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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각보자기 Dec 25. 2021

자기 고백

나는 그렇게 세련된 사람이 아닙니다. 이것은 PR일을 할 때 날 움츠러들게 하는 중요한 요인 중 하나였지요. 얼굴이 예쁘거나 몸매가 좋은 것은 더더욱 아니며, 평범한 몸뚱이를 돋보이게 해 줄 센스있는 패션 감각도 없습니다. 그렇다고 말주변이 좋냐 하면 그것도 아니고, 심지어 점점 더 내성적으로 변해 수줍음까지 타기 시작합니다. 조용해도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잡는 누군가도 있던데, 전 그런 은근한 분위기 마저 없네요. 말 그대로 못생긴 쭈구리예요.  


나는 별로 감성적인 사람도 아닙니다. 회사원일 때는 내가 꽤나 감성이 넘치는 척 하며, 회사일 밖에 모르는 직장인의 삶 따분하다고 불평불만을 많이 했는데 사실 그건 일이 하기 싫어서 그런거였어요. 문학이나 전시회, 연극 등 문화 생활에 조예가 깊었으면 하지만, 시간 여유가 있을 땐 놓친 개그 프로그램과 드라마를 보며 깔깔대느라 시간을 다 써버리죠. 집에서 캔들이라도 키고 음악이라도 듣자 하지만 그마저도 가까스로 이어가고 있을 뿐 이 역시 진짜 저는 아닌 것 같아요. 서점에 쏟아져 나오는 감성 가득한 책들을 보면 저자의 라이프스타일을 동경하다가도, 여리여리, 여백, 린넨, 채도가 낮은 사진 등등 그 한결같아 보이는 무인양품 스타일 같은 것에 구역질이 나기도 해요. 결국 출판 시장의 마케팅 트렌드는 이런 감성팔이로 가열됐군, 하면서 뒤돌아서 버리죠. 


나는 사실 위선적인 사람입니다. 가난하고 어려운 사람들을 도우며 살고 싶지만 제 지갑을 열기가 쉽지 않네요. 장을 보러 갈 때마다 치솟는 물가가 실감 나서 진짜 어쩔때는, 정말, 간절히, 돈을 더 많이 벌고 싶어져요. 가끔 이게 바로 도시 빈민, 워킹 푸어구나 생각하지요. 물론 돈만이 전부는 아니라는 생각은 해요. 그런데 사회 구조 개선을 위한 온라인 서명에 참여하지 않을 때, 관심을 가져야 할 뉴스 기사 보다 연예인 가십 뉴스를 먼저 볼 때, 후원하는 국제아동구호단체와 환경단체의 이메일을 안열어보고 지나칠 때, 나란 인간은 그냥 돈 몇 푼 기부하는 것만으로 엄청난 일에 참여하고 있는 듯 착각하며 사는 위선자라는 걸 깨닫고 말아요. 아티스트가 되고 싶지만 아름다운 그림 한 점, 사진 한 점 집에 없어요. 화장품은 심심하면 사면서 멋진 예술 작품에는 돈 쓰는 걸 아까워 합니다. 우아하고 고상한척 하지만 아이돌을 쫓아 다닌 빠순이기도 했습니다. 


난 어쩌면 확고한 사람도 아닌 것 같습니다. 나이가 서른이 되어 이제 나를 좀 알 것 같아, 라며 새로운 도전을 했지만 그 역시 바람 앞에 등불이네요. 이랬다가 저랬다가, 남들처럼 살기 싫었다가 남들처럼 평범하게 살고 싶었다가. 희망찼다가 막막했다가. 자기 생각에 늘 확신을 가질 수 있는 사람은 대체 어떤 사람일까요. 얼마나 자신을 잘 알아야 하는 걸까요. 언제쯤 그럴 수 있을까요. 무엇하나 100% 확신하지 못하는 내게, 게으르지 말자고 다짐하는 순간에도 벌러덩 누워있는 내게, 흔들리지 말자고 쓰는 순간조차 흔들리는 내게, 신은 이 어중간하고 못난 내게 무엇을 허락해 줄 수 있을까요.


2015.0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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