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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날 Aug 03. 2023

이거 없이 어떻게 아이를 키우나요

저만 그런가요..

네모난 몸통. 팔은 어깨가 아닌 옆구리에서 뻗어 나온다. 다리는 비현실적으로 짧고 머리카락은 몇 올 없다.

이것은 딸아이 예닐곱 살쯤의 그림 실력이다. 또래 여자아이들이 머리카락을 풍성하게 그리고 하이힐을 신기고 목걸이며 귀걸이며 디테일하게 표현하는 걸 봤던 터라 그때 내 아이 그림은 몹시도 못나 보였다. 아이 손을 끌고 미술학원에 갔다. 안전 염려증이 있는 엄마인지라 셔틀을 태우는 게 불안해 퇴근하고 데려갈 수 있는 학원을 폭풍 검색했다. 일주일에 한 번 저녁 여섯 시 삼십 분. 일이 끝나자마자 어린이집에서 아이를 데려와 미술학원으로 내달렸다. 지금 와 생각해 보니 그림 실력 그게 뭐라고 유난이었나 싶지만 그림 못 그리는 엄마는 그림 잘 그리는 딸을 키우고 싶었나 보다.




일곱 살 때 다니기 시작한 미술학원은 한 반에 4명씩 소그룹으로 진행됐다. 수업이 끝나면 아이들은 자기들끼리 잠시 노는 시간을 가졌고, 기다리고 있던 보호자들은 교실로 들어가 아이들 작품을 감상하며 선생님께 당일 수업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그날의 주제는 음식이라고 했다. 아이들 각자 엄마가 해준 요리 중 제일 맛있었던 것을 화이트보드에 그리고 설명하는 시간을 가진 다음, 색종이 골판지 등을 이용해 만들었단다. 아이들의 최애 음식이 그려진 칠판을 빠르게 훑었다. 속에 담긴 게 무엇인지는 알 수 없으나 보글보글 끓는 냄비를 그린 아이도 있었고, 엄마가 진짜 집에서 해준 음식인지는 모르겠지만 커다란 피자도 보였다. 그리고 제일 끝에 있던 딸아이의 그림. 그림이라고 하기엔 몹시도 간단한 끄적거림. 뭔가 네모난 모양인데.. 저게 뭐지? 뭘까? 삼겹살을 그린 건가? 화이트보드를 한참 째려보던 중 선생님의 친절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지우는 엄마가 해 준 요리 중 제일 맛있는 게 '김'이라고 했습니다"



'네? 뭐라구요? 김이라구요? 김은 요리가 아니지 않습니까 선생님... 저 지금 너무 창피하지 말입니다’


얼굴이 화끈거렸고, 어이가 없어 웃음이 나기도 했다. 아주 조금은 억울한 기분이 들기도. 그래도 억울한 기분이 아주 조금만 들었던 건 아침으로 김을 자주 내주었던 것은 사실이기 때문이다.


주말부부로 직장 생활을 하며 아이를 챙기는 일은 온전히 내 몫이던 시절이었다. 출근 준비가 유독 바빴던 날은 흰쌀밥 한 공기와 도시락김 한봉을 식탁에 올려놓으면 아이가 잘도 싸 먹었다. 가끔은 내가 싸서 입에 쏙쏙 넣어주기도 했고, 김을 부셔서 주먹밥을 만들기도 했으며, 떡볶이 떡을 삶아 조미김에 말기만 하면 되는 세상 간단한 간식을 내놓기도 했다. 달걀 푼 물에 김만 넣은 김국을 끓여 한 끼 후다닥 해결하기도. 쓰다 보니 7살 아이 마음엔 엄마가 해준 최애요리가 김이 맞기도 했겠다. 반성한다.(헤헤)  


김 외에 만들거나 준비하기가 편해서 자주 해주던 음식은 짜장밥, 돈가스. 주로 한 그릇 음식이었는데 8살이 되던 해 짜장밥과 돈가스는 이제 질렸다며 1년 이상을 딱 끊었더랬다. 그래도 김은 손절당하지 않아 얼마나 다행이었던지.




6학년이 된 딸아이. 방학 3주 차다. 여름방학이 길면 겨울 방학이 짧으려나. 잘해 먹이려 애는 쓰지만 레시피 없이는 좀처럼 요리하기가 어려운 엄마는 세끼 챙겨 먹이는 일이 만만치 않다. 내 밥 차려먹기도 귀찮은 날이 꼭 찾아온다. 오늘 아침은 냉장고마저 텅텅 비어있으니 살포시 딸아이 최애요리(?)를 꺼내본다.


미안하다. 딸아. 영양소는 저녁에 챙겨줄게. 그래도 밥은 현미밥이니 쌀밥보단 낫겠지. 아마도.


글을 쓰며 다시 생각해 봐도 진리다. 김 없이 어찌 아이를 키우랴. 그건 계란도 마찬가지다.


현미밥과 도시락김



덧붙임. 저만 그런 거 아니죠?;;

어머니들 매일 5첩 반상 차려주시는 거 아니죠?(헤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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