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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여행 May 24. 2023

오늘 하루를 사는 법

무례한 사람을 대하는 법


"지금까지 인생의 눈금마다 붙여진 이름으로서의 나이가 유효하게 작동했다면 이제 눈금과 눈금 사이의 경계는 흐려지고 각 부분을 칭하는 이름에도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언더스토리, 박혜진>


나이답다는 것은 무엇일까? 살면서 종종 어른답지 못한 어른을 만나곤 해. 성장하지 못한 채 채워진 숫자를 마주할 때면, 솔직히 힘이 풀려. 함께 살아가는 세상에서 가장 중심이 되고 있는 가치가 개인주의임을 알아채고, 개인주의가 이내 곧 이기주의로 변질되기까지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다는 사실을 마주할 때면, 간신히 꼭 쥐고 있던 단전의 힘이 단번에 풀리곤 해. 털썩! 주저앉은 후, 다시 일어나기까지는 꽤나 오랜 시간이 필요하고 말이야.


아이의 싸움이 어른의 싸움이 되기도 하는 현장을 종종 목격해. 엄마라는 어른들이 삼삼오오 모여 자신의 나이보다 한참을 어린아이들 이야기를 주제로 삼는 것 또한 보게 돼. 우리의 온몸을 통틀어 혀가 차지하는 면적은 극히 일부분이지만, 그 혀가 미치는 영향은 몸의 크기를 몇 배 치나 넘어선다는 것이 새삼 두렵기도 해. 사람들은 그 무시무시한 영향력을 알고 있긴 한 걸까?


무례한 사람들을 만날 때면 그들에게 그가 사용한 방식으로 갚아주고 싶지만, 결국 이를 악 물고 꼭꼭 참곤 해. 본인들은 모르고 저지르고 있는 내면화된 차별과 혐오, 폭력이 숨어져 있는 말들 사이에서 그들의 언어를 쓴다는 것은 내가 원하는 복수가 아니니까.

오히려, 나는 잘못된 세계의 일부가 되지 않고자 소멸해 버려. 사라진다는 것은 힘이 없는 것이 아니야. 새로운 힘, 새로운 언어, 새로운 시각으로 이 상황을 이겨낸다는 것이야. 자기중심에서  삶을 바라보고 사고하는 것은 어쩌면 모든 인간이 가진 한계일지도 몰라. 그러나, 그것이 지나쳐 자기를 숭배하고 자기밖에 모른다면, 그것은 결국 자기기만이 될 거야.


'나 하나만이라도' 그러지 않기 위해서 애를 써. 자칫 미련해 보이지만 세상 마지막에 남을 가치를 나는 믿어. 나는 더 이상 성장하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아. 흐릿해진 나이 눈금의 경계에 서서 나만이 전부인 세상 안에 갇히고 싶지는 않거든.

나는 나를 믿어. 약하지만 강한 나를. 실속 없고 욕심 없어 보이지만 본질은 놓치지 않는 나를. 나는 나의 아이들을 믿어. 하루하루 성장하는 아이들을. 나는 나의 가족을 믿어. 내가 진심을 다해 사랑하는 가족을. 그렇게 오늘 하루를 살고 또 하루를 사는 거야. 그러다 보면 결국 진심은 드러나기 마련이야. 흐릿해진 나이의 눈금 안에서도 진심만은 바래지 않고 남아 있을 테니 말이야.


오늘도 하루를 살아. 후회 없이. 나의 양심에 부끄럽지 않게.

그것이면 되었어.


2023.5.18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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