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를 씻는다는 건

오늘이 오늘이소서

by 장아연
오늘이 오늘이소서
매일이 오늘이소서
저물지도 새지도 말으시고
새거든 늘 언제나 오늘이소서
오늘이 오늘이소서
-김천택, 『청구영언』


3월은 그런 달이다. 앞으로 1년 동안 이 교실에서 위치가 결정되는 달.


창가에선 운동장이 잘 보였다. 내 운동신경은 존재한다고 말하기도 부끄러웠다. 말 그대로 최악이었다. 하지만 운동장을 지켜보는 건 좋아했다. 푸릇한 잔디가 가득한 운동장을 뚫어지게 응시하면 마음이 편안해졌다. 가까이 보면 거뭇한 돌에 둘러싸인 이끼처럼 보이지만 멀리서 보면 꽤 멋진 풍경이었다. 교문 뒤로 가로수길이 펼쳐졌다. 나는 고개를 조금 더 들었다. 그 뒤로 아파트, 대형마트, 주택, 그리고…….


초가집?


두 눈을 의심했다. 초가집이라고? 안경을 제대로 닦고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분명 초가집이었다. 지푸라기로 대충 만들어 얹은 지붕, 곧 쓰러질 듯 위태로운 벽돌, 민속촌에서 보던 모습 그대로였다. 학교 사거리에 있는 생태공원에 새로운 공간이 생긴 모양이었다. 나는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 이상할 건 없었다. 대수롭지 않게 여기니 벌써 종이 울렸다.


“출석을 부르기 전에 한 가지 전할 소식이 있어요. 우리 반에 전학생이 왔어요. 그것도 두 명이나!”


문이 열렸다. 나를 비롯한 아이들의 시선이 앞문으로 쏠렸다. 두 명의 전학생은 남자와 여자 각각 한 명씩이었다. 맨 처음 들어온 여학생은 짧은 단발머리였으며 교복 치마를 펑퍼짐하게 입었다. 머리띠를 차고 있었는데 시중에 파는 것과 조금 달랐다. 어디서도 본 적 없는 모양이었다. 안테나처럼 뿔이 바깥쪽으로 나 있는 머리띠를 여학생은 계속 매만졌다.


뒤이어 들어온 남학생은 뒷짐을 진 채 사뿐히 걸었다. 머리는 동그랗게 묶어 올렸고, 소매가 넓은 파란 두루마기를 입었다. 두루마기 사이로 교복 셔츠가 보였다. 교탁 앞에 나란히 선 두 사람은 어딘가 닮았다.


“각자 한 명씩 자기소개해 볼까?”


범상치 않은 모습에 아이들은 말을 잃었다. 그저 넋을 놓은 채 두 사람을 쳐다보았다. 나 또한 마찬가지였다. 교복 위에 두루마기를 입거나 안테나 같은 머리띠를 한 사람들은 처음 보았다.

여학생은 능숙하고 여유롭게 교실 안을 훑었다. 남학생과 잠시 눈짓을 주고받더니 교탁 옆으로 비켜 나왔다.


“안녕, 난 곽곽. 우리 엄마와 아빠 성씨를 본뜬 이름이야. 나는 모든 걸 알고 있어. 그러니까 궁금한 건 나한테 물어보도록!”


곽곽은 딱 할 말만 하고 다시 교탁 뒤로 물러났다. 다음은 남학생이었다. 남학생은 여전히 뒷짐을 진 채였다. 교탁 옆으로 걸어 나오는 걸음걸이가 우아했다.


“안녕하시오. 소인은 장가 상주요. 매분구인 어머니와 거벽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나 호의호식을 누리며 살고 있으니 양반 못지않소. 비록 양반은 아니지만 그대들과 친하게 지내고 싶구려. 이리 학당에서 배우고 익히게 되어 참으로 기쁘오.”


상주가 소개하는 와중에 몇몇 아이들은 쿡쿡 웃음을 터뜨렸다. 상주는 아이들의 반응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꼿꼿하게 허리를 세운 뒤 자기소개를 마쳤다.


나는 상주의 말을 이해하려고 무지 애썼다. 소인, 매분구, 거벽, 학당, 양반……. 우리 또래가 쓸법한 말은 아니었다. 열여섯 남학생이 쓸 말은 더더욱. 꼭 사극 말투 같았다.



한 번쯤 그런 생각해 본 적 없는가? 모든 시간이 다 한 방향으로 통해졌고 사실 과거와 현재, 미래가 한순간에 이루어진다는 생각. 대개 어떤 학자들은 시간이 나선형으로 되었으며 지나온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타임 패러독스나 이런저런 이상현상들은 그 밖의 이야기를 말해주었다. 자세한 과학적 진술을 듣고 싶다면 잘못 찾아왔다.


왜냐하면 난 그런 걸 모르니까!

<오늘이 오늘이소서> 소설은 단 하나의 생각에서 비롯되었다. 그냥 조선시대 인물인 장상주와 미래의 곽곽이 현재 교실에 모여서 '나'와 유대감을 쌓았으면 좋겠다! 단순한 생각에서 시작된 소설은 조선 후기의 문신인 김천택의 시를 주제로 가지를 뻗어갔다.


이 소설을 쓸 무렵, 난 19살이었다. 10살 때 처음으로 소설을 접한 후, 내 학창 시절은 오로지 소설뿐이었다. 특히 난 긴 호흡의 장편소설을 주로 적었으며 13살 데뷔를 시작으로 거의 1년에 한 편의 단행본은 출간했다. 물론 종이책이 아닌 전자책 시장이었지만.


"당분간 웹소설, 장편소설 금지야. 대신 그 시간에 책을 읽어."


하교 후 유일의 낙은 소설을 쓰는 것이었다. 수업 시간에 노트 정리하는 척하면서 자연스럽게 글을 적었다. 노트 하나를 빼곡하게 적을 정도로 시놉시스나 설정들이 가득했다. 하지만 이 모든 건 문예창작과 입시를 시작하면서 끝났다.

밀도를 높이기 위해서 하루에 글을 2천 자 내외로 적었다. 대신 그걸 메우기 위해서 미친 듯이 책을 읽고, 또 읽었다.


입시를 진행하는 11개월 동안 빨리 합격하고 글을 적고 싶었다. 책을 읽는 건 재밌는 충격이었지만, 그럼에도 나는 쓰고 싶은 마음이 가득했다. 얼른 대학 붙어서 놀고 싶다! 보단 얼른 대학 붙어서 미친 듯이 글을 써야지! 였다.

계속해서 탈락의 고배를 마시던 19살의 겨울, 악에 받친 12월 27일. 드디어 대학에 당당히 합격했다. 남들은 대학 합격하면 친구들과 신나게 놀면서 수험생 혜택을 받는다고 하던데, 내겐 그런 게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쓰고 싶은 글을 마음껏 썼다. 11개월 동안 억눌렸던 문장들이 댐 무너지듯이 터졌다. 그때 떠오른 게 바로 위 소설이었다. 서로 다른 시간대에 와서 너무 다른 세 사람이 서로를 돕고 진정한 우정을 다져가는 가벼운 이야기다. 비록 그 어디에도 공개된 적 없지만 내겐 열아홉의 뜨거운 시선이 담긴 소설이다.


특히 김천택 시인의 '오늘이 오늘이소서.'라는 구절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거쳐온 시간에 따라서 과거, 현재, 미래를 규정하지만 사실 우리에겐 항상 오늘밖에 없었다. 오늘이 어제가 되고, 내일이 되는 거니까. 결국 미루거나 앞서 가지 말고 오늘을 잘 살아내 보자!라는 주장을 열아홉의 나는 했던 게 아닐까.


'나는 오늘을 살았다. 오늘은 오늘이니까.'


마지막 부근엔 '나'가 이런 문장을 읊었다. 열아홉의 나는 대체 어떤 통찰을 겪었기에 이런 문장을 직조해 냈을까. 지금의 나라면 '오늘은 너무 힘들고 내일은 안 왔으면 좋겠다. 그냥 8살로 돌아가서 학교 인기쟁이가 되는 건 어떨까?' 따위의 문장을 뱉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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