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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각보자기 Dec 27. 2021

부끄러운 회사형 인간

일한 지 12년이 되었다. 2009년 1월부터 출근했으니 햇수로는 그렇다. 중간중간 회사에 다니지 않는 시간도 있었지만 그 기간을 다 합쳐도 채 1년이 안 된다. 매일 출퇴근 하는 일을 10년 넘게 해 왔다는 건 대단하다고 할 만하다. 하지만 나는 내가 좀 부끄럽다.

부끄럽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다. 우선 한 직장에 오래 붙어 있지 못했다. 그동안 크고 작은 회사를 포함해 총 7번의 입사를 했다. 우리 집에는 한 직장을 25년 넘게 다닌 사람이 있다. 여전히 그 직장을 다닌다. 그와 나는 늘 비교 대상이다. 퇴사를 할 때마다 나는 근성 없는 사람이 되었다.


자주 이직하며 몸값을 높였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나는 그렇게 영리하지 못했다. 커리어가 아니라 상황에 따라 이런저런 일을 했다. 공기업 행정인턴, 교육업 언론홍보 대행, 교육협회 잡지사 기자, 주방용품 브랜드 마케팅팀 PR 담당, 스냅 스튜디오 포토그래퍼, 산업용 소재기업 신사업 마케터, 생활협동조합 홍보팀 사보 편집자... 마지막 구직 활동을 할 때는 그동안 해 왔던 일들을 묶어 ‘콘텐츠’라는 이름으로 포장해 보았지만 별 효용이 없었다. 지금은 영상 관련 일을 하고 있다. 나는 참 두루두루 했다.


결국 나는 아무것도 되지 못했다. 출퇴근 해 온 12년 동안 장기근속자도, 직책자도, 고액연봉자도, 전문가도, 심지어 개인사업자나 프리랜서도 못됐다.


회사에서 당당하고 자기주장이 강한 사람을 보면 부럽다. 분명 성공 경험이 많은 사람일 것이다. 자신을 중심으로 일을 배치하고, 일에서 얻고자 하는 목적도 분명할 테지. 나는 연차에 맞는 경험이 없고, 빠삭하게 알고 있는 업종이나 직무도 없다. 야망을 가진 적도 없다. 그래서 늘 부끄러운 마음으로 일을 한다.

스스로가 어설프다 여기니 업무에 자기 확신을 갖기도 어렵다. 내 창의력은 미천하다. 내 기획은 언제든 대체 가능하다. 타인의 반응을 통해서만 내 성과를 인정한다. 남에게 종속된 나의 자존감.


평생직장이랄 게 없는 시대, 열 번의 퇴사는 예삿일이 되고 그러한 경험이 멋진 콘텐츠가 되기도 하는 요즘. 회사나 직업이 변하는 것과 상관없이 인생 목표가 뚜렷한 사람, N개의 직업을 갖고도 자신을 잃지 않는 사람이 존재한다. 나는 아니다. 콘텐츠는 만들었을지언정 나라는 일관된 주제는 없었다. 매번 새로운 회사와 직무, 사람들에게 적응하며 점점 더 나의 농도를 희석시켰다.


나는 결국 ‘회사형 인간’이 된 셈이다. 우리말샘 사전에 따르면, 회사형 인간이란 ‘일을 생활의 중심으로 삼는 사람’이다.

갑작스러운 조기 퇴근 지시에도 나는 별로 기쁘지 않다. 갑자기 생긴 여가를 어찌 보내야 할지 잘 모르겠다. 어릴 때 즐겼던 취미도 이제 재미없고, 친구들에게 ‘야, 지금 당장 만나자’라고 하기도 조심스럽다. 영화 소공녀의 미소처럼, 각별한 기호식품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어도 특별히 떠오르는 게 없다. 그래서 급하지 않아도 주어진 일을 마치고, 앞으로 할 일을 준비하다 정시에 퇴근하는 게 차라리 마음이 편하다.

이런 내게 회사형 인간이란 단어는 참 유용하다. 아무것도 되지 못한 채, 일에 자신 없고 전전긍긍하는 나를 성실함과 책임감으로 포장할 수 있는 그럴싸한 단어니까.


하지만 누구보다 회사에 다니고 싶지 않았던 나로서는 회사형 인간이 된 게, 12년 동안 회사형 인간밖에 못된 게 솔직히 서글프다.


내 속도와 방식에 따라 살고 싶었다. 누구보다 내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하지만 회사란 내 시간을 내어 남의 일을 해 주고 돈을 받는 곳이었다. 내 페이스대로 하루를 보내기란 쉽지 않았다. 그렇다고 회사 없는 삶을 상상하는 건 어딘지 불안했다. 월세와 생활비 걱정을 떨칠 수 없어 급하게 다시 취업을 했다.

어차피 해야 하는 일, 의미 있고 가슴 뛰는 일을 하자고도 다짐했다. 나처럼 개인과 회사의 스위치를 자유롭게 켜고 끄기가 힘든 사람이라면 더더욱. 그러나 아무리 의미 있는 일도, 아니 의미 있는 일이기에 더욱 더 회사형 인간으로 소진되다 나를 잃어버리기 일쑤였다.


나 자신이 부끄러운 데는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오락가락하기를 수년째 반복했다는 자기혐오가 깔려 있다.

그래서 앞으로는 그만 퇴사하기로 한다. 그동안 이력서는 엉망이 됐고, 더 이상 이직에 성공할 만큼 어리지도 않으니까. 낯선 환경에 적응하는 것도 이제 그만하고 싶다. 지금 있는 자리에서 밥벌이를 하며 나를 찾는 편이 현실적이다. 현실은 중요하다. 지난 12년 간 내 글을 쓰는 대신 회사의 홍보 글을 썼기에 나는 고시원을 탈출했고, 결혼 자금을 모았고, 세면대가 있는 전셋집에 살고 있다.


다만 회사 일에 모든 에너지를 쏟지 말고 나를 살피는 여유를 남겨 놓고 싶다. 이제 나에게는 12년이라는 누적된 시간이 있으니까. 이를 명분 삼아 짬이 나면 일을 만들어 하는 대신 내가 좋아하는 것을 발견해 보면 어떨까. 새로운 동료에게 묻듯이 조심스럽게, 부끄러운 마음 뒤에 조금이라도 자랑스러운 구석은 없는지 스스로에게 묻고 써 보자.

물론 글쓰기에 심취해 출근을 미루는 일은 없을 것이다. 일이 바쁘면 나를 유심히 살피는 글은 뒷전이 되겠지. 여전히 월급은 생활의 중심이고, 그런 맥락에아직 나는 회사형 인간인 셈이다.

그래도 매일 나의 문장을 써서 일터로 향하는 신발 밑에 부적처럼 넣어주고 싶다. 일과 글이 중첩된 하루, 부끄러움을 아는 나를 사랑할 수 있도록.


2021.1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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