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에서 키우는 '시고르자브종'
2019년 6월, 꽤 더웠던 걸로 기억되는 작년 여름의 주말. 엄마의 한 마디에 나와 여동생은 저녁 여덟 시에 마트를 가서 어린 강아지를 위한 이름도 기억이 나지 않는 저렴한 퍼피 사료와 밥그릇, 배변 패드를 구입했다. 반려동물 용품 코너에서 눈에 띄는 장난감 하나도 같이. 우리 집에, 아니, 나에게, 내가 책임져야 할 새로운 생명이 온다는 것을 그때 알았다면, 나는 절대 그렇게 쉬운 마음으로 반기지 않았을 텐데. 그리고 아파트에서 10kg가 넘는 개를 키우는 게 이렇게도 힘든 일인 줄 알았다면 마음가짐을 더 단단히 했을 텐데.
쪼랭이를 처음 반려하게 되었을 때, 나는 초보 중에서도 극한 초보 보호자였기에 기본 상식이 없었다. 그저 맛있는 간식을 주고 싶었고 데리고 나가서 여기저기 귀엽지 않으냐며 자랑하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당시에 나는 '얘가 얼마나 클까?' 에는 관심이 없었다. 얼마나 클지, 견종이 뭔지, 나에게는 모두 상관없는, 정말 다 괜찮은 일이기에. 19년 5월 1일에 태어난 쪼랭이는 아주 빠른 속도로 성장했다. 3.5kg에서 18kg로.
생후 5개월, 쪼랭이가 타인에게 예쁨을 받을 수 있었던 시기는 딱 그때까지였다.
6개월 차에 접어들면서 쪼랭이는 중형견이 되었다. 그리고 이때부터 쪼랭이는 환영받지 못하는 존재가 되었다. 처음에는 술에 취한, 60대쯤 되어 보이는 아저씨였다. 밤 산책을 하고 있는 우리에게 손가락질을 하며 '저런 강아지는 잡아먹는 거지.'라는 말을 했고, 살면서 모르는 사람과 단 한 번도 싸워본 적이 없는 나는 그 자리에서 언성을 높였다. 마치 그 손가락질이 신호탄이라도 된 것처럼 그 이후로 나는 여러 사람들에게 많은 비난을 받았다. 그저 중형견을 반려한다는 이유로. 아, 중형견 중에서도 '진돗개'를 반려한다는 이유도 있다.
참 아이러니하게도 큰 개에 대한 트라우마에 대한 무서움을 이야기하는 사람은 없었다. 대체적으로 '크기가 커서 물 것 같다, 생김새가 진돗개라서 사나울 것 같다.'가 이유였다. 나는 그 어떤 상황에도 쪼랭이가 타인 및 타견을 물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나는 그 어떤 상황에서든 쪼랭이가 물지 않도록 제지할 수 있다. 아니, 온몸으로 제지할 것이다. 내 개의 행동을 통제하고자 수없이 교육하고 대비했기 때문에, 단언할 수 있다. 그리고 사실, 그러한 상황을 통제하기 위하여 개의 보호자인 내가 있는 게 아니겠는가.
반려동물에 관심도 없었던 나는, 반려동물과 함께 사는 게 이렇게 힘든 줄 몰랐다.
함께 할 수 있는 것은 거의 없을뿐더러, 함께 있다는 것만으로 모든 상황에서 '을'이 된다. 아파트 엘리베이터에서 함께 타지 않는 것도 아파트에 사는 이웃에 대한 나의 '배려'가 아니라 비 반려인이 누려야 하는 '당연한 것'이었고, 사람이 많은 시간을 피해 산책하는 것도 나의 '배려'가 아닌 '당연한 것'이었다. (어떤 아주머니는 나에게 이왕 배려하는 거, 더 배려하라고 했다.) 쪼랭이를 반려한 지 2년 차가 되니, 이제 웬만한 말에는 마음에 상처도 덜 입는다. 안 입는다는 건 거짓말이고, 덜 입는다.
나는 모든 사람들이 나의 반려견을 예뻐해 주고, 사랑해 주기를 바라지 않는다. 또한, 나는 나의 개가 모두에게 무섭지 않은 존재라고 생각하지 않고 그걸 강요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바라는 것은 그저 무관심이다. 그저 중형 크기의 반려견과 함께 있다는 이유로 무분별한 야유와 불쾌함을 표현하지 않는 것. 그냥 지나가는 사람과 동물 한 마리라고 생각해 주었으면 하는 것.
내 개에게 예의를 갖추어 달라는 것이 아니라, 그 개의 리드 줄을 잡고 있는 서른의 여성인 '나'에게 예의를 갖추어 줬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