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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인 Jul 28. 2024

엘리베이터에서부터 시작된 여행

그 중의 한분은 우리엄마 셈치기로 했다.

 드디어 출발이다!

우리 집은 위치가 좋다. 바로 앞에 공항버스 정거장이 있다. 다만, 걸어서 5분을 가야 하는데, 나에겐 골프백 23kg와 백팩 12kg와 기내용 가방 5kg가 있다. 한꺼번에 가져가는 건 아무래도 무리였다.


‘그럼, 따로따로 가져가면 되지.’


나는 일단 골프백을 끌고 정거장을 가기 위해 엘리베이터를 탔다. 한 여자분이 있었다. 가방이 너무 커서 그녀는 옆으로 비켜주어야만 했다. 그녀가 나를 바라보는 눈빛에 어떤 기운을 느꼈다.


여행하면서 사람들과 이야기를 많이 하다 보면, 대화를 시작하기 전, 그 사람에게 에너지가 느껴진다. 이 사람과는 대화가 잘 통할 것 같다든지, 이 사람과 대화하면 깊은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것 같다든지..


이 분에게선 긍정적인 에너지가 느껴졌다. 그리고 내 복장은 누가 봐도 여행 가는 사람이었다.


“어디 여행가시나 봐요.”


“네 저 모리셔스 가요.”


그녀의 얼굴은 모리셔스가 어디지? 하는 질문이 담겨 있었고, 나는 재빠르게 대답을 수정했다


“아프리카 가요!”


“우와, 친구들이랑 가시나 봐요.”


그녀의 얼굴이 반짝거렸다. 여행 가기 전 설렘을 친구와 함께 공유하는 느낌이 들어, 나도 모르게 재잘거리기 시작했다.


“실은 저 혼자 가요.”


“어머. 정말 멋져요. 몇 층에 사시죠? 아, 아까 8층이었는데.”


“맞아요. 몇 층에 사세요?”


“저는 9층에 살아요.”


그녀와 나의 수다가 시작됨을 느꼈다. 이 동네에 이사 와서 처음으로 또래와 이야기를 한 순간이었다. 눈물이 나왔다. 그동안 원했던 또래, 동네, 친구를 만나는 시작점이었다. 엘리베이터 8층에서 1층까지의 시간이 너무나 짧게 느껴졌다.


“우리 다음에 꼭 다시 인사해요.”


“언제 돌아오세요?”


서로가 아쉬운지 우리는 다음을 기약하는 말을 남겼다. 핸드폰 번호를 교환할까 짧은 수초 간 수백 번의 고민이 지나갔다. 너무 앞서나갈지 모른다는 생각에 무리하지 않기로 했다. 나는 내 바람을 한번 더 이야기했다.


“우리 꼭 다시 만났으면 좋겠어요. “


그렇게 여행의 첫발을 내디뎠다.

마음 한편이 찡했다.

여행을 그만두지 못하는 이유들 중 하나가 바로 이 순간인 것 같다. 여행이란 건,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함께 두근거림을 공유하고, 그 속에서 새로운 인연을 낳는다. 가방은 너무 무거웠지만, 마음이 날아갈 것만 같았다.



그렇게 버스정류장에 가방을 두었다.

그리고 다시 집으로 돌아가, 정말로 떠나기 전에 성모마리아상과 십자가 앞에서 기도를 했다. 무사히 돌아오기만을 기도했다. 평소에는 성당을 자주 다니는 독실한 신자는 아니지만, 여행 전만큼은 나도 무언가에 기대고 싶나 보다.


 백팩과 작은 가방 하나를 들고, 모자를 쓰고 집을 나섰다. 이제 3주간 집에 오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두 번째 엘리베이터를 탔다.


한 아주머니가 계셨고, 첫 번째 분처럼 눈을 동그랗게 뜨셨지만, 이내 따듯한 얼굴을 지어 보이셨다. 역시나 설렘 가득한 이 얼굴은 대화를 시작하기에 아주 적절해 보였다.


“어디 여행가시나 봐요.”


“모리셔스, 아프리카 여행 가요.”


좋아, 이번엔 정확하게, 어딘지 한 번에 알아들으실 수 있게 대답했다. 다행히, 대화는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친구랑 같이 가는 거예요? 혼자 가는 거예요?”


“저 혼자가요.”


순간, 아주머니의 얼굴에서 엄마의 얼굴이 스쳤다. 내 젊은 적 하지 못했던 그런 걸 하는 사람에 대한 동경이 표정에 스며들었다. 마음 한편이 다시 찡해졌다.


“조심히 다녀오고, 무사히 다녀오라고 기도하고 출발해요.”


나는 속으로 순간 깜짝 놀랐다. 나에게도 뭔가 기운이 느껴지신 걸까 아니면 보통 하시는 말씀일까 구분이 가질 않았다.


“방금 집에서 기도하고 출발했는데, 말씀 듣고 깜짝 놀랐어요.”


“잘했어요. 잘 다녀올 거예요. 당신은 내가 봤던 사람 중에 제일 멋있는 사람이에요. “


손으로 엄지를 척 올리시면서, 환하게 웃어주셨다.

나도 환하게 인사를 하고, 걸어 가는 도중 눈물이 나왔다. 엄마 생각이 났다. 이번 여행에서 엄마와의 의견충돌이 있었다. 어렸을 때부터 나는 밖으로 나가서 새로운 것을 경험할 때, 세상을 살아가는 힘을 얻었지만, 엄마는 집에서 책과 연구로 세상을 알아가는 힘을 얻었다. 엄마는 항상 밖으로 나가는 나를 나가지 못하도록 상처 주는 말을 뱉었고, 나도 나를 방어하기 위한 날카로운 말을 했다. 여행의 시작의 대부분은 안절부절못하지 못하고, 부모님의 반응을 걱정하면서 시작했다. 이번 여행도 다르지 않았다. 여행을 다녀올 때마다 엄마의 관계가 단절된 느낌이 난다. 하지만 나는 여행을 그만둘 수가 없다. 나에게는 여행은 하나의 삶의 방식이 된 지 오래되었다.


 ‘이 분에게 받은 이 느낌을 우리 엄마한테 받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나는 그분을 엄마라고 셈 치기로 했다.

괜찮아 이번엔 엄마께 에어프라이기를 선물드리고 왔으니, 나에 대한 화를 그걸로 좀 가라앉히길 바랄 뿐이다.


아니다.. 그걸 쓰면서 내 생각이 나서 더 화가 나려나?

괜찮다. 이번엔 두바이 경유여서, 초콜릿 사 오면 될 거다.


문을 활짝 열면서 말해야지


“엄마! 두바이 초콜릿 사 왔어! 엄마딸은 두바이초콜릿을 두바이에서 사준다고!!!”


등짝스메시 맞을까…

일단, 여행을 다녀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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