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단상
봄비가 장마처럼 내리는 요즘, 예쁘게 봉우리를 내민 꽃들이 밤 사이 내리는 비에 안녕할까 마음이 쓰입니다.
봉긋 솟은 튤립들은 햇볕을 받아 꽃송이 안의 숨은 빛까지 환히 비추며 신비로움을 뽐내고, 빗물을 맞아 아름다운 큐빅으로 장식한 듯 간지럽게 흘러내립니다.
차마 꽃잎을 열지 않음이, 활짝 피지 않음이 다행이라며, 유선형으로 흘러내릴 수 있는 곡선을 가진 봉우리들은 싱싱합니다.
그러나 이미 활짝 펴버린 꽃들은 세찬 비바람에 꽃잎이 상한 채, 지친 얼굴을 푹 숙이고 있어요.
따뜻한 볕도, 시원한 빗물도, 선선한 바람도, 든든한 토양도...
자신만의 때와 희로애락을 안고 살아가야 함은 비단 인간만이 아닌가 봅니다. 살아 숨 쉬는 모든 생명이 그러합니다.
맺혀있는 빗방울이 꽃잎의 표면에서 떨어지기 직전의 순간들. 찰나의 순간들.
지금이 지나가면 결코 지금과 동일할 수 없는 순간들이 조용히 지나갑니다.
새로운 것들이 소생하는 시기,
기존의 것들이 소멸하는 시기,
소멸과 소생이 함께 하는 시기 앞에는 늘 비가 함께합니다.
유심히 보아주지 않으면 지나쳐버릴 작은 순간들을 조용히 담아봅니다.
매일 돌아다니는 동네 구석구석을...
눈으로 가득 쌓여 하얀 세상이 어느새 색을 입고
매서운 공기가 촉촉한 공기로 변신하며..
낯선 이곳에서의 봄비를 마주합니다.
한국이었다면 '보슬보슬'이라는 형용사가 잘 어울릴 봄비이지만, 이곳의 봄비는 '좌락좌락' 내립니다.
아... 이래서 마트에 가면 장화가 그렇게 밖에 나와있었구나.
이제야 이해가 되는 질퍽한 땅들...
부츠를 벗고 장화를 신어야 하는 계절이 존재함을 이제야 이해했어요.
비 오는 날을 좋아하는 사람으로...
하루에 열두 번도 더 웅덩이에 발이 빠지곤 하지만.
구석구석 숨은 투명한 빗방울들이 서서히 스며드는 이 조용하고 신비로운 시간들을 마음껏 누립니다.
아름다운 동네의 사진을 함께 나누며 오늘도 좋은 하루 보내세요.
참...
살짝 열린 꽃봉오리 안을 조심스레 들여다보니,
비밀스럽게 꽃잎 안의 세계들이 열려요.^^
바람을 타고 향긋한 꽃향기가 풍겨나고요.
하얗던 잔디밭이 초록으로 변하더니, 민들레와 함께 노란색을 입었어요.
드디어, 이곳에도 봄이 찾아왔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