구하는 철학이라는 비판을 면치 못했고, 이 과정에서 구조주의에 휩쓸려 퇴보하는 흐름을 피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사르트르는 평생 동안 개인의 실존적 자유와 윤리학을 양립시킬 수 있는 대안을 찾아 나섰고, 그것을 "익명적 증여"라는 동기주의적 윤리학 아이디어로 제시하는데 까지 이르렀습니다. 그렇다면 사르트르 철학의 의의는 "윤리적 실존주의"가 성립할 수 있다는 가능성 그 자체를 구체적으로 제시했다는 점이 아닐까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