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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nette May 01. 2024

사랑이 뭐길래…

사람을 이렇게


헤어지고 더 사랑했다

눈이 펑펑 내리는데 악에 받쳐 소리지르고 울고 서러워서 밀치고 주저앉고 엉엉 울고 알콜의 힘을 빌려 통화 버튼 누르고 이러지 말라며 애원하고 빈정대고 마음 아파하고…

밑바닥 보고, 밑바닥 보여주면서 더 사랑했다.

그 모든 결핍을 직시하고 더 사랑했다.

그래서 자신있게 할 만큼 했다고 할 수 있지


울만큼 울고, 슬플 만큼 슬프고, 텍스트로만 보았던 <뼈에 사무치는 아픔> 이라던가 <가슴이 찢어질 것 같은 고통> 을 몸소 피부로 이해했던 시간이었다고.

참 세기의 사랑 한 듯 굴며,

열네시간 비행 동안 한 끼도 못 먹고 한 시간도 못 자고 숨죽여 우느라 승무원 언니의 걱정을 받고

첫 이틀간의 일정을 모두 캔슬하고 방에만 틀어박혀 있었을 만큼, 정말 할 만큼 했다고

난생 처음으로 안주도 없이 소주 세 병을 꺾어마시고 영하 5도의 종로 사거리에서 추하게 짓무른 눈가를 비비며 앉아있었던 날들도 있었다고

싸다김밥에서 우동을 먹다가 성시경의 희재가 나오길래 목이 메어 죄다 남기고 나와야 했던 날들도 있었다고

만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이별이 얼마나 아픈지 설명하고 눈물 흘리고 도움을 구하는 바보가 되었던 날들도 정말 정말 많았다고…


그 사람 앞에서 내가 얼마나 어리고 멍청하고 불쌍하게 굴었는지와 그 모든 게 얼마나 창피하고 쪽팔린 일이었는지.


모두 겨울의 기억으로 남게 된 지금에서야 이렇게 마지막으로 돌아보니…


서울이 온통 그 사람이다.

막상 같이 다닌 곳은 몇 안 되는데. 어딜 가든 그 사람 생각을 너무 많이 해버렸는지, 어딜 가든 그 사람 생각이 나.

나는 아직 우리에게 남은 이야기가 있다고 믿고 싶은 걸까.

그 헛된 빛을 아직 쫓는걸까.

더 사랑하기 전에 끝내는게 맞다는 그 아픈 말


그 사람은 처음 듣는 목소리를 하고

눈물이 고여 막힌 숨을 터뜨리며 핸드폰 너머 송신한다

울지나 말지

결혼은 좋은 사람으로 남고 싶은 남자들의 핑계라는데 나도 차라리 그 말을 믿고 싶은데 그럼 덜 아팠을 텐데 그 사람은

기어코 눈물을 흘려

내가 오래오래 돌아보게 만든다


그 사람이 나에게 남긴 것들을 갖고 남은 날들을 그려본다

바에 가면 어울리지 않게 아드벡을 찾고

성시경과 하동균, 일기예보를 듣고

카페에서는 꼭 푸어오버를 마시고

로디베를 뿌린 누군가가 걸어가면 뒤돌아보겠지

딱 그 정도로

우리가 함께 보내지 못했던 유일한 계절의 문턱에서 나는…


생각한다. 그래도

정말 많은 것들이 남았다고.

차마 전부 말할 수도 없을 만큼.

다시 태어났대도 과언이 아닐 만큼.

사실 언젠가 그 아침에

날 바라보던 그의 눈빛에서 나는 찾을 수 있었으니까.

행복하는 법을,

비로소 또 다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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