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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날 Sep 07. 2023

대체로 행복하길

‘이제 그만 신발을 신고 어서 저 문을 열고 나가렴'

거울 앞에 서서 한참이나 치장을 하는 아이를 보며 주문을 외웠다. 8월의 끝자락. 6주 하고도 3일. 꽤나 길었다. 6학년 딸아이의 여름방학이. 학교 증축공사 때문이란다. 여름방학이 길면 겨울방학은 짧겠지. 음지가 양지되고 양지가 음지 된다고 하지 않았던가. 힘든 시절을 참으면 좋은 날이 온다고. 짧은 겨울방학을 기대해 본다.(하하)


아이는 개학하기 며칠 전부터 남은 방학일수를 세며 아쉬워했다. 혹시 학교 가기 싫은 이유가 따로 있나, 친구관계에 문제가 생긴 건 아닌지 염려했지만, 단순하게도 아이는 일찍 일어나 나갈 준비를 하는 게 귀찮을 뿐이란다. 고학년이 되면서 외모에 부쩍 신경을 쓰는 딸. 등교 준비 시간이 만만치 않다. 샤워를 하고 긴 머리카락을 말리는데 최소 30분이 소요된다. 헤어롤로 앞머리를 정성스레 말고, 곱슬끼 있는 머리카락이 뻗치지 않도록 드라이를 한다. 얼굴에 선쿠션을 톡톡 두드리고 복숭앗빛 립글로스를 바른 후 목걸이까지 걸고 나서야 대충 준비가 끝난다. 그러는 사이사이 밥도 먹어야 하고 가방도 챙겨야 하고. 나가는 순간까지도 신발장 거울 앞에서 요리조리 몸을 돌리며 끝도 없이 앞머리를 매만진다. 보고 있자면 나갈 채비를 하는 게 귀찮을 만도 하다.



개학 하루 전 딸아이가 또 푸념을 늘어놓았다.


 "아~ 내일 개학이다. 진짜 학교 가기 싫다"


아이의 이야기를 듣다가 문득 생각했다. 선생님들도 내일이, 개학이 얼마나 싫으실까? 하고.


 



3월 초 학급 총회에서 딸아이 담임선생님을 처음 뵈었다. 6학년이라 그런지 그날 참석자는 나 혼자였다. 어쩐지 민망한 마음에 ‘제가 안 왔으면 선생님이 편하셨을 텐데' 죄송하다 전했고, 선생님은 내게 '어머님이 오셔서 다행이에요' 감사하다 말했다. 둥그런 인상에 눈이 큰 선생님. 마스크를 썼지만 그 너머에 있는 얼굴은 참 젊었다. 단체 문자메시지를 보내온 선생님 전화번호를 미리 입력해 둔지라 총회 가기 전 카톡 프로필 사진을 몇 장 넘겨보았다. 갈색 비니를 쓰고 반스 운동화를 신은 모습, 이를 다 드러내며 환하게 웃는 얼굴, 우정 사진인 듯 여자 친구들 대여섯 명과 옷을 맞춰 입고 취한 귀여운 포즈. 사진 속 선생님은 생기발랄한 20대의 모습이었다. 실제 총회 날 만난 선생님도 그러했다. 밝고 친절하고 바라보고 있으면 기분이 좋았다.



아이의 담임 선생님 얼굴이 자주 떠오르는 요즘이었다. 그럴 때마다 생각했다.

사람을 기분 좋게 만드는 우리 선생님이 사명감과 부담감을 조금 내려놓고 무탈한 직장생활을 해 나가길.

앞으로도 숱한 어려움에 부딪히겠지만 대체로 행복한 나날을 보내길.

20대의 생기발랄함을 잃지 않길.

그 속에서 나도, 내 아이도, 선생님도 대체로 행복하길 빌었다.



[사진출처: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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