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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양댁 Feb 04. 2024

다정한 AI맨, 나의 주치의 선생님

(feat. 산부인과)



어릴 적부터 몸 하나는

튼튼해서 큰 병치레를

한 번도 한 적이 없었다.


나에게는 담당 의사,

즉 주치의 선생님이 생긴 건

임신을 하고 나서 처음이었다.



처음에는

 '그냥 단순히 감기, 장염 등이 걸려서

잠깐 들르는 병원의 의사 선생님들과

 별반 차이 없겠지.'라며

단순하게 생각했었는데.



약 7개월이라는 시간 동안

주기적으로

진료를 받으며 '순산'이라는

공통 목표를 가지니 주치의 선생님과

자연스레 정도 들고

 나도 모르게 의지를 많이 하게 되었다.






임신을 알게 된 처음부터

 '그'를 주치의로 지정했던 건 아니었다.

총 3번의 산부인과를 옮겼는데

 첫 번째, 두 번째 병원은

 일단 분만을 하지 않는 병원이었다.



첫 번째로 방문한 병원은

임테기 두 줄을 바로 확인하자마자

 설렘 가득 벗과 함께 달려간

 집 근처 병원이었다.


그 병원은

한 번밖에 방문하지 않았지만

 지금까지 방문한 게 후회가 될 정도로

의사의 태도가 정말 별로였다.




임신 전부터

아이를 일찍이 

먼저 출산한 친구들에게

 '임테기 두 줄 확인 후

 병원 너무 빨리 가면

 안 좋은 소리부터

 들을 확률이 높다.'라는

 이야기는 몇 번 들어

 익히 알고는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초음파 진료 때부터

진료실 면담 때까지

그녀의 입에서는

온갖 부정적인 단어들이

끊임없이 나오기 시작했다.

(당시 아기집만 보이고

난황은 안 보였지만

피검사 수치는 150 정도 나온 상황) 



너무 초기라

 괜한 희망을 주지 않으려

그러는 거겠지 하며

 백분 이해를 해보려 했지만

산전 검사를 미쳐 하지 못했다는 나에게

그러고도 임신 계획을 가질 생각을 했냐고

냉소적으로 되묻는

 그녀의 말에 할 말을 잃었다.



굳어진 내 표정이

진료가 끝날 때까지 풀리지 않자

 그때부터 눈치를 보더니

다음 진료 때까지 좋은 것만 보고

좋은 생각만 하고 오라던 그녀.



뒤도 돌아보지도 않고 나왔고

바로 회사 가까운 곳에서

 마음 편하게 진료를 보고 싶어

회사 근처 병원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두 번째 병원 선생님은 친절하셨지만

 분만을 하지 않는 병원이다 보니

12주까지만 진료를 봐주시고

분만 가능한 병원으로의 

전원을 제안하셨다.


운 좋게 집 근처 바로 가까이에

 분만 병원으로 유명한 산부인과가 있었고

벗과 함께 빠른 시일 내에

 분만 병원을 방문했다.





도대체...

누가 저출산 시대라고 했던가.



접수대부터 대기 의자에는

산모, 보호자분들이 바글바글했고


모니터에 선생님별로

대기 인원 숫자가 뜨는데

이미 인기 있는

 여선생님들의 대기 인원은

모니터를 뚫고 지나갔다.

(아마 저출산이다 보니 분만 병원이

 적어서 사람이 많았던 거겠지)






간호사 쌤 : 진료받기 원하는

선생님이 따로 계시나요?


나: 아... 제가 지정을 해야 하나요?


간호사 쌤: 아니요~

보통 원하는 선생님 지정을 해서

오시는 분들이 많아서요.






처음 접수를 하며

 원하는 선생님이 계시냐는

 간호사의 물음에  

혼란의 대기 인원 모니터를

 다시 살펴봤는데.



아무래도

산부인과 진료 특성상

남선생님보다는

여선생님의 대기 줄이

 확연히 더 길었다.



당연히

 나 또한 여자 선생님께

진료를 받고 싶은 

마음이 먼저 들기는 했지만...



맛집조차 

웨이팅 하는 것을 

싫어하는 성격이라

 쉽게 결정을

 내릴 수가 없었다.



앞으로 쭈욱-

저 대기 줄을 견디며

 진료를 보러 와야 한다니...

한숨부터 나왔다.



나: 그냥 빠르게 되는 

선생님한테 받을게요.


간호사 쌤: 그럼 이 부원장님께 

대기 걸어드릴게요.


벗: 남자... 선생님이신데...???



긴 웨이팅 시간에 

스트레스받기보다

내 마음이 편하자 싶어서

빠르게 진료받을 수 있는

선생님을 택했고.



간호사 선생님은

상대적으로 대기가 적은

남자 선생님 대기 줄에

내 이름을 넣었다.

(사실 병원에 오기 전 홈페이지에서

 선생님들 이력을 다 보고 왔었는데

 눈여겨봤던 남선생님이라서

 안심이 되었다.)






오히려 

우리 둘의 신속한 결정에 

당황한 건

 옆에서 잠자코 듣고만 있던 벗.



산부인과 진료라

당연히 여자 선생님을

생각하고 왔었나 보다.



 결정을 내리자마자

여자 선생님이 낫지 않겠냐며

적극적으로 나를 설득하기 시작했다.






뭔가 벗의 설득을 듣고 있자니...

설득이 점점 되기보다는.

나 포함 여러 사람들이

이리도 산부인과 진료에

여선생님의 선호가 두드러지는데.



이런 어려운(?) 상황 속에서

 남선생님들은

얼마나 더 노력을

많이 하셨을까... 싶은 생각에

내 선택에 대한 확신이

더 굳어지는 것이 아닌가.

(맞다, 청개구리 심보가 또 발동했다)






그렇게 나의 주치의 선생님

 '다정한 AI맨'을 처음 만나게 된다.



'그'를 '다정한 AI맨'으로 칭하게 된 건 

차가움과 따뜻함을 동시에 가지신 

선생님이셨기 때문이었다. 

(뭔가 냉정과 열정 사이랄까)




진료실에 들어가서 앉으면

 '그'는 이전 진료나 

검사 기록들을 띄어주며 데이터, 

논문 기반으로 냉철하게 

나 또는 우리 하양이 

현재 상태를 상세히 브리핑해 주셨다.




브리핑을 포함해 이 주기에 산모가 

궁금해할 부분에 대해 설명 자체를 

얼마나 세심하게 해 주시던지. 


브리핑이 끝나고 궁금한 점이 

있는지 항상 물어봐 주시는데 

이미 우리가 궁금해할 만한 부분을 

다 언급을 해주셔서 

네네 봇처럼 '네~' 대답만 

열심히 하고 나오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다 간혹 질문 1개라도 던지면 

1초 만에 답변이 다다다다~  AI 맨! YO!)






그렇게 면담을 할 때는 

그 누구보다 냉철하고 

카리스마 넘치던 '그'가 

다정해지는 타이밍은 

하양이 초음파를 보는 시점부터였다.






벗이랑 나랑은 당연히 부모니까. 

시커먼 모니터 화면에 뭐가 뭔지는

 잘 몰라도 꼼지락 움직임만 봐도

 '우와~'거리면서 봤는데.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올 것 같았던

 '그'는 초음파를 봐주시는 내내

 웃음을 가득 머금고 

본인이 더 신나서 아기의 상태와 

기관 형성에 대해서 설명을 

해주시는 것이 아닌가. 

(간혹 도중에 

경상도식 무뚝뚝 유머를 던지시기도 

했지만 처음에는 유머인 줄 모르고 

웃지 못했다는... 죄송해요, 선생님...)




지금까지 살면서 

여러 의사 선생님께 

진료를 받아봤지만.

 '아, 이 사람 이 일을 

정말 사랑하고 있구나.'라고 느낀 게

 '그'가 처음일 정도로. 



참, 

진심이 느껴지는 진료를 받아왔고

 이런 분께 진료를 받고 있음에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그 외에도 초음파 때 

방광에 가득 찬 소변을 보시고는

 본인이 세게 누르면 

산모가 힘들 수 있다고 

걱정해 주시거나, 



임신 중기 꼬리뼈 통증에 

괴로워하다 진료 때 

아프다고 호소했는데 

전문 분야도 아닌데 

정성껏 아픈 곳을 

들여다 봐주시는 등...


 '그'에게 진료를 받고 나면

 항상 무한 신뢰가

 쌓일 수밖에 없었다.






'그'가 오랫동안 

이 업에 계셔서

 여러 산모들을

 살펴봐주셨으면 좋겠다는

 개인적인 바람을 적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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