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지
매일 영문도 모르고 책을 읽던 매일이와 왜 공부를 해야 하는지 의문만 품던 장상 도령은 오늘이 덕분에 만났어요. 두 사람은 첫눈에 서로에게 반했어요. 비로소 그토록 찾아 헤맨 삶의 의미를 찾은 기분이었어요. 분명 처음 만난 사람인데 전생에 알고 지낸 것처럼 굉장히 낯이 익었어요.
"두 사람이 혼인하면서 하던 대로 책을 읽고 공부한다면 더는 외롭지 않을 거래요."
"그게 정말이야?"
"네."
오늘이의 해답처럼 두 사람은 같은 생각을 했어요. 이 사람이 바로 내 운명의 짝이다! 그동안 외로웠던 게 무색하게도 마치 잃어버린 퍼즐을 찾은 기분이었어요. 두 사람은 손을 꼭 마주 잡고 얼굴을 붉혔어요. 그동안 무수하게 찾던 삶의 의미가 사실은 외로움에서 기반되었다는 걸 깨달았어요.
앞으로도 매일이는 책을 읽을 것이며 장상 도령은 늘 그래왔듯이 공부를 하겠지요. 하지만 이제 두 사람은 외롭지 않답니다. 그동안 해왔던 모든 일은 이제 형벌이나 저주가 아닌 함께 하는 일과 중 하나가 되었으니까요. 두 사람은 이제 아무것도 두렵지 않았어요. 서로가 서로의 전부가 되어줄 테니까요.
시스템이 필요했다. 언제 일어나고, 무엇을 먹고, 몇 시에 잘 것이며 얼마나 글을 쓸 것인가. 수많은 작가가 갑자기 오시는 영감과 미친 듯이 써지는 문장을 붙잡기 위해서 기다렸다. 나는 그럴 시간이 없었다. 영감 한 조각 기다릴 바엔 영감이 오도록 굿판을 벌이겠다는 심정이었다. 나는 글을 쓰지 않으면 생각이 너무 많아서 잠식해 버리는 편이었다.
새벽 5시에 일어나기로 했다. 딱히 이유는 없었다. 남들처럼 부지런하게 살고 싶었던 건 아니고, 새벽에 일어나서 글을 적으면 학원 출근 전에 웬만한 분량을 다 쓸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 당시 나는 수업이 많았고 아이들의 시험 기간을 책임졌다. 내 개인적인 작업으로 아이들을 내버려 둘 순 없었다. 내게 작업은 전쟁이었지만 아이들에게도 마찬가지지 않았는가.
<타협하지 말 것.>
내가 내세운 첫 번째 조건은 그거였다. 새벽 5시에 일어나는 건 매우 힘들고 더 자고 싶은 충동이 가득했다.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이렇게 글을 적을까? 새벽 5시에 일어나서 글을 적는 게 의미가 있을까? 어차피 퇴고할 건데, 어차피 안 쓰게 될지도 모르는데. 다양한 생각이 나를 잠식할 때마다 몸을 움직였다. 일찍 멜라토닌과 마그네슘을 먹고 잠들었다.
새벽 5시에 일어나는 건 오로지 정신력이었다. 첫날엔 졸리고 하품도 나오고, 내가 왜 이딴 고생을 해야 하지?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냥 주말에 몰았으면 안 되는 걸까 싶은 감정도 들었다. 하지만 내 본능이 말했다. 매일 몰았으면 글한테 끌려다니는 거라고.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인지조차 못하는 삶은 주체적이지 않다고.
끝내 내가 바란 건 무언가를 하고 있다는 성취였다. 글을 쓰는 건 운동과 똑같다. 매일 같은 시간에 일어나서 어떻게든 머리를 쥐어짜는 것. 누구는 새벽에 기상해서 정갈하게 운동하고 차를 음미하며 하루 기록을 적는다는데 나는 기상하자마자 졸린 눈을 비비고 노트북 앞에 앉아서 손가락을 두드렸다. 반쯤 수면에 잡아먹힌 문장들이 여백을 채워갔다.
그렇게 쌓인 문장이 내가 되었다. 내겐 무엇을 하고 있다는 인지와 효능이 필요했으므로 글을 쏟아내고 하루를 시작하면 불안하지 않고 개운했다. 마치 내게 새벽 글쓰기는 기도나 수행 같기도 했다. 성직자들이 이른 아침에 일어나서 기도하는 것처럼. 그들처럼 난 삶에서 많은 걸 포기하지 않았지만 아침잠을 포기했다는 게 일맥상통하지 않을까?
"왜 그렇게까지 해?"
나는 매번 극단적으로 나를 몰아붙였다. 가장 밑바닥까지 내려갔다가 다시 땅을 치고 올라왔다. 기어코 나를 괴롭히는 것의 실체를 마주 보고 나서야 마음이 안정되었다. 심리학에선 이걸 직면이나 메타인지라고 부르는 모양이다. 다만 나는 알고 싶었을 뿐이었다. 원인을 알면 뿌리째 뽑아낼 수 있을 거란 오만이 있었으므로.
때론 무언가 아는 게 삶을 바꾸기도 했다. 그전까지 나는 자기 파괴를 통해 고통을 적는 사람이었다. 그 행위는 나를 태우면서도 갉아먹었다. 그러니까 애초에 나는 글과 함께 나를 활활 태운 셈이었다. 새벽 5시에 일어나기 시작했다. 새로운 운동을 시작했고 매일 똑같아졌다. 자극적인 음식을 끊고 좋은 걸 찾기 시작했다. 유흥이나 술과 담배에 의탁하지 않고 홀로 서기 시작했다.
이건 나의 매일이었다. 어제이자, 내일이자, 오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