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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날 Jul 14. 2023

우리 집에 숨바꼭질 천재가 산다

평일에는 보지 못하는 TV 예능 프로그램을 주말에 딸과 함께 챙겨본다. 저학년 때까지는 주말에도 TV 시청 시간을 빡빡하게 제한했으나 도무지 협조가 안 되는 남편덕에 손을 들어 버렸다. 그래도 평일에는 남편이 협조를 하나보다 오해하는 분이 있을지 몰라 밝히자면 우린 주말부부다. 남편이 집에 오는 금요일부터 아이와 나의 일상적인 규칙은 비일상이 되어 버린다. TV시청, 취침시간 등. 더 이상 남편과 실랑이하고 싶지 않고 사춘기 아이와의 관계가 틀어지고 싶지 않아 마음을 내려놓았다.


아이는 주말 외출이나 여행계획이 없는 날엔 적당히 TV도 보고, 정해진 게임도 하고, 그러다 몹시 심심해지면 가끔 책을 읽기도 한다. 소파에 늘어져 컴퓨터 게임을 하고 텔레비전만 보는 남편이 눈에 거슬려 이 꼴 저 꼴 보기 싫어지면 나는 혼자 도서관에 가서 책을 읽다 오기도 한다. 모두에게 대체로 만족스러운 주말이 되길 바라며 마음을 비우는 중이다. 비우기 전 내 마음 같아서야 TV 볼 시간에 다 같이 책의 바다에 빠지면 얼마나 좋을까 이지만 어디 딸아이 마음이 내 맘 같으랴. 그래도 평일에 30분이라도 꾸준히 책을 읽는 게 어디냐, 평일에는 TV도 안 보지 않느냐, 분명 평일마저도 TV에 시간을 쏟고, 책도 안 읽는 아이들이 있을 거라 혼자 생각한다. 책도 안 읽고 TV만 보는 다른 집 아이들을 애써 상상한다. 못된 심보다.




딸아이와 즐겨보는 예능프로그램 지구오락실. 시즌1 때도 빼놓지 않고 봤는데 이젠 시즌2가 방영 중이다. 발리에서 촬영한 지난 회차에서는 '24k 황금마스크팩 코스'를 보상으로 걸고 숨바꼭질을 했다. 멤버 4명이 차례대로 술래를 하고 빠른 시간 안에 다른 멤버를 찾아낸 2명에게 럭셔리 체험 기회가 돌아가는 것. 래퍼 이영지가 숨겨진 재능을 뽐내며 1위를 차지했다. 대부분 건물 안에 있는 옷장 속, 욕조 안, 책상 밑 뻔한 장소를 택한 반면 영지는 누구도 관심두지 않는 외부 커튼 속, 의자 밑 좁은 공간에 몸을 숨겼고, 심지어는 감독님의 모자와 카메라를 빌려 아예 대놓고 카메라맨인척 서있기도 했다는. 역시 머리가 비상하다며 딸아이와 얼마나 깔깔대고 봤던지. 그날 영지에게는 숨바꼭질 천재라는 닉네임이 붙었다.


의자 밑 좁은 공간에 거의 목을 꺾고 있는 영지 ㅋㅋ



그러다 문득 떠오른 생각!



어? 우리 집에도 숨바꼭질 천재 사는데?




그렇다. 우리 집에도 숨바꼭질 천재가 산다. 한번은 3단 서랍장 아래칸이 살짝 열려있길래 무심코 퉁 밀어 넣었는데  끝까지 들어가질 않는 거다. 옷가지가 서랍 뒤로 넘어가 끼었을 때 밀어도 밀리지 않는. 뭐지?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들어 핸드폰 불빛으로 안을 비춰보니 세상에나! 우리 집 고양이 크림이의 눈이 그 안에서 빛나고 있었다. 결국 서랍 아래칸을 통째로 들어내고 크림이를 꺼냈는데, 어떻게 그 공간에 들어갈 수 있었는지는 아직까지도 미스터리다.


살짝 열린 신발장에 들어가 있는 크림이를 보지 못한 채 문을 닫거나, 현관 구석에 웅크리고 있는 걸 눈치채지 못하고 중문을 닫아놓아 본의 아니게 현관에 가둔 적도 있었다. 어느 날은 화장실 샤워부스에 문을 닫고(?) 밤새 들어가 있었다는. 그 이후 크림이가 눈에 보이지 않으면 어디 있는지 정도만 슬쩍 확인하는 습관이 생겼다. 혹시 무심코 닫아버리는 바람에 어딘가에 갇혀있지는 않은지.




그날도 너무 고요하다 싶어 하던 일을 멈추고 컴퓨터 방에서 나왔다. 보통 낮시간에는 거실 캣타워나 차가운 아일랜드 식탁 위에 배를 깔고 늘어져 있는데 보이지 않았다. 아이방 침대 밑, 서랍장 아래를 다 찾아보았는데 감쪽 같이 사라졌던 것. 화장실, 세탁실까지 다 둘러본 후 다시 한번 찾아보려는 찰나 불쑥 나타난 발!



소파 밑에서 쑥 삐져나온 발


 

'엥? 너 지금 어디 있는 거니? 아까 소파밑 살펴봤는데.. 내가 너무 설렁설렁 봤나?'

슬며시 다가가 발을 톡 건드리니 장난치는 줄 알고 냥냥펀치를 날린다.

바짝 엎드려 소파 아래를 들여다보니.. 옴마야!



소파 아래 아니 소파 속에 숨은 크림이



10년이 다 된 낡은 소파. 언제부터 어쩌다가 저 밑이 뜯어져 버렸는지는 모르겠으나 그렇게 크림이는 소파 아래가 아닌 소파 속(?)에 숨어있었다. 크림이야 말로 재능과 노력을 겸비한 숨바꼭질 천재구나. 하하


왠지 그 공간이 위생적이지 못하고 위험할 것 같아 최애간식 츄르로 유인해 나오게 했다. 하나 뜯어진 소파 밑을 막지는 않았다. 비 오는 날 차 안에서 빗소리를 들으며 나만의 공간과 시간을 즐기듯 크림이도 혼자 있고 싶을 때 깊숙이 숨을 장소가 필요할지도 모르니. 시중에서 판매하는 숨숨집 보다 저런 후미진 곳, 박스 안을 좋아하는 냥이다. 소파 속은 크림이의 단골장소가 될지도 모르겠다.



크림아~ 너의 허락을 받지 않고 숨바꼭질 단골장소를 공개해 버려 미안하구나♡



덧. 크림이의 숨기실력을 보여드립니다. 음.. 머리만 숨기면 잘 숨은 걸로. 헤헤


꼭꼭 숨는다냥~ 나 안 보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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