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에 관한 글쓰기 1
“엄마, 있잖아. 나 엄마에 관해 글 써도 돼?” “뭔 글을?” “그냥, 이런저런 엄마 이야기….” “잉? 이잉. 그래, 그래라!”
엄마는 쉽게 승낙했다. 물론 엄마를 글로 쓰는 것이 처음은 아니다. 그리움과 애틋함, 혹은 서운함을 주체 못 할 때마다 일기장에 마구 갈겨썼던 엄마라는 두 글자. 요동치는 감정 때문인지 그 내용은 대부분 완전한 문장을 이루지 못하고 뚝뚝 나열되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글을 쓴다면 남들에게 보여줄 계획이었다. 좀 더 우아하게 말이다.
그동안 엄마를 생각할 때 내 감정은 좀 과했다. 이른 나이에 고향을 떠난 내가 의지한 신은 바로 엄마였다. 해가 여러 번 바뀌어도 변함없이 내 안부를 묻고 끼니를 걱정해주는 사람. 무조건, 무한대로 나를 지지해주는 어떤 존재를 떠올리지 않으면 견디기 어려운 청춘이었다. 그렇게 엄마를 생각하다 보니 우리 엄마 불쌍하고, 엄마 인생 서글프고, 그래서 나는 엄마의 헌신에 보답해야 하고…. 뭐 그렇게 됐다. 실제로 엄마는 헌신적이었다. 엄마가 좋아하는 것은 자식과, 자식이 먹을 것을 농사짓는 것과, 그 소출을 팔아 돈을 벌어 자식을 키우는 것뿐이었다.
몇 해 전, 그런 엄마가 아팠다. 엄마가 아파서 내가 바라던 엄마가 못 됐던 건지, 아니면 내가 아파서 엄마에 대한 상을 유지하기 어려웠던 건지 모르겠다. 아무튼 엄마를 그리워하며 열일곱부터 구축했던, 나를 둘러싼 엄마라는 견고한 세계가 조금씩 부서졌다. 엄마가 있어 견뎌 왔던 나는 엄마가 있어 괴로웠다.
심리상담 첫 회기는 어린 날을 회상하는 것으로 시작했다. 땅굴을 파듯 헤집고 들어간 기억 속에는 지금보다 젊었던 부모와 그들의 늦둥이인 내가 있었다. 한여름의 엄마는 저녁 9시가 다 돼서야 집에 왔다. 대문을 걸어 들어올 때 늘 ‘연진아-’라고 불렀다. 그 목소리만을 종일 기다린 어린 연진은 토방으로 뛰쳐나가 ‘엄마, 나 된장국 끓였어!’ 소리쳤다. ‘옴메, 내 새끼. 잘했네. 언능 먹자.’ 엄마가 흙물을 씻어내기 위해 모자를 벗었다. 땀에 눌려 푸석해진 머리카락에서 마저 흙냄새가 났다. 엄마는 식어버린 된장국에 밥을 말아 훌훌 넘겼다. ‘아야, 맛있다야’하며 목구멍으로 밥알을 흘려보내는 엄마의 얼굴은 된장빛이었다. 엄마의 낯빛이 어떻든 9살의 나는 그 칭찬이 마냥 좋았다. 일하다가 지쳐 코피를 한 바구니 흘리던 엄마의 옆에서 내가 해 줄 수 있는 건 휴지를 건네는 것뿐이었다. 국민학교 3학년 때는 학교에서 매월 이달학습을 사서 풀라고 했는데, 나는 그것이 엄마의 지갑에 부담을 주지 않을까 걱정했다. 내가 잘하고 싶었다. 숙제를 잘하고, 집안일을 많이 돕고 싶었다. 착한 딸이 되어 지친 엄마에게 행복이 되어야지.
그만큼 엄마의 사랑을 갈구했다는 얘기다. 하지만 그 사랑은 충족되지 못해 상처받았다는 말이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손이 미끄러져 유리 물병을 깬 어느 날, 뙤약볕에 지쳐 쉬던 엄마가 ‘철철이 같이 또 말썽이냐’며 화를 냈다. 유리 조각 위로 넘어져 내 무릎에서 피가 난다는 사실은 안중에도 없었다. 오빠의 결혼 피로연으로 모두가 정신없던 어느 날은 작은 방에서 미술 숙제를 하다 방바닥에 니스를 엎었다. 엄마가 처음으로 내 뺨을 때렸다.
기억을 뒤적여보면 ‘가난한 농부의 늦둥이’로 살아온 내가 받은 상처가 한가득하다. 강아지만이 나를 반겨주던 텅 빈 집. 바쁜 엄마에게 행여 짐이 될까봐 두려웠던 나. 엄마가 농사 말고 무엇을 좋아하는지 잘 모르듯, 엄마 역시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잘 몰랐다. 반장 후보가 됐다고 했을 때 ‘쓸 데 없이 그런 거 하지 말라’는 말 대신 ‘그래, 잘 할 수 있을 거야’라는 응원을 들었다면 나는 나를 좀 더 사랑할 수 있었을까. 생일이나 졸업에 한 번 쯤 축하의 꽃다발을 받아 봤다면 나는 더 구김 없는 어른이 될 수 있었을까. 기민하게 내 감성을 알아채주는 부모를 만났다면 나는 내 존재를 의심하지 않고 살 수 있었을까.
얼마간 원망과 분노가 일었다. 흘러간 날은 둘째 치고, 내가 받았던 상처를 엄마가 모른다는 사실에 화가 났다. 처음으로 엄마에게 ‘엄마 때문에 죽고 싶어’라고 말했다. 그 말을 내뱉는 목구멍이 칼을 삼킨 듯 아팠다. 그러나 엄마는 내 아픔을 경시했다. “뭔 그런 소리를 한다냐, 쓸 데 없는 말 하지 마라.” 무심한 반응에 한 번 더 상처받았다. 여러 번 그런 일들이 반복됐다. 그렇게 몇 번, 엄마는 내게 사과했고 나는 내 상처가 조금 아물었음을 느꼈다. 그리고 깨달았다. 엄마는 늙었고, 나는 충분히 컸구나.
엄마에 대한 격한 감정들이 조금씩 흩어진다. 엄마라는 말만 들어도 목이 메곤 했었는데, 이제 그렇지가 않다. 대신 진짜 엄마가 궁금하다. 내 멋대로 왜곡한 엄마는 원래 어떤 사람일까? 내가 엄마와 같이 살며 생활을 공유한 건 고작 열여섯 해 뿐이다. 사실 엄마와 이틀만 같이 있어도 싸우기 밖에 더해? 하지만 함께한 날도, 그렇지 않은 날도 내 삶에 가장 많은 흔적을 남긴 사람, 그게 엄마라는 사실만은 부정할 수가 없다.
남은 날 동안 엄마라는 존재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대하고 싶다. 달리 말하면 이제 엄마가 ‘은하수’, ‘봄비’, ‘복숭아꽃’ 같은 유의 글감이 됐다는 의미다. 내가 참 좋아하지만, 내 것이 아닌, 그러나 아름다운. 그러니까 엄마에 관해 쓰는데 엄마의 동의를 구한 건, 엄마의 개인사를 공개해도 괜찮은가에 대해서가 아니라 앞으로 내가 엄마에게서 조금 더 멀어져도 될까와 같은 맥락이었다.
나에게 엄마가 일기가 아니고 시가 되었으면 좋겠다. 아무렇게나 쏟아 낸 일기 말고 정갈하게 다듬고 승화시킨 시. 아무도 기억해주지 않을 엄마의 이야기를 쓰며 오래 남는 시처럼 엄마를 떠올리고 싶다. 행간을 읽는 여유가 있으면 좋겠다.
덧붙임. 이 프로젝트로 엄마에 관해 열 편의 글을 쓰기로 마음먹었다. 하지만 글이 배달되지 않는다면, 그건 아마 아직도 엄마를 일기로밖에 못 써서 일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