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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ho May 31. 2024

지향집 이야기

따뜻한 환대의 공간

지향집의 풍경

지향집의 운영자 모아를 알게 된 것은 전주에 있는 숙소 '모악산의 아침'에서부터였다. 제로웨이스트 숙소를 만들고 싶다는 그의 인스타그램을 보고 나와 같은 것을 지향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에 놀랐고, 그때부터 그의 인스타그램을 엿보기 시작했다.


모아는 나와 달리 행동력이 넘치고 사람들을 끌어모으는 재주가 있어 보였다. 이미 멋진 숙소를 하나 운영하고 있었고, 그 공간을 제로웨이스트로 운영하는 방법에 대해 고민하고 있었고, '불모지장'이라는 쓰레기 없는 장터를 열고 있었다. 그러더니 어느 순간 멋진 주택을 리모델링하고 있는 소식이 올라왔고, 그곳이 지향집이 되었다.



지향집의 이모저모



사실 지향집에 가게 된 것은 전주에 출장이 있어서였다. 전주 시장 촬영의뢰가 들어왔는데, 왕복 8시간 거리를 당일로 운전해서 갔다 오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경험했던 적이 있는터라, 하룻밤 묵을 공간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때 생각난 곳이 지향집이었다.


모아에게 연락을 했다. 모아와 두어 번 만난 적은 있지만 친하다고 할 순 없었다. 많은 숙박비를 낼 여력은 없는데 뭘로 숙박비를 대체할 수 있을까 고민했다. 재능 나눔으로 공간 촬영을 하거나 운영진들의 프로필 촬영을 해주고 싶다고 했다. 열렬한 환대가 돌아왔다. 나의 재능이 쓰임새가 생겨 다행이었다. 동시에 지향집 같은 아름다운 공간을 촬영할 수 있어서 영광이었다.


지향집은 모두가 운영자가 되는 공간이다. 제로웨이스트 운영 규칙을 잘 지키고 깨끗하게 사용을 한다는 전제 하에, 청소나 밥 짓기, 화단 가꾸기 등의 재능이나 식재료 나눔 또는 5000원 이상의 자율 기부를 하고 하룻밤을 묵을 수 있다. 


작은 노동력마저도 숙박비가 될 수 있다니, 이런 공간을 잘 가꿔주고 운영해 준 모든 다녀간 사람들에게 감사한 마음에 공간을 더 깨끗하게 사용하게 된다. 그러면서도 열린 마음으로 타지인을 대해주는 사람들 덕에 딱히 눈치가 보인다거나 남의 집에 들어온 것처럼 불편한 마음이 들지 않았다. 마음 편히 쉬고, 원 상태로 잘 정리한다면 그만이었다.



지향집의 멋진 주방



지향집은 지향하는 가치를 모으는 공간이라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공간 곳곳에서 그들이 지향하는 가치를 눈여겨볼 수 있었다. 책장에서, 벽에 붙어있는 포스터에서, 생태주의, 비거니즘, 동물해방, 여성해방 등 이 공간은 사회적 약자들의 이야기를 전하고 있었다. 한켠에는 비건 식료품점이 있고, 때때로 북토크나 요가수업 등이 열리는 풍성한 공간이다.


지향집은 정식 숙박공간이 아니라서 따로 체크인, 체크아웃이 없는 데다, 내가 묵는 날은 운영자인 모아가 올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서 어떻게 들어가야 하나 하는 의문을 품고 있었다. 다행히 문은 열려있었고, 안에는 요가 수업을 준비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에게 물어 손님방을 안내받았고, 주방과 화장실을 알 수 있었다.


다양한 사람들을 환대하는 공간인만큼, 곳곳에 이용 규칙들이 자세히 적혀있다. 주방과 화장실 곳곳에 적힌 이용 규칙을 찾아보며 공간의 룰을 익히는 것이 쏠쏠한 재미다. 처음 오는 사람이라도, 주인이 없어도 편히 묵다 갈 수 있도록 배려된 공간이다. 타지에서 온 돈 없는 프리랜서에게 제격이었다.


이 공간은 "다양성과 함께의 가치를 존중하는 이라면 누구라도 환영해!"라고 말해주고 있었다.



지향집에서 하던 전시 ' 집에서 일하는 사람들'


마침 내가 묵는 날에 지향집에서는 인터뷰집 '집에서 일하는 사람들'에 실린 사진과 글을 전시하고 있었다. 말 그대로 집에서 일하는 다양한 직업의 사람들을 인터뷰하고, 그들의 공간과 일과 삶의 균형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책이다.


재택근무가 늘어가며 집이라는 공간이 점점 자신의 개성을 표출하고 자신의 희로애락을 담는 공간으로 변모하고 있다. 거실에는 소파와 TV, 큰방에는 침대라는 전형적인 공식에서 벗어나 자신의 개성과 직업이 드러나는 공간으로서의 집을 엿볼 수 있었다.


다양한 사람들이 머무르고 쉬었다 가는 공간인 지향집이라는 공간과 이 전시의 결이 딱 들어맞았다. 잘 가꿔진 공간이 주는 따스함. 단순히 예쁘거나 잘 청소된 깔끔한 공간이 아니라, 그 공간만의 이야기가 드러나고, 오가는 사람들에 대한 환대가 느껴지는 공간. 그런 곳이라면 언제든 또 가고 싶다.

시골에 할머니집이 있듯, 전주에는 지향집이 있다.



*자세한 이용 방법은 지향집 인스타그램에서 열람 가능하다. https://www.instagram.com/jihyang.zi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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