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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루마루 Jun 02. 2023

정신과 진료실에서 전하는 이야기

77. 마음이 가장 취약해지는 시간, 새벽 3시

  진료실에서 가장 많이 하는 이야기 중 하나는 '정해진 때에 자고 정해진 때에 일어나자'입니다. 처음부터 이를 지키기 어렵다면 '우선 정해진 때에는 꼭 일어나자'라고 권유합니다. (제 기준에 이 정해진 때는 대개 9시 이전입니다) 정해진 때에 일어나다 보면 하루의 피로가 누적되어 밤에 조금 일찍 잠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정신과 의사들은 왜 이렇게 '잠'에 집착하는 걸까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오늘은 마음이 가장 취약해지는 시간에 대해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저는 평소 머리만 대면 바로 잠에 드는 편이지만, 고민이 유독 많은 날에는 머리를 대도 한참을 잠들지 못합니다. 때로는 잠에는 들었는데 새벽 1-2시에 고민이 갑자기 떠오르면서 벌떡 일어나기도 합니다. 그러면 그때부터 2-3시간 정도를 잠들지 못합니다. 고민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점점 증폭되는 것이 느껴집니다. 낮에 진료를 봤던 그분, 괜찮을까? 오늘 저녁 혹시 안 좋은 생각을 한 것은 아닐까? 혹시 극단 상황에서 발견되는 것은 아니겠지? 그때 입원을 권유했어야 했는데.. 이런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뭅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깊은 밤 내내 머리를 쥐어뜯고 고민하던 것이 아침이 되면 좀 이상하게 느껴진다는 것입니다. 왜 그렇게까지 생각했지? 낮이라면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일인데, 이성적으로 판단하고 결정 내릴 수 있는 일인데, 이상하게 그 시간에는 그게 잘 안 되는 것입니다. 


  수면 패턴은 아침형(morningness)과 저녁형(eveningness)으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아침형과 저녁형은 내적인 요인 (타고난 clock gene의 차이 등)과 외적인 요인 (업무 환경, 빛 노출 등)에 영향을 받는데요, 연구에서는 저녁형이 우울한 기분, 불안, 충동성 등과 연관이 있어서 정신 질환에 취약하다는 결과가 나타납니다. 수면 패턴과 깊은 밤의 잡생각 간의 연결고리까지는 아직 밝혀진 것 같지는 않지만, 늦은 밤까지 일어나 있는 것에는 우리의 마음을 취약하게 하는 어떤 요인이 있는 것 같습니다.


  저의 개인적 경험, 그리고 환자분들의 이야기에 비추어보면 사람들은 대개 밤이 되면 소위 '잡생각'이 많아지고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다가 극단적인 생각까지 이어지는' 경험을 많이 합니다. 아직 한참 남아있는 밤,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밤, 짙은 어둠, 낮에는 결코 경험할 수 없는 적막한 고요는 우리가 평소 귀 기울이지 않던 내면의 작은 소리에 귀를 기울이게 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다 보니 평소라면 별생각 없이, 아니면 큰 의미를 두지 않을 일들이 매우 크게 느껴지는 것이 아닐까요. 그리고 이런 일은 말 그대로 '별생각 없이 지나가도 될, 큰 의미가 없는' 일일 것입니다. 많은 자살 사건은 깊은 밤에 일어납니다. 조현병 환자분들의 환청은 주변이 조용해진 밤에 악화됩니다. 


  그래서 남들이 잘 때 자고, 남들이 깨어있을 때 일어나 있는 것을 진료실에서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마음이 가장 취약해지는 시간, 새벽 3시에 혹시 이 글을 읽고 계신다면 여러분이 곧 잠에 들 수 있기를, 그리고 다가오는 아침부터는 적어도 9시에는 꼭 일어나시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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