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고 싶었던 말들이 끈덕지게 곪아가던 메모장도 삼월이 가고 사월이 가고 오월이 오면서 눈이 녹고 봄바람이 불듯이, 벚꽃이 피고 지듯이 한결 가벼워졌다
모든 객체가 그 사람이던, 마침표마다 눈물이 묻어있던 글들도 영원할 줄 알았으나
어느새 장보기 리스트와 투두 리스트에 묻혀 찾아보기 힘들게 되었다
나는 더 이상 길을 걷다가 난데없이 울음이 터져 한참을 쪼그려 앉지 않게 되었다
길거리에 넘쳐나는 이별 노래와 발라드도 이젠 날 울게 만들기엔 부족해졌다
친구들은 더 이상 날 걱정하지 않는다
나 역시 더 이상 힘들다고, 술을 마시자고 그들에게 울면서 전화하지 않는다
우리는 더 이상 포차에서 소맥을 말지 않는다.
우리는 와인바에 간다.
나는 웃으며 새로 만나보기 시작한 남자를 설명한다
좋다고
좋은 사람 같다고
다시는 사랑 못할 줄 알았는데 역시나 착각이었다고
세상에 남자는 많다는게 정말이라고
그렇지만 그들은
길을 지나가다 그 사람의 향수 냄새가 나면 내가 괜히 뒤돌아본다는 걸 모르지
꿈에 그 사람이 나오면 깼다가도 이어서 꿈을 꾸고 싶어서 다시 억지로 잠에 든다는 걸 모르지
누군가 사랑을 말하면 그 이름 석자를 떠올리는 걸 모르지
소맥이 아닌 와인으로 취해도 그 사람의 얼굴은 어김없이 떠오른다는 걸 모르지.
집으로 들어서는 길목,
다시 또 처음처럼.
내 안의 둑이 무너진다고.
눈물이 난다고.
엉엉 울어버리고 만다고.
조금만 방심하면 내 이름을 불렀던 목소리. 손가락. 향수. 비누 냄새가.
그리고 어떤 얼굴로 날 봤었는지. 날 어떻게 사랑하게 만들었는지. 그래서 섭섭하게 만들었는지.
서운하게 만들었는지. 그런 사람은 영영 처음이었다는 것과. 괜히 돌아보게 만들었다는 것과.
걸음마다 아쉽게 했다는 것과. 그 사람을 모르고 살아온 지금까지의 날들을 후회하게 만들었다는 것이.
부표처럼
떠오르는지...
그래. 그같은 사람이 있었지. 세상에 단 하나뿐이지.
숨을 크게 쉬는 당신.
흔들리는 나뭇가지 아래 당신.
여름을 만끽하는 당신.
책을 읽는 당신.
사랑하는 연인의 머리카락을 넘겨주는 당신.
당신의 첫사랑. 당신의 첫경험. 당신의 첫 성공. 첫 패배. 당신이 겪었을 첫 역경. 당신이 가장 좋아하는 친구. 가장 좋아하는 음식. 가장 좋아하는 장소. 가장 큰 슬픔. 가장 깊은 아쉬움. 가장 큰 후회. 당신이 맞았을 비. 맞았을 눈.
그런 것들이 ........
지금까지도 .......
책을 펼치듯 내게 쏟아진다는 것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