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하면 좋은 것
좋아하는 이의 옷을 입고 외출하는 일은 좋다. 체취가 깃든 스웨터나 품이 넉넉한 셔츠를 입고 거리를 활보하는 일은 좋다. 멀리 있어도 가까이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일은 좋다. 볕이 따뜻한 겨울 날씨는 좋다. 파주에 눈이 내릴 때, 발이 푹푹 빠져 기우뚱대는 사람들을 구경하는 일은 좋다. 향이 진한 드립 커피를 마실 수 있다면 더 좋다.
밤에 혼자 깨어있는 일은 좋다. 물구나무를 서거나 오래된 책을 뒤적이는 일, 그러다 반짝이는 문장을 발견하는 일은 좋다. 모르는 고양이가 느리게 눈을 깜빡이며, '눈키스'를 해주는 일은 좋다. 선잠에 들었는데 누가 이마를 쓸어주고 가는 일은 좋다. 그 상태를 모른 채 조금 더 자는 일은 좋다. 까닭 없이 당신에게 쓰다듬을 받는 일은 좋다. (쓰는 기분, p.90)
순간을 봉인하면 영원이 되나
넣을 수 있다면, 밀폐용기에 이런 것을 담아보고 싶다.
초여름 화단에 떨어지는 빗소리, 잠든 연인의 순결, 유년의 눈물방울들, 첫눈 내리는 날의 정적, 겨울밤의 고요, 아기새의 첫 날갯짓, 높은 곳에서 아래를 내려보는 고양이의 고독, 죽은 사람의 마지막 눈빛, 미세먼지 없는 날의 아침 공기, 당신이 내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 그 순간의 떨림. 울림통을 통과해 입 밖으로 나오는 순간의 공기. 주변을 청량하게 흔들어 깨우는, 당신의 다정한 목소리 같은 것. (...) 정말 소중한 건 잡을 수 없고, 담을 수 없다. 사라지는 '순간'들 속에서만 반짝인다. 행복의 표적이 되는 찰나. 눈을 감았다 뜨면 없는 것들. 어쩌면 우리가 맞는 모든 순간은 완전히 향유한 자의 기억에서 지워진 뒤에야, 영원으로 남는 걸지도 모른다. (쓰는 기분, p.149-1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