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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정운 Oct 28. 2021

90년생 이야기

제주도로 도망간 백수, 그리고 한 달이라는 시간


D-1


 그날이 오고 말았다. 벌써 제주를 즐길 수 있는 온전한 하루가 하루밖에 남지 않았다니. 조금은 길게 느껴졌던 한 달이라는 시간은 아쉬움 때문인지 너무 빨리 지나간 것 같았다. 


 (진지하게 이때 일주일 더 미룰까 한번 더 생각을 했다.)


 아직도 밖은 캄캄하다. 마지막 날에도 새벽 5시에 일어나는 클라쓰... 제주에 와서 8시 이후에 일어난 적이 없다는 게 제일 억울하다.


 일찍 일어난 김에 성산의 일출을 보러 가기로 하고 조용히 밖으로 빠져나왔다.


 차에 시동을 걸어야 앞이 보이는 해가 뜨기 전 깜깜한 새벽. 일출 시간에 맞춰 광치기 해변을 향해 제주에서의 마지막 일출을 보기 위해 출발했다.


 새벽이라 지나다니는 차도 거의 없고 신호도 운 좋게 많이 걸리지 않아 해변까지 도착하는 데는 30분이 조금 안 걸렸다.


 이른 시간이지만 일출 명소답게 사람들이 꽤 있었다.


 파도의 경계선 앞에 사람들이 옆으로 줄을 서 모두 일출을 기다렸다.


 

일출 없는 일출 사진.

 

 하지만 모두의 기대를 저버리고 해는 보이지 않았다. 계절마다 해의 위치가 조금씩 바뀐다고 하는데, 날씨 때문일까 지금 시기가 그런 것일까 해는 성산 옆에서 뜨지 않았고, 모두 옆에서 세어 나오는 빛만 바라보며 아쉬움에 발을 돌렸다.


 아침 일찍 일어나 여기까지 달려왔는데, 조금 아쉽긴 했다. 다시 숙소로 돌아와 자리에 누웠다. 아직 7시도 되지 않은 시간이라 그런지 숙소는 내 숨소리밖에 들리지 않았다.


 오늘은 조식 신청을 한 사람이 없어, 늦은 시간(내 기준)까지 아무도 일어나지 않았다. 씻으면서 오늘 일정을 대충 생각해 보았다.


 역시 멀리 갈 필요 업이 근처에 좋았던 곳 위주로 돌아다니고 맛있는 거 먹으면서 마무리하는 게 제일 좋아 보인다.


 아무도 일어나지 않아 아침인사를 나눌 사람이 없어 그냥 조용히 밖으로 나왔다.?


 일단 돌아다니려면 밥부터 먹어야겠지?


 근처에 괜찮은 생선구이 백반집을 찾아가니 오픈 시간이 약 10분 정도 남았다.


 먼저 주문해도 된다고 사장님이 안내해주셔서 사람들이 제일 많이 먹는 고등어와 우럭구이를 두고 고민하다 우럭으로 주문 완료.


우럭구이 백반


 아쉽게도 제주산 우럭은 아니었지만 겉바속촉으로 나온 우럭구이는 상당히 맛있었다. 제육볶음도 깔끔한 게 입맛에 맞아 역시 찾아온 보람이 있다고 혼자 뿌듯~


 아, 미역국도 고소한 게 너무 맛있었다. (미역국 언급 안 해줘서 섭섭해할 뻔....)


 먹다 보니 어느 순간 사람들로 가게 안이 가득 찼다. (나 빼고 전부 고등어구이 먹는 건 함정)


 기다리는 사람들도 있고 먹자마자 잘 먹었다고 인사하고 계산을 마쳤다. 이제 본격적으로 제주의 마지막을 느끼러 가볼까!??


 밥을 먹었으니 커피를 마셔줘야지. 양쪽 창문을 열고 김녕 카페를 향해 출발했다. 질리도록 맡았던 바다내음이 그동안 잘 몰랐는데 이제 떠난 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런지 오늘따라 잘 느껴진다.


 해안도로를 따라 보이는 바다도 이제 이렇게 한가로이 바다를 바라보며 시간을 보내는 게 힘들 거란 생각을 하니 아쉽게만 느껴졌다.


 그렇게 도착한 카페에서 안 먹어본 커피를 시키고 자리를 잡았다. 일찍 와서 그런지 아직 사람도 많이 없어 창가 자리도 쉽게 구하고 붐비지 않아 더 좋았다.


 주문한 커피가 나오고 기념사진 한번 찍어주고 한입!


 녹차 맛이 너무 진해서 나에겐 조금 맞지 않았지만 그래도 가끔은 건강한 맛도 느껴줘야 하니까 별생각 없이 다 먹었다.


 마지막이라 그런지 시간이 참 빨리도 지나간다. 그동안 힐링이라며 별거 없이 보낸 하루들이 많았는데 오늘도 그냥 그중 하나일 뿐인데 마지막이 타이틀이 주는 여파가 참 큰 것 같다.


 천천히 나와 함덕해변을 향해 출발. 주차장에 차를 놓고 올라가는 길에 국화빵이 보여 한 봉지 주문하고 사람 없는 곳에서 먹기 위해 들고 다녔더니, 사람들이 국화빵 냄새를 맡고 전부 쳐다봐서 관심 집중... (머쓱)


 서우봉 중간에 올라가 사람 없는 의자에 걸터앉아 바다를 보면서 국화빵을 까먹었다. 아직 낮에는 꽤 더워서 그런지 사람이 많지 않았다.


 몇 번을 봤지만 정말 장관이다 이렇게 아름다운 바다는 정말 몇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국화빵도 다 먹고 잠깐 잡생각에 빠졌다.


 이제 다시 집에 돌아가면 직장도 다시 구해야 되고.... 지금 하고 있는 일이 맞는지도 잘 모르겠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나 하는 막연한 생각들도 들었다.


 이런 생각을 제주에 있는 한 달 동안 한 번도 안 한 건 아니지만 그때마다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으려 애썼다. 애초에 제주 한 달 살기의 목적은 그냥 쉬러 온 것이었으니까 머리 아픈 생각은 하지 말자고 그런 생각이 들 때마다 뿌리쳐냈는데,  그러다 이제 갈 때가 되니 막을 수가 없게 된 것뿐이었다.


 그러다 문득 어제 갔던 모알보알은 노을이 진짜 이쁘다고 꼭 봐야 한다고 했던 숙소 사람들 말이 생각나 생각하던 걸 멈추고 다음 목적지로 향했다.


 마지막 날 일정은 생각대로 그냥 맛있는 것 먹고 바다 구경하면서 하는 힐링 그대로 잘 실천하고 있다. 도착한 카페는 오늘도 커피가 맛있었고 사람도 많았다.


 모두 행복해 보인다. 친구, 연인, 가족들과 모여 시시한 얘기를 주고받으며 웃는 사람들의 얼굴엔 그늘 한 점이 없다. 아 물론 나처럼 혼자 온 사람들도 좋아 보였다. (특성상 조금 심심해 보이긴 한다.)


 오늘은 책 대신 사람 구경 풍경 구경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 갑자기 흐리기 시작하더니 일몰시간이 다되어 가는데도 좋아질 기미가 안 보인다.


 하지만 마지막 저녁 일몰 명소까지 온 것이 아까워 일몰 시간이 지나서 까지 기다렸지만 결국 하늘은 깜깜해지고 말았다.


 힘들게 기다렸는데 A... 조금 아쉽다. 뭐 나중에 또 와서 볼 기회가 있겠지 하고 숙소로 돌아가기로 한다. 가로등도 없어 캄캄한 도로 위를 달린다. 오늘따라 도로가 더 조용한 것 같다.


 도착한 숙소에는 오늘 처음 온 게스트들이 먼저 와 있었다. 인사를 주고받고 맥주부터 깠다. (카페에 너무 오래 있어 목이 너무 말랐다.)


 입맛은 별로 없었는데 모여있던 사람끼리 이미 얘기가 끝난 건지 치킨 파티를 하자고 해서 돈을 걷어 치킨을 시켰다. 


하필 배도 안 꺼지고 입맛도 없어서 한 조각 밖에 먹지 못했다...


 치킨은 생각보다 금방 왔다. 다들 배가 고팠는지 특히 옆에 앉은 스무 살 친구가 진짜 잘 먹었는데 그 모습이 너무 귀여웠다. 


어제처럼 오늘도 좋은 사람들과 한 잔 하면서 웃고 떠드는 지금이 나쁘지 않다. 오늘 오신 분들은 친구 두 팀(남녀, 남남)이 왔는데 스무 살, 서른 살 열 살이나 차이 났지만 여기서는 그냥 제주 여행객일 뿐... 어색할 거 없이 서로 재미게 잘 녹아들었다.


 나는 한 달 살기를 마무리하고 이제 내일 간다고 소개를 하니 무수한 질문 세례가 쏟아져 천천히 답변해 드렸다. 한참 웃고 떠들다 보니 소등할 시간이 다되어 쓰레기를 치우고 밖에서 담배 피우는 사람들 무리에 껴서 대화를 나눴다.


 스무 살 친구는 지금 여사친이 제주 스텝으로 일하면서 놀러 오라고 해서 그냥 무작정 왔다고 했다. 크... 나도 저럴 때가 있었지... 하는 생각은 표정으로 감추며 그냥 부럽다고 어릴 때 뭐든 많이 해보라고 했다. (꼰 X)


 참 부러운 나이다 뭐든 할 수 있는... 제약이 없는 그런 나이... 다른 사람들과도 이야기를 나누다 바람이 너무 차가워져 미리 작별인사를 하고 들어가기로 했다. (분위기 갑자기 진지하게 만들어서 갑자기 다 웃음 터짐)


 저 마다 다르게 살아온 사람들이 아무 편견 없이 그냥 대화를 주고받고 웃고 떠들 수 있는 이곳이 너무 좋다.


 이제 불을 끄고 눈을 감았다 뜨면 진짜 제주를 떠나는 날이 오는구나. 아직도 잘 실감은 나지 않는다.

 

 이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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