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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설픈일상 Feb 10. 2023

구겨진 10만원

마음이 따뜻해지는 선물

집에 가는 길 주머니속엔 구겨진 10만원이 있었다.

얼마전 직장 동료와 저녁 약속이 있었다. 함께한 시간이 1년도 채 안되었지만 관계의 깊이가 시간과 비례하지 않는다는 것을 느끼게 해주는 동료였다. 휴가인 동료가 내 직장까지 와주기로 하였고 우리는 무엇을 먹어야 할지를 가지고 만나기 전 부터 투닥거리고 있었다.

  '멀리까지 왔는데 또 돼지고기나 사주는 것이 아니냐' 결정장애가 있는 나에게 '뭘 먹을지 아직도 안정해놓았느냐'는 둥 동료는 나를 타박했다. 그도 그럴것이 가장 최근에도 동료는 내가 있는 곳까지 와주었던 터라 큰 목소리를 낼 수 밖에 없었고 나는 그런 동료를 보며 여전히 추잡스럽다고 표현했다. 이런 표현은 우리의 관계가 학창시절 친구들 만큼이나 깊다는 것을 보여주기도 했다. 약속을 정하고 나니 하루하루 동료를 만나는 날만 기다리며 즐거움과 기대감에 설레었다.

  약속 날이 왔고 동료의 도착 시간에 맞추어 퇴근 준비 후 쏜살같이 직장을 빠져나갔다. 최근 한번 만나서 그런지 동료는 비교적 크게 변한 것은 없었고 투덜거림만 늘어난 듯 했다. 우리는 대충 가까운 포차로 이동했고 조금 이른 저녁을 시작했다. 마주한 우리는 시덥잖은 농담과 함께 넘쳐나는 이야기 주제들로 시간 가는 줄 모르게 시간을 보냈다. 평소 통화도 많이 하는 사이라 별로 할말이 없을 것도 같은데 매번 참 신기한 일이었다.

  더욱 아이러니 한 일은 술을 거의 하지 못하는 나와 술자리 끝에서 술잔을 들어올리면 모두가 쓰러져 있다고 '타노스'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는 동료와 단 둘이 매번 술자리를 함께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술을 좋아하는 이들이라면 술을 강권하는 경우도 많은 터인데 동료는 제법 상대를 배려할줄 아는 사람이었다.

  이야기 중 얼마전 백일을 보낸 딸아이 이야기가 나왔고 돌잔치는 안하냐고 동료가 물었다. 요즘 사실 돌잔치는 주변에 부담을 주는게 아닌가란 생각을 하고 있던터라 돌잔치는 가족들 친척들끼리만 하려고 생각을 하고 있다고 했다. 이후 동료는 이야기 중간 중간 정말 돌잔치를 안하냐고 물었고 헤어지는 마지막까지 같은 질문을 했다. 나는 같은 답변을 했다. 그랬더니 갑자기 헤어지기 직전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내서 던져주었다.

  꼬깃꼬깃 구겨진 10만원. 얼마전 백일도 있고 아직 한참 남은 딸아이의 돌잔치를 안한다고 하니 주고 간다며 미리 준비했던 돈을 나에게 건낸 것이었다. 전혀 뜻밖이었고 굳이 동료에게 부담을 주고 싶지 않아 한사코 거절했지만 동료의 마음을 계속해서 거절하기는 쉽지 않았다.

  그렇게 헤어지고 집으로 가는 지하철 속에서 나는 혼자 피씩 거리고 있었다. 항상 불평불만 투성이지만 친데렐라 스타일인 동료라 내 마음속에 쏙 들었긴 했지만 오늘 나를 만나기 전부터 무언가를 해주고 싶은 마음에 고민 했을 동료가 전혀 어울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예컨대 분명 결국엔 결정하지 못하고 돈을 주기로 했을 것이다. 하지만 또 정성어린 봉투에 담거나 지갑에서 신권 지페를 빼주거나 하지않고 정말 주머니에서 기다리고 기다리다 꼬깃꼬깃 구겨서 던져준 10만원은 딱 동료 스타일이라 미소 짓게 되었다. 그리고 분명 내일이 되면 그 돈을 냅다 받았다며 핀잔을 줄 것을 생각하니 벌써 내일이 즐거워졌다.


  아이가 생기고 어떠한 형태로든 전달해주시는 선물들이 정말 감사하고 마음을 따뜻하게 하지만 술에 취해 돌아오는 길 내 주머니속에 있는 구겨진 10만원은 가장 성의없지만 가장 마음 따뜻한 선물이 아닐까 싶다.


  반장님 우리 딸아이의 돌은 9월입니다. 9월에 또 소식전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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