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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ho Nov 10. 2023

붕어빵에 숨은 욕망

지독하게 행복하길 욕망한다.

찬바람이 들 때면 열리는 붕어빵 포차가 참 나를 힘들게 한다. 요즘 많이 사라진 것 같았지만 우리 동네에는 아직 있어서 이사를 온 당시에는 좋아했다. 비건이 된 지금은 먹지 못하는 음식이 되었다. 동물성 재료가 들어갈 것이라 생각해서 눈길을 주지 않았다. 하지만 며칠 전, 그런 붕어빵을 사버리고 말았다. 겨울이 오면 집 앞에 찾아오는, 밀가루와 달달한 팥이 들어있는 붕어빵 한 봉지를 사들고 와서 할머니와 나누어 먹던 기억이 난다. 그 맛이 가끔 많이 그립다.


모처럼 쉬는 날. 전날 새벽 수영을 하고 종일 밭일을 한 후 퇴근시간에 돌아오니 잠이 쏟아져서 열시간을 잤는데도 피곤하다. 정수리부터 발끝까지, 왼손 끝부터 오른손 끝까지 저릿한 피로감이 흘러 침대에 계속 누워있다. 해가 떠오르고 배가 고파지니 슬슬 엉덩이가 들썩거린다. 그간 못했던 하고 싶은 일 목록이 떠오른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상태를 참기 힘든 게 참 인간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인류의 생존을 위해 참고 줄여야 한다'라고 외치지만 나 또한 지독한 욕망의 덩어리이다. 실현 불가능한 저 유토피아적 문장과 실제의 나 사이에는 모순되게도 간극이 존재한다. 참고 줄이지 못하는 사람들을 미워할 수 없다. 약자를 밀어내는 자본의 착취구조를 탈피하고자 하면서도 자본주의의 혜택을 누리고 있다. 환경론자들이 쉽게 공격을 받는 부분이다. 환경론자 이전에 인간이기 때문이다.


하고 싶은 게 많을 20대의 나이에 시위에 참여하고 연행도 감수하면서 삼척 석탄화력발전소 건립 저지 운동에 나서는 청년기후긴급행동 멤버들이 추후 늙어서 추억할 욕망은 무엇일까. 함께 웃고 떠들고 눈물 흘려주던 동료 활동가들일까. 함께 술 한잔 기울이며 더 나은 세상을 꿈꾸며 싸우게 했던 뜨거운 심장일까. 그들이 마음껏 사랑하고 관계 맺고 꿈을 좇고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주고 싶다. 사라질 미래가 아니라 약속된 미래를 보여주고 싶다. 어린아이들이 기후행진에 나오는 것을 보고 희망을 보지만 한편으로는 그들이 싸우지 않는 세상을 만들어주고 싶다.


욕망은 마치 속 빈 강정 같다. 갖기 전까지는 갈구하지만, 막상 갖고 나서 보면 별 게 없다. 금세 또 다른 욕망을 향해 눈길을 돌린다. 비록 허울뿐일지라도 있던 욕망을 참다 보면 자꾸 생각이 난다. 그러다가 한 번씩 터진다. 그러나 거기서 더 참다 보면 생각이 나지 않는다.


지웠던 욕망의 빈자리를 채우는 새로운 욕망을 찾아야 한다. 인류의 생존을 위해 참고 줄이는 것이 아니라 생태계의 공존을 위해 ‘다른 것’을 추구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

누군가는 자연의 섭리라고 하지만 본능적이고 파괴적인 욕망이 있다. 인류의 역사는 그런 것들을 하나씩 상쇄해가는 과정이었다. 동시에 공존의 아름다움으로 채워나가는 과정이었다.


인간은 관계로 살아간다. 사람들이 부와 명예를 얻고 싶어하는 것 또한 타인의 인정에서 존재의 의미를 찾고자 하는 삶의 욕망 아닐까? 하지만 그러한 욕망은 궁극적인 행복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지속적인 행복은 무엇일까? 있는 그대로의 다양성을 인정하되 서로를 배려하는 관계, 힘들 때 서로 살피고 도움을 주고받는 관계, 그런 공동체에서 각자가 잘하는 것들을 스스로 탐색하며 쌓아나가는 과정, 돈이 아닌 것들로 교환되는 재화와 서비스, 함께 보내는 시간들, 이런 곳이라면 안전하다는 믿음, 자연이 주는 경이로움, 생태계의 순환을 보는 경험, 내가 뿌린 씨앗이 틔운 새싹, 다른 존재들과의 교감, 아마도 이런 것들.

내가 욕망이라고 생각했던 붕어빵은 맛보다는 '관계에 대한 그리움'이었다.


나는 기후운동을 위해 적을 만들기를 원하지 않는다. 싸우고 싶지 않다. 사실은 시위나 투쟁도 불편하다. 혐오와 폭력이 사라지길 욕망한다. 혐오는 오해에서 비롯된다. 페미니스트에 대한 오해, 채식에 대한 잘못된 지식, 장애인에 대한 편견. 의심은 좋지만 오해가 모든 것을 판단하게 내버려두지 말자.


나는 지독하게 행복하길 욕망한다. 또한 사람들이 모두 행복하길 욕망한다. 그래서 파괴적인 욕망을 조금 참기로 했다. 행복을 수반하는 욕망으로 점점 나를 채워나간다. 덕분에 가끔씩 흔들리더라도, 다시금 제자리로 찾아오는 탄력성이 늘어가고 있는 것 같다.


인생은 행복을 찾아가는 여정이라고 하지 않나. 그렇다면 우리를 행복하게 해주는 것의 본질은 무엇인가. 붕어빵에 숨겨진 관계에 대한 욕망을 발굴했으니, 폭력적인 시스템 안에서 유지되는 동물성 식품을 모두 끊어낼 수 있었고, 이제는 진정한 관계를 되찾을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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