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고양이, 첫고양이
나에게는 애완묘가 있다. 어릴적부터 여러 동물들을 키워오고 주로 강아지를 자주 키웠어서 사실 고양이는 어릴적에는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왠지 무섭고 예전 시골에서 고양이 사체를 본 후에는 더 싫고 무섭게 느껴졌다. 지금 생각하면 그 고양이도 독을 먹었거나 해서 억울하게 죽은 걸텐데... 마음이 아프다. 아무튼 고양이랑 인연이 없이 지내오다가 20대 후반즈음되어서 갑자기 집 근처에 사는 길고양이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전에도 있었겠지만 그 시기에 좀 더 많아졌던 것 같다. 그래서 서서히 눈에 띄기 시작했는데 생각보다 아이들의 상황이 녹록치않고 사람만 보면 놀라서 도망가는 아기고양이를 본다거나 하는 일이 생기면서 갑자기 도와주고 싶어졌다. 생각만 하던 끝에 내 손으로 집에 고양이도 없는데 마트에서 사료를 구매했고, 살던 아파트 뒤켠 공터에 먹이와 물을 놔두기 시작한 것으로 묘연은 시작된다고 생각한다. 듬뿍 사료를 담은 죽통을 두고 다음날 다시 가보니 움푹 고양의 주둥이 모양으로 먹이가 패여있는 걸 보고 내적환호를 질렀다. 먹었어! 그 기억이 또렷한 걸 보면 내게는 참 기쁜 기억이었나보다.
그렇게 별 다른 이유 없이 고양이가 안쓰러워서 밥을 주기 시작했고 또 생활하다가 마주치는 길고양이들이 생각보다 많아져서 만나는 아이들에게도 주기 시작해서 내 소지품에는 립글로즈, 책, 일기장, 펜 그리고 고양이사료가 담긴 통이 합세했다. 그건 지금까지도 필수품이 되어서 한가득 채워넣고 외출하지 않으면 카드라도 두고 온 기분이 되어버린다. 만약 실수로 놓고 온 날 길고양이를 마주치면 나는 너무나 원통해진다. 먹이 없어, 미안해.
고양이를 생각하는 마음은 있지만, 내 고양이를 가질 생각이나 엄두는 절대 나지 않았다. 무엇보다 나는 고양이를 제대로 만져보거나 키운적도 없고, 심지어 먹이는 주지만 만지려고 유인하는 목적이 아니어서 주고 얼른 꺼져버려야 애들이 잘 먹기 때문에 먹이를 두고 튀기를 반복했다. 제대로 만져본 적도 없고 고양이를 잘 몰랐기때문에 내 고양이에 대한 건 그냥 신기루같은 느낌이었다.
그러던 어느날, 남자친구와 들른 데이트장소에서 나오는 길에 갑자기 야옹하는 소리가 들렸다. 소리에 즉각적으로 '어떤 귀요미가 나를 부르는가!'하고 얼굴보자! 하는 마음에 소리의 근원지로 가보니 어쩌나, 큰 버스의 큰 타이어 안에서 들려왔다. 그리고 그 버스는 아직 시동이 꺼진채 서있었지만 언제든지 기사가 타서 출발할만한 상황이었다. 기사가 이 고양이를 직접 꺼내서 출발한 위인도 아닐 듯 하고, 위험한 상황 같아서 나 대신 남자친구가 직접 손을 넣어 작은 고양이를 어렵게 꺼냈다. 꺼내드니 더 작았고 고등어였다. 심지어 줄무늬도 아니고 좀 내게는 생소한 태비 고등어였다. 무늬가 요상했던 기억이 있다. 하지만 기억에 더 남는 건 뾰족한 얼굴보다 더 큰 귀와 대롱대롱 남자친구의 손에 들린 몸집. 남자친구는 다짜고짜 고양이를 내 품에 안겨줬다. 난리치면서 도망가겠지? 안았다. 고양이는 아주 편안하게 내 품에 안겼고 따뜻했고 발톱은 조금 따가웠나? 모르겠다. 너무 착 안겼다. 품안에 그 작은 생명을 안으니 평소에 별다른 욕심없이 사는 내 마음이 '갖고 싶다'라는 생각을 했다. '내꺼 하고 싶어'
원래 고양이를 키울 생각이 없더라도 원픽 정도는 있으니까. 나는 노란고양이가 정말 좋았다. 고급진 페르시안 그런 흰 고양이 다 필요없고 그냥 길에서 자주 보이는 뽀송한 노란 고양이. 치즈고양이가 내 고양이가 될거라 막연히 생각했다. 그리고 워스트, 별로 좋아하지 않는 고양이 중의 하나가 바로 고등어였다. 털 색이 진하니까 검은 고양이보다 더 거칠어보이고 인상이 좀 사나워보이기도하고 그래서 원치 않던 가장 안 귀엽다 생각하던 고양이가 고등어였고 그 중에서도 태비가 좀 더 무서웠다. 그런데 딱 고등어태비가 내 첫 고양이로 발탁이 된 것이다. 운명은 이렇듯 전혀 예상과 다르게 흘러가는 모양이다. 지금은 어떻냐고? 다른 고양이들도 예쁘지만, 난 고등어고양이만 보면 눈이 도는 완벽한 고등어집사가 되어있었다.
내 고양이를 품에 안은 그날은 2021년 5월 18일. 태어난지 2달정도지났다고 병원에서는 얘기해주었다. 따뜻할때 태어나서 다행이야. 한창 캣초딩일때 발견이 되었다. 약간의 콧물, 눈꼽이 있어서 허피스가 의심이 되었고 귀는 꽤 지저분하고 염증이 있었다. 귀청소도 매번 해주고, 오고나서는 자주 설사를 해서 똥꼬도 자주 닦아주었다. 맞지 않는 사료때문인지 설사는 잘 고쳐지지 않아 애를 태웠고, 고양이 설사에 유명한 비싼 사료를 사주고나서야 똥이 제대로 나왔다. 그 사료는 여전히 먹이는 중이다. 다른 사료 먹였다가 다시 설사를 시작하면 안 되니까. 사료가 비싸다는 것보다도 설사가 멎었다, 아이에게 맞다, 라는 게 가장 큰 기쁨이었다. 고양이를 키우는 건 꽤 사람 아기를 키우는 것처럼 하나하나 내 고양이의 특징들을 맞춰가는 게 중요했다.
남자아이치고 목소리가 너무 예뻤다. 처음에는 소리없이 우는데 난 얘가 어디 잘못되거나 아픈 줄 알았다. 그 정도로 무지한 집사였다. 고양이가 소리없이 우는 건 날 엄마로 혹은 같은 고양이로 인지하는 거라고 했다. 얼마나 감사하고 감동인가. 너무 작아서 얼굴이 귀보다 작았다. 외계인 같이 생겼고 귀여웠다. 처음 똥오줌을 가리면서 모래를 덮는 게 너무 신기했고, 서서히 적응해나가는 게 보여서 좋았다. 그래도 고양이가 처음이라 너무 힘든 건 사실이었다. 잠자는 패턴이 정해져있었고, 그 전에 아마 가정집에서 키웠던 모양인지 사정은 잘 모르겠지만 뭔가 루틴이 있었다. 그것은 항상 아침 4시에 기상하기. 이건 지금도 마찬가지여서 그냥 포기상태다. 내가 4시에 출근준비를 하는 거라면 아주 좋지만, 나는 7시 반 기상이기 때문에... 그래서 지금도 항상 4시에 일어나 달래주고 밥주고 까까도 주고나서 잔다. 나도 그 루틴에 익숙해져서 솔직히 말하면 내 방광이 익숙해져서 그 시간이 되면 그냥 소변보러 일어나진다. 그렇게 일심동체가 되어가는 고양이와 집사.
어느덧 4년이 되었고 5년을 바라본다. 나혼자 키운 줄 알았는데 엄마와 동생이랑 살떄 키우기 시작했던 거라서 나중에 독립하고 내 고양이랑 살게되면서 느낀건, 나혼자 고양이를 키운 게 아니구나. 모두가 다 도와준 덕분이구나 라는 걸 새삼 깨닫는다. 고양이를 잘 몰랐어서 실수로 발톱에 긁혀서 놀라기도 놀라고 반창고도 많이 쓰고, 날카로운 이빨에 물려서 혼낸답시고 맴매도 하고 궁둥이도 때리고. 요즘도 너무 아프게 물면 궁둥이 한 번씩 맴매하지만 왠만하면 요령이 생겨서 물것같은 타이밍에 손을 빼는 경지에 이르렀다. 좀 더 내가 고양이에 익숙한 집사였다면 덜 티격태격 혼내지 않았을텐데, 싶기도 하다.
최근에는 놀러간 카페에서 내 고양이 애기때랑 똑닮은 고양이를 봤다. 저절로 입가에 미소가 지어지면서 내 고양이 이름을 부르며 다가갔다. 고양이는 냅다 내 손을 물어버리는데, 이제는 알겠는게 아 내 고양이도 내가 싫어서 문 건 아니구나, 장난의 일종이고 아파봐야 얼마나 아픈가 싶을 정도여서 그냥 물리면서도 마치 살아있는 내 고양이의 이른 환생같은 그 고양이를 다른 손으로 어루만졌다. 물어도 좋으니 건강하게만 자라라.
이상하게 고양이는 다 예쁘고 사랑스럽지만, 내 고양이는 특별하게 느껴진다. 다른 고양이들은 예쁜 고양이들이다. 예쁘고 건강하게 잘 살았으면 하는 고양이들. 그 고양이들도 사랑하지만, 내 고양이는 뭔가 다른 개념이다. 그건 어떻게 표현하지 않아도 집사라면 이해하겠지. 내 고양이가 있다. 어떤 고양이도 대체할 수 없는 내 고양이가 있다. 내 마음의 길이랑 이어져있는 듯한 그런 느낌의 고양이가 있다. 만나서 다행이야. 서로 알아봐서 다행이야. 그날 내 품에 안겨서 버둥거리지 않는 너가 신기했고, 혹시 몰라서 땅에 내려놨는데 안 가고 쭈뼛거리면서 가만히 내 발치에 쭈그려있는 너를 보며 내 고양이로 삼기로 했다. 사랑스러운 내 고양이.
어쩌다보니 고양이 집사가 된 것도 정말 신기하다. 인생에 정말 내 것이라면, 이루어질만한 것이라면 생각하지도 못한 정도로 금방 이루어져버리는 기분이다. 그래서 생각한다. 내가 원하는 것이 늦게 오는 기분이더라도 내 것이라면, 내 길이라면 너무나도 당연하게 내게 안기고 진행되어온 인생의 나날들처럼 그렇게 또 날아오고 안겨올거라고. 내 지금의 보류된 선택들도 시기가 되면, 내 것이라면 언제든 이루어질거라고 내 고양이를 보면 그렇게 납득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