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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여행 Jul 03. 2023

멈추었던 시간이 다시 흐른다.

"어려운 고비 잘 이겨내고 건강히 학교에 와주어 고맙다."

초등학교 입학을 압둔 둘째 아이의 반이 배정되었다. 하이클래스라는 시스템을 통하여 드디어 아이의 선생님과 연락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얼굴을 아직 보지 못한 담임선생님께 입학 전, 아이의 건강상태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묵묵히 듣고 계셨던 선생님이 하신 첫 말씀은..​

"어려운 고비 잘 이겨내고 건강히 학교에 와주어 고맙다."

​였다.

그 한마디에 지난 일 년의 시간이 목구멍까지 올라왔다. 굳게 닫힌 입에서 나올 곳이 없던 일 년의 시간이 삼켜지는 동안, 눈에서는 뜨거운 눈물이 흘렀다.


어려운 고비 이겨내고 건강히 학교에 갈 수 있어 감사한 마음으로 한 해를 시작한다. 비단 우리 아이뿐 아니라 모두가 그러하다. 숱한 확률로 만나 각가지 고비를 이겨내고 건강히 이 자리에 함께 있는 친구들, 각기 다른 성격과  모양새의 친구들이지만, 모두가 건강히 한 자리에 모여 만날 수 있음에 감사한 마음만을 품고 학창 시절의 시작을 응원한다.


그러다 생각한다.​

'병원에 있었던 또래 아이들도 학교로 잘 돌아갔겠지?'

'아이스크림이 먹고 싶어 울며 응급 뇌수술에 들어간 다섯 살배기는 아이스크림을 맛있게 먹고 있겠지?'

가장 긴밀하고 깊은 관계를 누리면서도 결코 연락처를 묻지 못하는 사이가 있다. 설사 연락처를 알아도 잘 지내냐는 말 한마디가 조심스러워서 묻지 못하는 사이가 있다. 세상에 흘러나오지 못한 말들을 담아 마음에 가둔다.


내가 누리는 지금의 이 모습. 커다란 가방을 메고 교문을 통과하는 아이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것이, 누군가에게는 간절히 바라는 소망임을... 이 모든 것을 누리며, 내가 평생 담고 살아야 할 마음은 그저 사랑뿐임을...​

학창 시절을 시작하며 아이가 겪는 크고 작은 일들 앞에서 많이 기쁘기도 하고 아프기도 하고, 걱정도 되겠지만, 일희일비하지 않고 늘 아이의 뒤에서 사랑으로 믿고 응원하는 엄마가 되어야지... 다짐한다.


키가 작아 자기 키의 반이나 되는 커다란 가방을 멘 채 조심스레 교문을 지나 학교 안으로 들어간 둘째의 뒷모습을 바라본다. 가만히 그 자리에 서, 아이들의 오고 감을 응시한다.

모두가 들어간 교정, 그제야 세 살 터울 첫째의 신발장 앞에 섰다. 작년 한 해 많이 무섭고 외로웠을 우리 첫째. 아이의 낡은 신발만이 가지런히 자신의 자리를 채우고 있다.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왔다.

이제야, 그 사실이 실감 난다.


아이들이 모두 지나간 허공에 대고 나는 미처 직접 하지 못한 말을 내뱉는다.

"오늘 하루도 멋진 하루가 될 거야."


굳게 멈추었던 시간이 조심스레 다시 흐른다.


2023.3.3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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