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트키가 팡팡 쏟아진다
(속닥속닥) 제주에 숨겨놓은 맛집이 있습니다. 5년 전에 금악성당(이시돌목장)에 갔다가 우연히- 네이버 검색 '금악성당 화덕피자' -들러 식사를 한 곳이죠. 그런데 그 집 사장님과 이렇게 친해질 줄이야!
사실 첫 만남은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화덕피자를 먹으러 갔고 몰랑몰랑한 도우에 듬뿍 올라간 토핑을 못 잊어 그다음 주에도 갔고, 그다음 주에도 또 갔고... 어느덧 우리는 친구가 되었지요. 맛집 사장님과 친구가 되면 입이 즐겁습니다. 게다가 맛집의 정원 한편에 텃밭이 있다면 입이 싱싱하고 즐겁습니다. 거기다가 맛집 사장님의 어머니께서 한정식의 대가라면 제철 재료에 손맛까지 더해져 마음을 끌어당기는 감칠맛이 입안에서 폭발합니다.
그동안 맛집 사장님의 많은 치트키를 맛보았지만 다른 사람들은 맛보고 싶어도 볼 수 없는 특별한 대우라 자랑을 해본 적은 없답니다. 하지만 브런치스토리에만 글을 쓰는 요즘, 맛집 사장님이 쏜 치트키는 '쓰는 사람'에게 글감이 되었지요. 그러니 많이 아쉽더라도 눈으로 같이 나눠 먹어요. 맛을 느끼기에 많은 상상력이 필요할 테니 살도 제가 대신 찔게요. 그럼, 먼저 애피타이저부터 맛볼까요?
요즘 제주는 단호박이 제철입니다. 그중에서 '보우짱'이라는 품종의 단호박은 훌륭해요. 아, 이래서 단호박이구나,라고 감탄이 나오는 맛이지요. 저도 여름방학이라 점심을 못 먹는 날에는 미니 단호박을 쪄서 간식으로 챙겨 다니거든요. 정말 맛있고 든든한 한 끼가 되어줘요. 쪄먹고 수프로 만들어 먹을 줄만 았는데 맛집 사장님은 텃밭에서 키운 단호박으로 베이글을 만들었다고 해요. 화덕 피자 맛집이니 베이글도 화덕에 구웠지요.
인심 좋은 사장님께서 단호박베이글을 선물로 싸주셨습니다. 노란 단호박을 넣은 화덕 베이글은 색깔도 예쁠 뿐만 아니라 진짜로 너무 맛있어요. 바삭한 베이글을 좋아하는데, 쫄깃한 식감이 더 맛있구나,라는 반전의 취향을 보여주었지요. 사장님, 베이글도 팔아주세요.
게다가 집에 있는 비파잼과 함께 먹었더니 '손이 가요, 손이 가'로 시작하는 새우깡의 광고 주제가는 이제 화덕 베이글에게 넘겨주어야 할 것 같아요. 하나만 먹으려고 했는데, 마음은 정말로 그랬는데 세 개를 홀랑 다 먹어버렸습니다. 아참, 비파잼은 '비파'라는 과일로 만든 잼입니다. 저도 비파를 제주에 와서 처음 먹어보았어요. 여름에 잠깐 나와서 맛을 보기도 힘들지만 가격도 무척 비싼 편에 속합니다. 막내의 친구 엄마가 만들어준 비파잼은 살구잼을 닮았는데 맛은 씨가 없는 무화과 잼 같아요. 아주 부드럽고 달달해요.
애피타이저로 입맛을 돋우었으니 이제 맛있게 먹어봅시다. 맛집 사장님의 치트키 등장, 짠!
언니, 이거 가져가.
'오다 주웠다'는 말만큼이나 짧은 한 마디에 검붉게 숙성된 양념장 한 통이 사장님의 손을 떠나 제 손으로 왔습니다. 그녀의 부모님께서 직접 농사를 지은 고추를 햇볕에 말려 곱게 빻은 고춧가루에 육수를 우려 넣어 만든 기본 양념장이라는데 보기에도 침이 고이는 맛있는 단어들이 올망졸망 모인 것 같아요. 빨리 집에 가서 요리가 하고 싶어 지더라고요.
이 양념장만 있으면 무조건 맛있는 요리가 될 것 같은 사장님의 치트키로 무엇을 만들어 볼까요?
재료가 다 갖춰지지 않은 날에 뜻밖의 요리를 할 때는 '냉털'이 정답이지요. 냉장고 문을 열고 띵동 띵동 소리가 날 때까지 눈을 크게 뜨고 냉장고 안을 살펴보았어요. 방학이라 아침 점심 저녁밥을 하느라 재료가 충분합니다. 마지막 남은 치즈떡과 양배추, 냉장 순대까지 발견했어요. 그래서 1/4 조각의 양배추를 알맞게 썰고 사장님의 치트키인 만능 양념장을 넣어 떡볶이를 만들었어요. 그 사이 찜기에 순대도 찌고, 떡이 모자라는 것 같아 소면도 삶아보았고요. 음, 맛있어요. 어울릴까 싶었던 소면도 자작한 떡볶이 국물이 잘 어울리네요.
역시 맛집 사장님과 찐친이 되면 우리 집도 맛집이 됩니다.
다음 날 저녁에는 먹고 싶었던 찌개를 끓였어요. 전라도 광주에는 맛있는 음식이 참 많은데 그중 제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애호박찌개랍니다. 채 썬 애호박과 돼지고기의 비계가 얼마나 달근하고 시원하던지, 아직도 처음 맛본 그날이 잊히지 않아요. 그래서 떡볶이로 검증된 맛집 사장님의 양념장을 믿고 몇 주 전부터 먹고 싶었던, 나를 위한 요리를 해봅니다. 찌개용 돼지고기에 애호박, 양파, 마늘을 씹는 맛이 있게 썬 뒤 사장님의 치트키로 골고루 버무려줍니다. 특히 돼지고기에 양념에 잘 스며들도록 톡톡. 그리고는 물(혹은 육수)을 부어 팔팔 끓였지요. 새우젓이 있으면 그것으로, 없으면 소금으로 간을 좀 맞추세요. 맛은 말해 뭐해요. 너무 맛있죠.
역시 맛집 사장님과 찐친이 되면 요리가 쉬워집니다.
애호박찌개에 넉넉하게 썼더니 이제 양이 급격하게 줄어든 귀한 양념장이 남았습니다. 아끼고 싶은 마음이 들 때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할 속담이 있지요.
'아끼다 똥 된다.'
그래서 요즘 유행하는 라이스페이퍼를 얹어 더 바삭한 부추전을 굽고, 잘게 다진 소고기와 돼지고기에 애호박, 새송이버섯을 넣어 뭉친 뒤 라이스페이퍼로 감싼 고기롤을 구워 만능 양념장과 함께 먹었지요.
역시 맛집 사장님의 치트키는 어떤 용도로 써도 맛있습니다.
이렇게 습하고 더운 여름 공기는 가을을 내주지 않을 것 같았는데 희한하게도 입추가 지나니 기세가 한풀 꺾인 것 같아요. 입추는 '엄마 사람'을 다시 요리하게 만듭니다. 칼질도 가스불을 켜는 것도 낯설어 삐거덕 소리가 나던 요리 실력을 올해는 맛집 사장님의 만능 양념장이 한 방에 해결해 주었어요. 덕분에 감탄사를 연발하는 식탁을 맛보았네요. 나눠 먹는 즐거움, 가족들의 칭찬까지 얻었고요. 역시 맛집 사장님은 그냥 되는 게 아니었어요. 사장님의 치트키 덕분에 다시 요리를 시작했으니 자신감을 가지고 '내손 내 밥'으로 우리 집 식탁을 꾸려봐야겠어요. 그럼, 이제 올해의 마지막 콩국수를 만들러 갑니다. 휘리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