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 7주차 - 9주차 : 작은 콩이 나를 막아섰다.

엄마와 다른 엄마가 되고 싶었다. 2

by 이유진

"선생님이 임신을 했어."

"우와 - 선생님 너무 축하드려요."


고맙다는 인사 뒤에 바로 붙어서 들리는 말


"그럼 저희... 레슨은 어떻게 되요?"


연기 선생님으로 살아온지 벌써 10년이 넘어가고 있다. 교복을 입고 쑥스러움 가득 미소를 지으며 나에게 왔던 제자는 이제 어엿한 배우가 되어 오디션을 척척 붙어온다. 그 외에도 가슴에 배우의 꿈을 가득 안고 매 주 나에게 찾아오는 배우들이 여럿이다. 이들과 함께 한지 벌써 10년의 세월이 가고 있다.


"예정일이 2월 초야. 아마 그 전까지 하고... 그 후에는..."


이제 이 여정을 끝맺음 할 때인가? 그건 본능적으로 아는 것이었다. 문제는 이 일이 나의 전부라는 것이다.

입시 때 배우를 하겠다며 예술대학을 들어갔고, 대학교 2학년이 되던 그 해 엄마가 돌아가셨다.

우리 집은 꽤 오래 전부터 점차 무너져가고 있었다. 사업을 하는 가장을 둔 집이라면 하나씩은 가지고 있는 망한 집안 에피소드. 그 사실을 엄마는 온 몸으로 막아서며 자식들에게 알리고 싶어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녀의 바람대로 자식들을 무너져가는 집안을 잘 깨닫지 못한채 천진난만하게 자라났다. 그렇게 성인이 되었다.

그런데 성인이 되자마자 방패막이 없어질 줄이야... 집은 빠르게 무너졌고, 아니 그때 그 사실을 내가 안 것이지. 집은 진작부터 무너져갔으리라. 엄마가 돌아가신 후 아버지는 우리를 책임지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셨지만 노력은 노력에서 끝났다. 세상의 무서움을 알게 된 시절이었다. 그리고 그것이 시작이었다.


생계를 위해 배우의 꿈을 접어두고 당장 잡히는 일인 연기를 가르치는 일을 했고, 운이 좋게도 연기를 가르치는 일이 적성에도 잘 맞았다. 생각보다 빠르게 남들의 인정 받으며 자리를 잡아갔다. 그렇게 일이 곧 내가 되었다.

엄마는 돈에 대한 걱정으로 인생의 반을 속상하다 돌아가셨다. 나는 그렇게 되지 않으리라. 나는 우뚝 서서 일적으로 누구보다 더 단단한 사람이 되리라. 그런데 이 작은 콩알만한 녀석이 나를 막아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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