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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날 Aug 16. 2023

이거 배려 맞나요?


그거 트리오 아니에요! 비눗방울이에요!



이른 시간이라 사람이 별로 없던 탓에 그녀의 목소리는 크게 울려 퍼졌다. 관심을 두지 않았던 나도 그 소리에 쳐다보게 되었으니. 며칠 전 아이와 찾은 서점에서 있었던 일이다.


할머니 한 분이 섬유유연제를 닮은 통 하나를 계산대에 올려놓았다. 요즘 대형서점엔 문구류도 다양하고 장난감과 생필품도 파니, 책이 아닌 것이 계산대에 올라오는 게 이상한 일은 아니다. 다만 통을 본 직원이 그건 트리오가 아니고 비눗방울이라며 갑자기 외치듯 말한 것. 직원의 외침에 무어라 대답을 하셨는지는 잘 모르겠다. 할머니는 그저 허리를 굽혀 바닥에 내려놓은 장바구니 같은 천가방에서 주섬주섬 6천 원을 꺼내 내밀었을 뿐. 어쨌든 값을 지불하고 문제의 통을 들고나가셨으니 필요한 물건을 제대로 산 게 맞을 터다.


문득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구도 이것이 무어냐 물은 적이 없는데 그녀는 왜 트리오가 아니다 소리친 걸까? 하물며 그녀는 할머니의 물건을 계산하려던 직원도 아니고 옆줄을 맡고 있던 계산원이었는데. 정작 신경 써야 할 사람은 할머니가 아니라 본인 앞에 서 있던 나였을 텐데 말이다.


직원의 목소리는 크고 당찼다. 분명 할머니가 잘못 알고 가져오신 걸 거라 99.99% 확신하는 듯. 내가 할머니였다면 꽤나 당황스럽고 무안했을 큰 목청이었다.


할머니에 대한 배려였을까? 혹여 물건을 잘못 사가실까 걱정되어 묻기도 전에 알려주는, 남다른 서비스 정신이었을까 오지랖이었을까. 아니면 노인들은 트리오와 비눗방울을 구분하지 못할 거라는 편견에서 나온 무시였을까. 내 일도 아닌데 그 상황이 어쩐지 무안했고, 나도 나이 들면 이런 겸연쩍은 순간을 맞이하려나 싶은 생각도 들었다.


문제의 비눗방울 통




배려: 도와주거나 보살펴 주려고 마음을 씀


배려라는 단어의 사전적 의미를 검색하다 서점직원과 다르지 않게 과한(?) 배려를 했던 일들이 떠올랐다. 도와주고 보살펴준다는 이름 아래 아이가 혼자 해볼 수 있는 기회를 박탈했던 일. 도움을 요청한 적도 없는데 선수처 거들어주던 일.


외동을 키우는 나는 특히나 비교대상이 없었다. 지레 이건 어려서 못할 거야, 손끝이 야무지지 않아 아직은 어려울 거야 내 맘대로 판단했다. 아이를 도와준답시고 어떻게든 뜯어보려 애쓰는 우유갑을, 따보려 시도하는 음료캔을 낚아채 뜯어주고 따주었다. 아이 1학년 반모임 때 엄마를 따라 나온 아이 친구의 일곱 살 난 동생이 주스캔을 딸깍 하고 혼자서 따는 모습에 얼마나 놀랐던지. 일곱 살도 캔을 딸 수 있구나. 혼자 해볼 수 있는 기회를 주지 않으면 우리 아이는 열 살이 넘어도 못 딸 수도 있겠구나. 캔뚜껑 하나에 거창한 깨달음을 얻었던 날이라 기억이 난다. 뒤늦게 우유갑을 뜯고 아이스크림 껍질을 까고 생수 페트병 뚜껑 따는 연습을 시켰던 기억도.


아이가 1학년때 휴직을 했던 터라 하교 후 놀이터에 있는 시간이 많았다. 벤치에 앉아 노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노라면 잘 놀다가도 예기치 않은 마찰이 생기기도 했다. 대체로 원인은 별 게 아니었다. 나는 이 놀이가 하기 싫다, 지금 '얼음' 했는데 왜 잡느냐, 내가 만든 모래성을 망가트리면 어떡하느냐 뭐 이런 귀여운 다툼들. 그 당시 나는 아이가 아직 어리다는 생각에 엄마가 꼭 개입을 해야 할 것만 같았다. 도움을 구하지도 않았는데 굳이 다가가 무슨 일인지 묻고, 서로 사과하라 다독이고, 때로는 엄마인 내가 미안하다 대신 말했다. 지금 생각하면 과한 배려가 아니었나 싶다.


다행히 캔뚜껑에서 얻은 깨달음 이후 짜장면을 비비는 하찮은 일부터 친구들 사이의 작은 다툼까지도 일단은 스스로 해결할 수 있게 엄마인 나는 한 발짝 뒤로 물러서는 연습을 해왔다.


물론 6학년 학부모가 된 지금도 여전히 가끔은. 배달음식의 랩을 야무지게 뜯어내지 못하는 모습을 보면 답답한 마음에 가로채 뜯어주기도 하고, 운동화 끈이 풀어지면 잽싸게 묶어주기도 한다. 6학년 딸아이 올해 미션이 운동화끈 혼자 묶기인데도 자꾸 내 손이 먼저 나간다. 배려가 과하다.(하하)




우리는 '어느 나이대에는 당연히 그리할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사나 보다. 할머니에겐 비눗방울보다 주방세제를 사는 것이 더 어울리고, 물건의 용도를 잘 모를 테니 젊은이들이 잘 알려주어야 한다고. 어린이는 아직 어리기 때문에 경험 많은 어른이 으레 도와주어야 한다고. 그게 배려인 듯 당연하게 생각한다.


배려라는 것이 도와주고 보살펴 주려고 마음을 쓰는 좋은 의미이지만 결코 일방적이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든다. 상대가 원하지 않는 배려는 간섭일 수도 오지랖일 수도 있으니 말이다.


"엄마가 다 너 생각해서 하는 말이야. 너 잘되라고 하는 얘기라고"라는 꼰대 같은 말부터 줄여야겠다. 지나친(?) 배려보다 아이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고 행동할 수 있는 기회를 많이 주자. 아이가 도움을 요청할 때, 그때 아껴두었던 온 힘을 다해 마음을 쓰자.  


과유불급. 과하면 모자람만 못하니. 배려도 적당히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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