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봄마을 Oct 18. 2024

인생에서 가장 재미있었던 시기


어제 저녁 온 가족이 모여서 보드 게임 Catan 을 플레이 했습니다. 


저희 가족의 규칙인데, 특별한 일정이 있지 않는 한 저녁 시간에는 한시간 정도 온 가족이 모여서 함께 보드 게임을 하거나 비디오 게임을 하면서 같이 시간을 보냅니다. 각각 고등학생, 중학생, 초등학생인 세 아이를 키우고 있어서 다 함께 할 수 있는 게임을 고르는게 조금 까다롭기는 하지만 아예 못 고를 수준은 아니고 위에 적은 Catan 같은 게임은 규칙은 단순한데 전략적인 요소가 많이 녹아 있어서 막내도, 첫째도 재미있게 하는 보드게임입니다.(보드 게임이 지루하다고 하면 우리에겐 놀이의 끝판왕인 닌텐도 스위치가 있습니다) 그렇게 게임을 하면서 이런저런 대화를 많이 하는 편인데 어제는 대화중 막내가 제게 갑자기 한번도 받아본 적 없는 질문을 했습니다.


"아빠는 언제가 가장 재미있었어요?"


이 질문이 나온 배경은, 아이들이 각각 고등학교에서는 뭘 하고, 중학교에서는 뭘 하고, 초등학교때는 뭘 하는데 뭐가 더 재미있는지 서로 자랑을 하다 자랑질에서 밀린다고(형들이 전부 '그거 나도 해봤는데 별로야' 라고 하니..) 느꼈던 막내가 갑자기 질문의 화살을 제게 돌린 거였습니다.





가장 즐거웠던, 재미있었던 시기. 


아이에게는 처음 받아본 질문이지만 제게는 두 번 고민할 필요도 없는 질문이었습니다. 이미 답을 알고 있거든요. 저는 2000년대 초반부터 중반까지가 인생에서 가장 흥미롭고 재미있었던 시기였습니다. 군복무를 마치고 복학해서 학부와 대학원을 거쳐 박사학위를 받기 전 까지의 시기였죠.


정말 이 시기에는 지루할 틈이 없었습니다. 시대적으로는 2002 월드컵도 열렸고, 연애끝에 결혼도 했지만 개인적인 일상에서도 정말 흥미로운 일들의 연속이었습니다.


학부생이었던 2000년과 2001년 각각 GTK 코딩에 대한 번역서와 리눅스 서버 관리에 대한 저서를 출판했습니다. 이 두권의 책 덕분에 학부 등록금을 해결할 수 있었는데 등록금에서 해방된 덕분에 여러가지로 자유로운 삶을 살아볼 수 있었습니다. 1999년이었는지 2000년이었는지는 잘 생각 안나지만, 학과 컴퓨터 소모임 발표회에서 다른 선후배들과 머신러닝 기법을 이용한 초보적인 필기체(ㄱ,ㄴ,ㄷ,...) 인식 프로그램을 내놨던 일도 재미있었습니다. 1996년에 우연히 한달간 기숙사를 같이 이용했던 컴싸 전공 대학원생 형으로부터 머신러닝에 대해 듣기는 했는데 직접 코딩을 해서 눈으로 결과를 본 건 여러해가 지난 이때였습니다. 진짜 신기하더군요. 


하지만 결정적으로 학부 3학년때, 어찌 보면 제 커리어에서 가장 큰 사건이었던, computational physics 에 눈을 떴고 교수님 한분 레이다에 걸려서 대학원생이 되는 일도 있었죠. 당시 대학원 전공을 뭐로 하느냐로 고민을 많이 했었는데 물리학과를 선택했습니다. 지금도 가끔 만일 그때 computer science를 선택했다면 어떤 커리어를 걸었을까 많이 궁금합니다. (아내에게 이 이야기를 하니 그때 컴싸를 갔으면 지금쯤 인공지능 개발하며 돈을 갈퀴로 긁었지 않을까? 라고 해서 제가 공감의 물개박수를 보낸 적도 있습니다)


어쨌든 이 시기에는 정말 하루하루가 그렇게 재미있을수가 없었습니다. 어떻게 지루할래야 지루할 틈이 없었으니까요. 궁금한게 생기면 꼭 확인을 해봐야 했고 그걸 위해 다른걸 잠시 포기하는것도 개의치 않았습니다. 지도교수님께선 덕분에 골머리를 앓으셨지만요. 


이 시기를 상징하는 일을 하나 꼽자면, 저는 Sony Playstation2 에 리눅스를 설치해서 게임기가 아닌 컴퓨팅 머신으로 써보려 온갖 삽질을 했던 일을 주저없이 꼽습니다.


저는 원래 게임 콘솔에는 큰 관심이 없었는데, playstation2가 출시되고 몇년 뒤 흥미로운 뉴스를 하나 접했습니다. 다름 아니라 미국이 이라크에 playstation2의 수출을 금지했는데 그 이유가 이 게임기의 성능이 워낙 뛰어나서 병렬로 연결해 cluster로 만들면 탄도 미사일 시스템으로 활용하거나 여타 군사 목적의 시뮬레이터로 이용할 수 있다는 뉴스였습니다. 

https://www.hankyung.com/article/2000122415781




눈이 번쩍! 했습니다. 게임기를 고성능 클러스터 시스템으로 만든다는건 상상도 못했던 일이었거든요. 이것보다 재미있어 보이는게 또 있을까 싶었습니다. 그날 바로 playstation2를 샀고 정말 긴 시간 playstion2를 컴퓨팅 머신으로 탈바꿈 시키기 위해 삽질을 했습니다.


Playstation 2 는 지금 보더라도 정말 혁신적인 하드웨어를 갖고 있었습니다. 컴싸 전공하신 분들은 저보다 더 잘 알겠지만, PS2의 핵심 프로세서는 Emotion engine 이라는 낭만적인 이름을 갖고 있었는데 단순 CPU가 아닌 SoC 모듈이라고 봐야 하는 규모의 프로세서 모듈이었습니다. CPU는 당연히 있고, 이 CPU에 FPU가 따로 있었으며 두개의 VPU(Vector Processing Unit)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VPU0, VPU1 이라고 불린 이 두개의 벡터 연산 유닛은 서로 128비트 버스로 연결되어 있었으며 VPU1은 데이터버스에 직접 연결되어 있어 FPU와 VPU0 의 결과값을 넘겨받아 후처리 후 그래픽 유닛과 커뮤니케이션을 하거나 서로 완전한 병렬 시스템으로 동작하는등 굉장히 유연한 동작이 가능했습니다. 이런 구성 덕분에 병렬 처리와 부동소수점 연산에 있어 압도적인 성능을 자랑했는데 불과 1년전에 발표된 펜티엄3보다 부동소수점 연산 능력이 두배가 된다는 이야기들도 있었습니다.


그러면 저는 결국 성공 했느냐? 결론만 말하면, PS2에 리눅스를 설치해서 일반 컴퓨터처럼 사용하는데까지는 성공했습니다. 한글 입력기도 포팅해서 웹서핑도, 입력도 가능하게 만들었구요. 하지만 원래 목적이었던 하드웨어의 계산 성능을 100% 이끌어 내는데는 실패했습니다. Sony가 Playstation2의 emotion engine 활용을 위한 개발 문서와 라이브러리를 엄청 비싸게 판매해서 구할 방법이 없었습니다. 당시 국내에는 콘솔용 게임을 개발하는 게임회사도 거의 없어서 어떻게 찾아가서 인턴 신청할 방법도 없었고, 해외에서 PS2로 클러스터를 만드는데 성공했다는 소식을 여기저기서 접하긴 했으나 그들에게서도 제대로된 정보를 받는데는 실패했습니다. 거기다 emotion engine을 제어하기 위해서는 어셈블리어를 이용해야 했는데 제대로된 문서도 없이 인터넷 서치하는 수준으로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C 로 코드를 만들고 인라인으로 어셈블리어를 넣어서 VPU1을 일부 제어하는데까지는 성공했지만 제대로된 성능을 끌어내는데는 실패했습니다. 결국 느리디 느린 PS2의 CPU만으로 컴퓨터처럼 썼고 vector processing unit들은 그림의 떡이나 다름없었습니다.


그리고 2004년에 데비안 리눅스 유저 그룹 세미나에서 시도와 실패의 과정을 정리해서 발표하고는 마지막 결론으로 "내가 해봤는데 재미는 있더라. 그런데 성과는 없었다. 재미를 원하면 해보고 아니면 하지 마라." 라고 말해서 좌중을 웃기며 세미나를 마쳤습니다. 그리고 돌아와서 모든 하드웨어들을 중고로 판매해서 처분했습니다. 





그렇게 긴 생각을 짧게 끝내고 막내의 질문에 답을 했습니다. 


"아빤 칼리지 다닐때가 제일 재미있었어."


"왜요?"


"왜냐하면 그 때 Playstation 2 를 처음 샀거든!"


"와! 진짜 재미있었겠다!"


그리고 한동안 왁자지껄 PS2용 게임이 어떤게 있었는지 아이들과 신나게 떠들었습니다. 그러면서 다시 생각해보니, 어쩌면 '지금' 이 좀 더 재미있는 시기일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어쨌든 커리어 생각을 할 때마다 그 질문은 떠나지 않습니다. 물리학과를 안가고 컴싸를 갔다면... 정말 어떻게 됐을까? 하는 질문. 


상상은 즐겁습니다. :-) 



ps

위에서 왜 playstation2를 '처음' 샀다고 말했냐 하면, 그렇게 팔았다가 그 해 가을 결혼후에 아내가 원해서 다시 샀거든요. 매일밤 TV 앞에 둘이 웅크리고 앉아서 게임을 했던 시기가 그립습니다. 그 땐 게임을 할 때 "아빠! 그렇게 하면 안되구요!" 하는 잔소리꾼들이 없었거든요.





작가의 이전글 GrNY Summer's Last Hurrah ride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