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여름부터 달리기를 시작했다. 운동이라고 하면 자전거 타는 것 말고는 하지 않았었는데 나무의 초록색이 짙어지던 시기부터 러닝화를 사서 신고는 동네에서 달리기를 시작했다. 엄청 열심히 달리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종종 나가서 몇 마일 달리고 온다.
뛰어 보니 달리기는 자전거와는(정확히는 그래블 자전거와는) 많이 다른 운동이었다. 바람을 가르는 속도감 또는 쾌감도 없고, 빠른 속도로 수십 마일을 이동하기 어려운 운동이다 보니 평소 가보기 힘든 먼 곳을 다녀온다는 설렘도 없다.
하지만 자전거보다 준비가 간단하다는 장점이 있고(자전거를 주로 트레일에서 타다 보니 늘 차에 싣고 멀리 이동해야 했다), 퇴근 후 부담 없이 동네에서 달릴 수 있다.(자전거를 퇴근 후 동네에서 타기에는 평일에는 해가 져서 안전에 대한 우려가 있다)
무엇보다, 동네를 천천히 달리다 보니 내가 살고 있는 이 마을을 평소와 다른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평소라면 차를 타고 빠르게 지나쳤던 장소들을 자동차와는 비교할 수 없는 느린 속도로 달리며 하나하나 눈에 눌러 담을 수 있는데, 이게 느낌이 정말 새롭다.
숨은 조금 가쁘지만, 내가 사는 마을의 구석구석을 달리며 기억과 사진으로 담는 기분은 멀리 가서 숲 속에서 자전거를 타는 것과는 다른 안온함을 가져다준다. 아마 '내가 사는 마을'에 대해 자세히 알아간다는 그 행위가 주는 특별함이 있는 것이겠지. 늦여름에 달리기 시작해서 가을과 겨울을 지나 이제 봄을 맞이하는 시기까지 달리고 있다. 이번 봄만 지나면 내가 사는 마을의 사계절을 달리며 기록을 하는 셈.
어제도 퇴근 후 아이들 라이드까지 모두 마치고 나서 해질 무렵 나가 달렸다. 그러면서 '아, 여기에 이런 풍경이 있었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그렇게 내가 사는 마을에서 또 한 곳의 멋진 포인트를 찾았다.