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핍
연꽃나무는 오늘이의 해답을 듣곤 의아했어요. 한 가지에만 꽃이 피는 연꽃나무에겐 이 가지는 정말 소중한 것이었거든요. 하지만 오늘이가 내세운 해답은 기가 찰 노릇이었지요.
"이 가지를 꺾어서 너한테 주라니?"
"원천강에서 얻어온 해답이야."
오늘이의 말이 사실이라면 기쁘겠지만, 만일 그렇지 않다면? 이 소중한 가지 하나를 꺾어서 영원히 꽃이 피지 않는다면? 남들이 볼 땐 고작 가지 하나를 내어주는 것일지 몰랐어요. 연꽃나무에게 이 가지는 마지막까지 지키고 싶었던 자존심이었거든요.
"네 말을 믿어도 될까?"
"원하는 대로."
연꽃나무는 고민 끝에 오늘이를 믿기로 했어요. 원천강에 직접 가서 해답을 얻어온 오늘의 말이라면 믿어볼 만했으니까요. 언제까지 가지 하나에만 꽃이 피는 연꽃나무로 남을 순 없거든요! 가지 하나를 꺾은 연꽃나무가 그걸 오늘이에게 건넸어요.
그러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어요. 오래도록 감감무소식이었던 다른 가지에서 연꽃이 자랐어요! 그제야 연꽃나무는 오늘이의 말이 진실이란 걸 알게 되었답니다.
사람을 매력적으로 만드는 건 결핍이다. 나는 타인의 각기 다른 결핍을 관찰하는 걸 좋아했다. 물론 내 결핍이 무엇인지도 늘 궁금해했다. 인물을 창조할 때마다 나는 욕망과 결핍에 힘을 주었다. 결핍은 곧 욕망과도 직결되니까. 사람은 언제나 자신이 가지지 못하는 걸 선망하기 마련이니까.
내 결핍은 평범함이었다. 그건 내가 대단하다는 소리가 아닌, 역설적으로 그러지 못하다는 이야기다. 나이에 따라서 이루는 자그마한 성취들-취업이나 가벼운 연애, 서로 적당히 눈 감아주는 수많은 관계들. 그냥 하면 되지! 라고 조언하는 사람들에게 말하기를. 세상엔 그렇지 못한 인간도 있다.
본래 인간은 주는 만큼 받았다. 내 주변의 사람들은 다 그런 인간관계나 사건을 겪어왔다. 나의 경우는 왜인지 조금 특이했다. 나는 주는 만큼 늘 받지 못하는 편이었고, 아예 무관심하면 도리어 예상치 못한 일이 생기는 편이었다. 오히려 기대를 회수해서 이런 일이 벌어진 걸까? 하지만 남들은 노력한 만큼 받던데? 수도 없이 쌓인 비슷한 경험들은 나이테처럼 촘촘히 박혔다.
나는 반어와 역설을 타고난 사람일지도 몰랐다. 내가 에너지를 끊거나 그냥 두고 있으면 모든 일이 잘 풀렸다. 한 번도 수상할 거라고 생각하지 못한 일들이 연쇄적으로 일어났다. 이건 운인가, 내 실력인가, 무엇인가? 한곳에 집착하면 아무것도 되지 않았다.
"네 에너지의 밀도가 높아서 그런 게 아닐까?"
내가 내린 결론을 이랬다. 노력하지 말자! 그 무엇도 가지려고 애쓰지 말자! 어차피 그건 내 것이 아니다. 만일 내 것이라면 알아서 굴러올 거다.
2025년 4월, 나는 이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내가 얼마나 잘해줬는데. 자아가 무너져가면서도 악착같이 맞춰줬는데. 부서진 잔해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잠적뿐이었다. 어차피 나를 찾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으니까, 이 폐허 속에서 나는 무너지고 싶지 않았다.
그건 내가 원하는 길이 아니었다. 시간을 버리고 싶지도 않았으며 어떻게든 이걸 딛고 일어나고 싶었다. 항상 모든 정답은 가장 깊은 마음 속에 깃들었다. 남을 관찰하는 게 취미라면 나도 남처럼 볼 수 있겠지. 잊고 있던 기억도, 가장 마주하기 싫었던 유약함을 억지로 꺼내서 마주했다.
심리학 용어인 '직면'은 아주 위험하고 괴로운 일이었다. 사람은 누구나 본인의 취약점을 숨기고 싶으니까. 내 직관이 말했다. 너 정말 아무것도 분석하지 않고 그냥 살 거야? 네가 누구인지 모르는데 어떻게 글을 적어. 그거 기만 아니야? (물론 기만 아닙니다.) 난 세상을 분석하고 서사로 치환하는 능력을 가졌다. 서사적으로 개연성이 없어지면 '왜?'라는 질문을 반복했다.
인생은 가끔 아무 일도 없이 흘러가지만, 나는 그걸 용납하지 못하는 편이었다. 나도 왜 내가 이런 기질인지 알고 싶지만 창조주는 사용설명서를 내어주지 않았다. 그래서 내가 한 건 이런 것이었다.
무너지지 않기, 일할 땐 티내지 않기, 어떻게든 할 일을 미루지 않기.
그리고 새롭게 루틴을 짜기.
나는 끝없이 사람에게 매달렸고, 사랑을 원했으며 무례한 것에 줄곧 대처하지 못했다. 호의는 코웃음으로 돌아왔다. 그러니까 나는 만만한 사람이 되어선 안 됐다. 강해져야겠다. 어떻게든 단단한 사람이 되어서 아무도 나를 상처 입지 못하게 할 것이다.
2025년 8월, 나는 루틴을 위해서 새벽 5시에 일어나기로 마음먹었다.
다행스럽게도 그 루틴은 2026년 2월인 지금까지 잘 이어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