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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육아휴직 중입니다.

9개월, 둘째가 어린이집에 갑니다

by 마루마루

첫째 때는 무엇이든 걱정이 많았다. 36개월까지는 엄마가 곁에 있는 게 좋다는 말만 믿고 복직과 함께 종일 돌봐주실 이모님을 구했다. 종일 이모님을 '모시고' 살며 돈도 많이 들고 심적으로도 부담이 컸다. 그러면서도 집에 엄마와 함께 있는 아이들과 우리 아이를 비교하고, 나와 다른 엄마들을 끊임없이 비교하며 괴로워했다. 그러다가 예상치 않게 기관에 보낼 기회를 얻게 되었다. 코로나 사태로 인해 가정보육하는 어린이가 많아지면서 어린이집 대기 순번이 뒤쪽이던 우리 집에 차례가 온 것이다. 마음의 짐을 덜고 싶었다. 주변에서도 '일단 보내보고 생각하라'라고 했다. 36개월까지 가정보육하겠다는 복직 당시의 계획을 폐기하고 21개월에 어린이집이라는 새로운 세계에 발을 들였다. 그리고 지금까지 그 선택을 후회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어린이집에서 아이는 친구들과 놀고, 부모나 이모님처럼 자신의 욕구를 즉각 해결해 주는 유일한 어른이 아닌 어른과 상호작용하고, 동생과 형님들을 본다. 낯설고 새로운 환경에서 적응하고, 갈등을 해결하는 방법을 배운다. 어린이집에 가면서 말이 늘고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게 된 것을 보면서, 좋은 장난감이 많은 집이 무조건 정답은 아니라는 것을 배웠다.


그래서 둘째는 좀 더 일찍 보내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 1세 반으로 입소시켜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런데 생각할수록 종일 집에 있을 둘째가 마음에 쓰인다. 아무리 좋은 분을 만나도 집안에서 아기와 어른 단 둘이서 하는 일에는 한계가 있다. 엄마가 있으면 다른 어른이라면 꺼내주지 않을 것도 꺼내서 놀고, 동네 구경도 가고, 다른 아기들을 만나기도 한다. 하지만 아기를 봐주시는 이모님들은 대개 안전을 최우선으로 생각하고 범위를 벗어나는 일을 어려워하기 때문에 이모님께 그런 일을 부탁하기는 쉽지 않다. (물론 이런 일들을 해주시는 이모님도 계신다.) 게다가 둘째의 외향적인 성향도 고민을 더하게 했다. 둘째는 자기 또래의 아이에게 관심이 많다. 외식을 가도 아이들이 있는 곳을 쳐다보며 먹고 호기심 가득한 동그란 눈으로 세상을 탐색한다. 그래서 첫 계획과는 다르게 조금 더 일찍 어린이집을 알아보기로 마음먹었다. 가능하면 복직 전에, 돌 지나자마자 어린이집에 다니기 시작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아무리 저출산 시대라고 해도 만 0세의 어린이집 경쟁은 치열하다. 0세 반은 선생님 한 분이 세 아기를 돌보기 때문에 만 1세, 2세 반에 비해 자리가 항상 적다. 게다가 이 나이의 아기를 맡겨야 하는 부모는 대개 어린이집 입소대기 순서의 고득점자인 맞벌이, 다자녀이므로 우리 집이 더 유리할 것도 없다. 둘째가 8개월 차가 되던 달, 입소대기를 했던 어린이집에 전화를 돌려보다가 쓴 맛을 봤다. 좌절하던 차에 0세 반에 한 자리가 남은 동네 어린이집을 발견했다. 처음에는 거리가 멀어 생각하지도 못한 곳이었다. 전화로 간단히 이야기를 나누고 바로 입소대기 신청을 걸었다. 그날 오후, 우리 아이가 첫 번째 입소 순번이라며 입소 의사를 묻는 전화가 왔다. 정말로 운이 좋았다.


다음날 어린이집을 방문했다. 첫째는 신도시에 있는 큰 어린이집 (취학 전 아동까지 돌보는 어린이집)에 다녔기에 시설이 깨끗하고 넓었다. 둘째를 보내기 위해 방문한 곳은 오래된 가정 어린이집이다. 장난감과 내관에서 연식이 느껴졌다. 하지만 아이들은 밝고 선생님들은 쾌활했으며 전반적으로 따뜻했다. 한 자리에서 20년 이상 운영해 오신 원장님이라 하시니 믿음이 갔다. 다행히 복직까지 시간이 조금 남아있으니 천천히 적응시키며 다녀보기로 했다.




세상에는 나쁜 뉴스가 많다. 어린이집 교사의 유아 학대, 베이비 시터의 만행. 예전보다 그런 일이 더 많아진 건지는 모르겠지만, 예전보다 뉴스가 훨씬 많이 재생산되고 확대되면서 '아이를 남의 손에 맡기는 것은 무섭다'는 공포를 자아내는 것 같다. 나 역시 그런 공포와 불안 때문에 아이를 남의 손에 맡기고 직장에 다니는 내내 죄책감에 시달렸다. 내가 보지 않는 곳에서, 말도 못 하는 아이에게 나쁜 일이 생기는 것은 아닐까. 돌이켜보면 첫째를 봐주신 이모님은 첫째에게 잘해주셨다. 아무 정보 없이 갑자기 보내게 된 어린이집도 2년간 너무 즐겁고 감사하며 다녔다. 아이가 즐거워하면 그만이다. 어차피 모든 정보를 알 수도 없고, 내 맘대로 할 수도 없다. 울고 웃으며 배우고, 선생님들과 소통하며 유대를 다지고, 자신이 나아갈 길을 찾아내는 것은 아이 몫이다.


9개월이 된 둘째가 어린이집에 가게 되었다. 기쁘고 감사하면서도, 걷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둘째를 기관에 보내려니 안쓰럽기도 하다. 하지만 0세 반이 있다는 것은 그 나이의 아이들도 기관에 적응할 수 있다는 의미다. 그리고 하루종일 집안일과 잡일에 시달려 아이와 함께 있으면서도 제대로 놀아주는 시간이 부족한 엄마에게 어린이집은 아이와 더 잘 놀고 돌보는 방법이 될 수도 있다. 여전히 갈팡질팡하고, 앞으로도 종종 갈팡질팡하겠지만 일단은 주어진 기회와 선택을 믿고 나가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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