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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카이온 Oct 16. 2023

공학자의 시선으로 다시 본 논리-철학 논고 2

논리-철학 논고 읽기 2 - 세계(논리적 세계)와 현실(물리적 세계)

 1. 정확한 개념이해의 필요성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다양한 단어를 사용한다. 하지만 이러한 일상적 맥락에서는 단어의 엄밀한 정의가 그다지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 가령 "차"라는 단어는 동음이의어라는 측면에서 다양하게 사용될 수 있는데, "마시는 차" 혹은 "타고 다니는 차" 모든 의미를 나타낼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그림은 토끼 그림일까? 오리 그림일까? 언어 역시 이러한 모호성의 문제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최소한 철학을 공부하는 입장이라면, 철학자가 사용한 단어의 정확한 의미를 이해하고자 노력해야 한다. 가령 이번에 다룰 개념인 "현실"과 "세계"는 서로 비슷해보이기도 하고, 각각 만 놓고 봐도 그 정확한 의미가 헷갈릴 수도 있다. 따라서 이 파트에서는 비트겐슈타인이 말한 "현실"과 "세계"가 무엇인지라도 정확하게 이해해보자!


* 주의 - 사다리 걷어차기

 혹자는 이렇게 말할 수도 있다. "개념의 정확한 이해? 엄밀한 정의? 그거 모두 비트겐슈타인이 말한 "말할 수 없는 것" 아닙니까?"


 맞다. 그렇기 때문에 비트겐슈타인은 논리-철학 논고 말미에 사다리를 걷어차버리라는 말과 함께 자신이 논리-철학 논고에서 언급한 모든 개념과 내용들도 모두 쓸모없는 찌꺼기에 불과하다고 선언한다. 그렇다면 어째서 그는 어차피 쓸모없기 마련인 이러한 긴 "언어"로 구성된 책을 저술한 것일까?


 우리 옆에 바보들이 바보 짓을 하고 있다고 해보자. 그런데 그들 스스로가 바보 짓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면, 누군가는 바보 짓을 흉내내서 그들이 바보라는 사실을 알려줄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바보는 우리들이고, 비트겐슈타인은 우리들이 바보들이라는 사실을 알려주고자 하는 사람이다. 다시 말해 그는 언어로 규정하고 정의했을 뿐인 부산물들(가령 정의, 신, 선 등)을 진리적인 무언가로 착각하며 사는 우리들이 바보천치라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 스스로 바보인 척하며 언어를 사용해서 "잠깐동안 바보짓의 시연"을 해준 것이다. 즉 논리-철학 논고는 비트겐슈타인이 바보짓 시연을 해준 셈이니, 그는 마지막에 어떻게든 이 점을 짚고 싶었던 것이다. 그래서 "너희들이 이 내용을 이해했으면, 이 책 조차도 의미없는 것을 깨달았을테니 두번 다시 철학같은 바보 직은 하지 마!"라고 말하며 사다리를 걷어차라고 했을 뿐이다.


2. "세계"란?

 그가 말하는 "세계"는 우리들의 외부에 놓여있는 객관적인 물리적 세계와는 별도로, 인간들이 언어로 구성하고 창조하고 합의해낸 세계이다.


1.13 The facts in logical space are the world.
1.13 논리적 공간 속의 사실들이 세계이다. (이 영철 역)


2.1 We make to ourselves pictures of facts.
2.1 우리는 사실들의 그림을 그린다. (이 영철 역)


 논고의 언명 1.13과 2.1을 종합하면 “우리는 논리적 공간에 존재하는 사실들을 그림으로 그린다.”가 다. 그림을 그리기 전까지 우리는 논리적 공간을 시각화 할 수 있을까?


 1.13과 2.1을을 참고하면, 비트겐슈타인은 그림을 그리기 전까지 논리적 공간은 시각화되지 않는다고 생각한 것으로 보인다. 논리적 공간의 사실들을 그림으로 그린 이후에야 논리적 세계가 가시화된다.


3. "현실"이란?

반면 현실(reality)은 우리가 항상 경험적으로는 볼 수 있다.


Norman Malcolm이 쓴 “memoir”에서 비트겐슈타인은 “논리철학논고”에 대한 질문에 다음과 같이 말한다.


“His reply was that at that time his thought had been that he was a logician;”

"그의 대답이란, 당시까지만 해도 논리학자로서의 그의 생각이었다."

 여기서 He는 비트겐슈타인이다. 비트겐슈타인은 “논리-철학논고”를 논리학자 입장에서 썼고, 논리학자로서 논리적 공간을 도입했고 현실과 논리적 공간을 구분했다. 비트겐슈타인의 논리는 논리적 공간에서 적용된다.


 논리적 공간 속에 존재하는 ‘도시’를 그림으로 그린 내용이 그림 1.1 다. ‘도시’는 복합체로 존재하며 이 복합체을 구성하는 요소와 결합방식을 설명하는 사실들로 구성이 될 이다. 복합체는 사실들의 복합체이며 아래 그림은 ‘도시’라는 복합체을 구성하는 요소와 결합방식이 그려져 있다.


2.0201 Every statement about complexes can be analysed into a statement about their constituent parts, and into those propositions which completely describe the complexes.
2.0201 복합체들에 관한 모든 진술은 그것들의 구성 요소들에 관한 한 진술과 그 복합체들을 완전히 기술하는 명제들로 분해된다. (이 영철 역)

4. "세계"와 "현실"의 사례


그림 1.1 논리적 공간에 존재하는 “도시”를 그린 그림의 예


질문: 이 그림은 “지도”인가 아니면 “도시계획 설계도”인가?


뉴욕시의 청사진


그림 1.1 만 보고 이 그림이 “도시계획설계도”인지 도시를 묘사한 “지도”인지는 알기 힘들다. 이 그림을 “도시계획 설계도”로 보는가 “지도”로 보는가에 따라 우리는 이 그림에서 다른 면을 기대한다.


* 그림과 현실관계
그림이 “도시계획설계도”라면 우리는 그림(설계도)대로 현실에서 도시를 만들어야 다. 그림이 “지도”라면 그림(지도)는 현실을 반영할 뿐이다.


2.12 The picture is a model of reality.
2.12 그림은 현실의 모형이다. (이 영철 번역)


비트겐슈타인이 “그림”을 “설계도”로 보았다면 다음과 같이 썼을 것이다.


“그림은 현실의 청사진(설계도)이다.”


그림과 미래상황


그림이 “도시계획설계도”라면 우리는 현재 도시 모습을 관찰하고, 미래 도시 모습을 예상할 수 있다. 반면 그림이 “지도”라면 우리는 현재 지도에서 미래 지도 모습을 예상할 수도 없고 과거 도시 모습도 예상할 수 없다.


5.1361 The events of the future cannot be inferred from those of the present.
Superstition is the belief in the causal nexus.
5.1361 우리는 미래의 사건들을 현재의 사건들로부터 추론할 수 없다.
    인과관계에 대한 믿음은 미신이다. (이 영철 번역)

5. 그림과 현실이 차이 날 때 해야할 일
그림이 “도시계획설계도”라면 현재 도시 모습이 “설계도”와 다르면 현실을 “설계도”에 맞추어 수정해야 다. 그림이 “지도”라면 현재 도시 모습이 “지도”와 다르면 “지도”를 수정해야 다.


2.18 What every picture, of whatever form, must have in common with reality in order to be able to represent it at all⁠—rightly or falsely⁠—is the logical form, that is, the form of reality.
2.18 모든 그림이, 그 형식이 어떠하건, 아무튼 현실을-올바르게 또는 그르게- 모사할 수 있기 위해 현실과 공유해야 하는 것은 논리적 형식, 즉 현실의 형식이다. (이 영철 역)


“논리철학논고”는 그림은 현실과 공유해야 한다고 말한다. 현실이 “그림”대로 이루어 진다고 말하지 않는다.


6. 그림과 현실사이 선험성
그림이 “도시계획설계도”라면 “설계도”가 현실보다 우선순위가 높다. 현실을 그림에 맞추어야 다. 그리고 그림(설계도)가 나온 이후에 현실이 나온다. 그림이 “지도”라면 현실이 없으면 그림(지도)가 만들어 지지 않는다.


5.5571 If I cannot give elementary propositions a priori then it must lead to obvious nonsense to try to give them.
5.5571 내가 요소 명제들을 선천적으로 제시할 수 없다면, 그것들을 제시하려고 하는 것은 명백한 무의미에 이르지 않으면 안된다. (이 영철 역)


5.634 There is no order of things a priori.
5.634 사물들의 선천적 질서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 영철 역)


현실이 없으면 그림(지도)도 없다. 그림(지도)을 제시할 수 없다는 것은 그림(지도)를 만들 현실이 없다는 뜻이다.


7. 그림과 현실 중 어느 것이 참인가.
그림이 “도시계획설계도”라면 “설계도”가 참이다. 현실을 그림에 맞추어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림(설계도)대로 만들어 지지 않는 현실은 거짓이다. 그림이 “지도”라면 “지도”자체로는 참인지 거짓인지는 알 수 없다. 현실과 그림(지도)를 비교해야만 그림(지도)의 참, 거짓 여부를 알 수 있다.


2.225 There is no picture which is a priori true.  
2.225 선천적으로 참인 그림은 없다. (이 영철)


2.223 In order to discover whether the picture is true or false we must compare it with reality.
2.223 그림이 참인지 거짓인지 인식하려면 우리는 그것을 현실과 비교해야 한다. (이 영철 역)


결론적으로 “논리철학논고”에서 주장하는 그림은 현실의 청사진(설계도)로 존재하는 “설계도”로서의 그림이 아니라 “지도”로 존재하는 그림이다. 물리학법칙 역시 현실에 대한 “지도”로 파악하지 “설계도”로 파악하지 않는다.  그림은 현실의 그림자이다. 그림자(그림)을 가지고 현실을 완벽히 파악할 수 없다. “논리철학논고”는 이 부분을 더 멋드러지고 더 풍부한 통찰력을 가지고 표현한다.


4.002 because the external form of the clothes is constructed with quite another object than to let the form of the body be recognized.
4.002 왜냐하면 복장의 외부적 형태는 신체의 형태를 인식시키는 것과는 전혀 다른 목적에 의해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이 영철 역)


이것은 원자의 지도일까? 설계도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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