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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각보자기 Oct 17. 2024

아빠

"해리아짐, 양촌아짐, 양촌아재, 용동아짐, 영산아재... 이제는 니 아빠 순이다."

작년 여름 휴가에 인사를 나눴던 동네 노인들이 불과 1년도 안돼 줄줄이 떠나가는 고향의 소식을 들으며

나는 반드시 늙은 부모와 시간을 더 보내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런 생각 사실은 20대부터 늘 해 왔지만, 마침 오늘 점심을 먹으면서는 왠지 행동에 옮길 수 있을 것 같더라고. 나에게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비로소 깨달은 느낌!

한다, 이제 진짜 할 거다, 해남에서 1년 살기, 내년부터.

오후 2시, 걸려온 전화. "아빠가 뇌출혈이란다."

인생 참 얄궂지. 나는 엄마 아빠와 시간을 보내겠다고 이제 결심했는데, 아빠는 나를 기다려주지 않으려나봐. 과연 내년에 아빠가 있을까? 이것은 주저한 시간대해 내가 받는 벌인걸까?

2024.06.28


아빠는 마치 날개깃이 부러진 연약한 새 같았다.

바튼 숨이 앙상한 갈비뼈 사이로 새어 나오는, 너무나 정직하게 숨의 깊이를 가늠할 수 있는.

그래도 그 숨과 살과 뼈는 아직 따뜻해서 나는 아빠라는 새를 좀 더 품고 싶었다.

그러나 새를, 한낱 새를 키우는 건 돈과 시간 면에서 비효율적이다. 게다가 날지도 못하는 새라니.

우리의 가정에는 연약하고 무용한 존재를 인내할 수 있는 돈과 시간과 자비가 없다.

우리는 어려운 길을 가고 싶지 않다. 자연스럽게 이별하고 싶다. 분명 아빠 또한 그럴 것이다.

이제 남은 건 아빠의 몫이다. 나는 기원한다. 작은 새가 편히 잠들기를.

2024.08.08


아빠, 나는 이탈리아 여행 중이야. 아빠는 고맙게도 나의 여행이 끝나기를 기다려 준 것 같아.

여행 마지막 날 저녁, 한국 시간 9월 19일 오전 4시 55분.

아빠, 이탈리아의 많은 성당들을 보며 삶과 죽음의 역사를 만났어. 수많은 사람들이 죽고 기원하며 시간은 흘러. 그것이 반복되는 것이 호모 사피엔스의 역사인가봐.

어느 성당에서 촛불을 키며, 아빠도 저 천장화에 그려진 좋은 곳에 이르기를 기도했어.

이렇게 빨리, 아니 어쩌면 딱 적당한 때에 아빠는 우리를 떠나가네...

내가 기억하는 5월의 아빠. 완도 바닷가에서 함께 꽃구경을 했지. 아빠는 파란 꽃이 예쁘다며 그 앞에서 사진을 찍었어. 내가 남긴 아빠의 마지막 모습.

6월 28일, 내가 알던 아빠는 사라져 버렸어. 그리고 20여 일.

그동안 아빠가 천천히 죽어가고 있다는 사실이 마음 아팠어.

천천히, 결국은 죽을 거였잖아...

죽음, 그건 수천 년의 인간 역사에서 너무도 당연하고 또 아무것도 아닌거야.

아빠, 부디 천국에 가서 행복하게 지내고 있기를 바라.

2024.09.18


아빠, 이제 하늘나라에서 농사일 안 하고, 좋아하는 노래 실컷 부르면서 즐겁게 지내길 바라.

장례를 치르고 오니 어째 더 슬퍼져. 일상에서 달라진 거라곤 아빠라는 존재의 생물학적 사라짐 뿐인데 말야. 아빠는 두 달 넘게 이미 아빠인 게 아니었음에도, 그 몸뚱이라도 있는 게 좋았나봐.

이제 진짜 아빠가 없다는 게 너무 슬퍼. 이 세상 어디에도 아빠가 없다는 사실이.

그리고 나는 아빠와의 시간 동안 아빠를 많이 사랑해주지 않은 것 같아서 미안해. 더 많이 추억할 이야기들을 나눌 걸. 그래서인지 아빠와의 병원에서의 10여일이 지난 38년보다도 특별한 시간이었어.

비록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재잘대던 아빠, 웃음짓는 아빠, 제법 넉살을 가진 아빠, 나를 안아주던 아빠가 오래 기억에 남아. 기억에서 아빠가 나를 안아준 적은 번도 없었는데, 아빠는 원래 이렇게 다정한 사람이었을까? 따뜻했던 손과 가슴팍과 밤톨같은 머리와 속눈썹과 봉숭아물과 가는 다리...

아빠, 나는 아빠 간병을 한 게 잘 한걸까? 그 기억 때문에 더 슬프다.

하지만 이제 내일부터 출근하면 괜찮아질 거야. 난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겠지.

엄마가 걱정이야. 엄마가 부쩍 늙고 꼬부라져버려서... 너무 가엾고 연약해져서...

할머니, 할아버지, 보통이, 강돌이 그리고 아빠 모두 함께 편안히 지내길.

2024.09.24


아빠가 원하는 건 내가 행복하게 지내는 거겠지?

아빠를 다시 살릴 수도 없는데 울고 괴로워하고 무기력하고 슬픔에 집착해서 내 생활을 망치는 걸 결코 아빠는 원하지 않을거야.

나 씩씩하게 잘 지낼게 아빠. 우리 가족 모두 화목하고 다정하게 서로 의지하며 남은 날들을 살게.

아빠, 나는 종교가 없지만 이탈리아에서 본 아름다운 성당들이 기억나. 사람이 죽으면 그렇게 아름다운 천사들이 있는 천국에 가는 거라고 믿을게. 아빠가 좋아하는 예쁜 꽃들과 음악과 풍요가 있는 곳.

그런 곳에 아빠가 빨리 도착해서 다행이라고 생각할게.

더 이상 하기 싫어 죽겠는 농사 안 하고, 노래 듣고 낮잠 자고 맛있는 거 먹고 강돌이 보통이 돌보고 행복하게 지내면서 나를 지켜봐줘.

아빠, 행복하게 각자 있다가 언젠가 꼭 만나자.

2024.09.27


아빠 미안해. 계속 눈물이 나. 이렇게 울면 아빠가 편히 못 간다고 하는데도 자꾸 울어서 미안해.

내가 그 재활병원으로 아빠를 입원시키지 않았으면, 그 간병인에게 아빠를 맡겨 버리지 않았으면 결과가 달라졌을까? 이렇게 빨리 아빠가 가 버릴 줄 몰랐어. 나는 그 며칠이 영원할 것처럼 답답해서 그랬는데.

이럴 줄 알았으면 아빠한테 더 잘 해줄 걸. 간병도 더 오래오래 내가 할 걸. 코로나 같은 것도 안 걸리게. 아니 그냥 그날 해남 종합병원으로 갈걸. 그랬으면 엄마도 더 많이 보고 한 번쯤은 집에도 가보고 했을텐데.

너무 미안해 아빠. 나 때문에 이렇게 된 것 같아서 미안해. 그래서 힘들 엄마에게도 너무 미안해.

아빠, 내 꿈에도 나와서 인사해줘. 아빠의 '잘있어'라는 인사말을 녹음해 놓지 못한 것이 후회돼...

아빠, 꼭 어디에 아직 있는 것만 같은 아빠, 이 슬픔도 언젠가는 무뎌지겠지?

아빠, 한 번만 더 그 따뜻한 가슴을 만져보고 싶다. 아빠 옆에 그때처럼 나란히 누워보고 싶다.

2024.09.30


이제 아빠는 이 힘든 삶을 그만 살아도 된다는 점에서 다행이야.

고된 노동도 잔소리도 질병도 돈걱정도 없어져서.

나로 하자면, 출근도 마케팅도 스트레스도 우울도 불안도 허무함도 덧없음도 모두 없어진 거니까.

그런 면에서 엄마의 힘든 삶은 여전하네.

농사와 뻐침과 허리통증과 걱정들을 끌어 안고도 계속해서 살아야 하니까.

그러니까 아빠가 죽은 것을 축복이라 생각할게.

나도 가끔은 그런 축복을 선택하고 싶어.

살아있다고 무조건 행복한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

아빠 나는 왜 사는 게 힘들까. 그냥 다 덧없어.

이 삶이 무슨 의미인지 잘 모르겠어. 그래서 가끔은 그냥 그만두고 싶어.

삶과 죽음, 둘 중 무엇이 나은지 알 수 없으니 아빠의 죽음을 너무 슬퍼하지 않을게.

2024.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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