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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멍옥 May 11. 2021

마음이 몽글몽글 해지는 퇴근길

내가 좋아하는 시간 1

사계절이 다 이뻐. 중독된 것처럼 우린 눈 오거나 비 오는 날 빼고는 매일 걸어.

 30년 가까이 근무하신 수술실 간호사 두 분은 5년 넘게 병원 뒤 자락길을 통해 걸어서 퇴근하셨다고 했다.

그러면서 나에게도 추천해주셨다. 같이 걷자고.

그러나 '오늘은 한번 나도  걸어가 볼까?'라는 맘을 먹고 출근해도 퇴근할 즈음되면 온몸이 욱신욱신 아파서 얼른 집에 가서 눕고 싶었다. 집까지 한 시간 가량 걸어간다는 건 나에게 어느 정도의 체력이 남아있을 때 그리고 마음의 여유가 남아있을 때 가능한 일이었기에 계속 뒤로 미루었다.

 그렇게 2년 정도 지나고, 얼마 전 3월 마지막 날 퇴근 후 집에 가는 길 어느 정도 체력도 남아있고 하늘이 너무 이쁘고 화창했다. 집에 이대로 들어가기 아쉬운 마음에 한번 걸어 가보았다.


 우연히 그 길을 한번 걸은 이후, 나도 그 길에 마음을 홀려 싱그러운 연두, 초록색으로 옷을 갈아입기 시작하는 나무들 사이로 나는 버스를 타지 않고 집에 걸어가기 시작했다.


 햇살이 나무들 사이로 스며드는 시간,

햇살이 옆으로 나무 어깨너머로 내려온 시간,

그 햇살을 온몸으로 느끼며 가방을 옆으로 메고 외투를 허리에 두른 뒤 시원한 물이 담긴 텀블러를 한 손에 들고 나무들 사이를 걷다 보면 마음이 몽글몽글 해진다.


 하루 종일 수술방에서 들리는 여러 기계 알림 소리들(마취과 ventilator 알람, 모니터 알람, 여러 에너지 기구 소리), suction에서 빨아들이는 소리, bovie(전기소작기) 소리와 타는 냄새, 많은 연기 그리고 보게 되는 수많은 피들.

그 많은 소리와 함께 매 순간 긴장감 속에서  온종일 발판 위에 구부정하게 선채로  일을 하다 보면 늘 녹초가 되었다. 그런 하루 일과 뒤에 늘 도망치듯 집에 가서 눕곤 했는데, 산으로 여유 있게 걸으며  온몸으로 햇살을 느끼고 잠시 새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걷다 보니 고단했던 하루가 잊혔다.

그리고 이제는 왜 두 분이 이 길을 좋아하게 되었는지 알 것 같다.

 

 요즘은 아침 출근길을 나서기 전 모자와 손수건, 텀블러를 가방에 넣고 편한 신발로 신고 집을 나선다.

그리고 퇴근하고 도망치듯 병원을 빠져나가지 않는다.

한 손에 시원한 얼음물을 넣은 텀블러를 들고 외투를 허리에 맨 채 여유롭게 산으로 향한다.

계절이 변하고 있음을 산을 걸으며 오롯이 몸으로 느낀다. 봄이 지나가고 있음을, 여름이 점점 다가오고 있음을 느끼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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